지나가는 생각들
고객사였던 SPC Group의 교육팀에 여직원 A의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15년도 더 지난 예전의 기억이지요.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A는 외모에 꽤 신경을 쓰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모자라거나' 덜 호감스러워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더 중점을 두었던 사람이 아닌, 키도 크고 건강하며 매력도 넘치는 그런 사람이었지요. 지금은 Asia 어느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국가에 살고 있을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 A 가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저와는 업무적인 관계를 넘어 조금 더 가까운 사이었는데, 언제나 그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저를 응시하는 A를 보며 왜 그렇게 날 쳐다보냐고 물었던 적이 있지요. A의 답은 의외였습니다:
"저는 못생긴 사람은 쳐다보지 않아요."
어느 정도 허영과 사치에 끌린 사람이란 점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도 노골적인 외모지향적인 사람일 줄은 몰랐기에 매우 의아한 A의 제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지난주, 다시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미혼이었던 20대와 30대, 그리고 자연스럽게 비혼으로 접어든 40대를 지나 이제는 50대에 들어섰습니다. 차리고 다니기가 불편해서 염색도 하지 않고, 편한 대로 입고 다닙니다. 하는 일이 어느 집단에 속한 일이 아닌, 제가 직접 주도하고 이루어내는 것들이라 형식적인 차림새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요.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가깝게 지내는 어느 분은 "원래 있는 사람들이 차림새에 신경을 안 쓴대잖아요."라는 말을 하시더군요. 거의 모든 주제에 돈을 연관시키는 지금의 사회풍조를 반영하는 말이기도 해서 씁쓸했지만 '내가 너무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나 보다'라는 생각도 들어 마음 한 구석이 따끔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강의를 하고 투자자를 만나는 일을 하는지라 염색이라도 해야 할지 작게 고민을 하고 있기도 하지요.
TV 나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아닌 (그렇다고 이들이 외모가 월등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길가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가게에서 상품을 파는 사람들, 공부하는 학생들 등을 자세히 관찰하며 봅니다. 성형기술이 뛰어나고 화장기술과 상품들, 그리고 옷들도 수려하여 거의 모든 사람들이 외모에서 '뒤쳐지는'경우는 없더군요. 취향의 차이일 뿐, 모두 '실제로 있어 보이거나' 대부분의 외모가 뛰어납니다 - 물론 도심지를 벗어나면 조금은 또는 매우 다른 외모의 사람들을 보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타인의 시선이 중요한 도심지와 덜 그런 외곽지역의 차이는 크더군요. 어쨌거나 잘 생긴 남자들, 아름다운 여자들이 많은 지금입니다. High cheekbone이나 slanted eyes 도 드물고, 매우 높은 sense of fashion을 요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왠지 눈에 뽀얀 필터를 달고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지금을 사는 사람들, 특히 50대 이하의 사람들을 보면 그 외모가 과거의 세대보다 뛰어난 것은 사실이나,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읽다 보면 경직성, 배타성, 무관심, 호전성, 그리고 때로는 악랄함도 읽히더군요. 통계가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아마도 한국사회에서 psychopath와 sociopath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의 그것보다 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치장하거나 변형된 외모와 옷차림의 fallacy로 인해 인상대로 사람이 읽히지 않는 지금인 듯합니다. 심지어는 눈 수술, 렌즈 등으로 인해 '마음의 창'이라는 눈도 읽을 수가 없더군요. 오늘 잠깐 읽은 어느 연예인의 과거 학폭이야기를 보더라도 이 연예인의 눈빛으로는 '정말 이 사람이 과거에 그랬을까?'라고 생각하기가 어렵더군요. 오히려 극도로 경멸하는 문신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이들은 그래도 자신을 숨기지 않는구나'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니까요.
내면과 외면이 너무 다른 사람들이 많은 지금, 미국적인 문화에 너무 노출된 결과 서구문화의 선을 넘은 폭력과 선정성이 여과 없이 이곳에 노출되어 온 지가 너무 오래되어 이렇게 된 것이라는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supressed emotion (표출되지 않고 억압된 감정)을 해결할 channel 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정치인들, 기업인들, 교수나 선생들을 이런 게 저렇게 여러 방식으로 봅니다. 이들의 인상이나 외모, 그리고 옷차림만을 본다면 이들보다 더 믿음직하고, 능력자고, 지적인 사람들도 없을 듯합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우리 사람들의 이면성은 더욱더 가려내기가 어려워집니다.
1980년작 Somewhere in Time 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미국도 이제는 저질적 문화로 온전히 자리 잡은 지금, 예전 영화나 노래들에 대한 열망은 점점 더 커지기만 합니다. 이 영화는 조각상 같은 외모를 가진 Christopher Reeve와 매력적이다 못해 고혹적인 외모의 Jane Seymour 가 출연한 작품으로, 1980년대를 살고 있던 어느 한 남자가 time-traveling through the power of self-suggestion 이란 독특한 방식으로 1910년대에 살았던 어느 한 여자를 찾는 과정을 그린 영화랍니다.
이 영화를 보면 1910년대의 영상은 아래 screen capture와 같이 뽀얗게 처리를 했더군요. antique effect를 살리기 위한 기법이겠지만 이런 필터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잘생긴 남자나 예쁜 여자를 대하고 싶은 carnal 한 욕구보다는, 그리고 내면과 외면이 같은 사람들을 찾기 어려운 지금이라면, 그저 보이는 장면들이라도, 뿌옇게 보이더라도 예전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 그 SPC 직원이 했던 말 ("저는 못생긴 사람은 쳐다보지 않아요.")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15년이 넘게 지난 지금, 저는 마음속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뉴욕의 길을 걷다 보면 (물론 많지는 않지만) cellulite 가 출렁거리는 배와 팔을 휘저으며 다니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가려야 할 부분을 자랑스럽게 또는 그저 편하게 드러내고, 더울 땐 그렇게, 추울 땐 저렇게 그저 생각대로만 하고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지요. 그런데 왠지 이들을 보는 마음은 편합니다. 물론 이들 중 소위 '막돼먹은'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리고 paradoxical 하겠지만, 왠지 더 인간적이고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 글도 필터없이 쓴 글이라 읽기가 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마침표를 찍습니다.
https://brunch.co.kr/@acacia1972/146
- April 16,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