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아버지 (the Judge): 바로 너다.
아들 (Hank): 저요?
아버지 (the Judge): 그래.
누가 최고의 변호사였나고
네가 전에 물어봤잖냐.
바로 네가 내가 아는 최고의 변호사다.
The Judge (2014)는 인디애나 주 어느 작은 마을에서 평생을 판사 (the Judge)로 살아온 아버지와 그의 3형제의 이야기로, 판사에게는 아내의 그리고 삼 형제에게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통해 모두 모이게 되고, 이후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통해, 전통, 가치관, 가족 및 관계에 대해 잔잔하게 풀어내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보다는 이 영화에서만 (really, only from this movie) 느끼고 볼 수 있었던 매력포인트들을 올려보는 것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여러 종류의 빛 (햇빛,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빛, 전구, 가로등, 스탠드 등) 이 아주 중요한 도구임을 영화의 거의 초반부터 알게 됩니다.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효과적인데, 아마도 그의 의도는 '따스함', '자연스러움', '선함' 등의 메시지를 lighting effect를 통해 전달하려는 듯합니다. Colour pallette 가 매우 독특한 영화로, 법정에서 느낄 수 있는 무거운 색감 또는 느낌을 이 영화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함은, 감독의 light play 가 아주 큰 역할을 한 듯합니다.
영화의 주요 장면이 법정에서 촬영되었지만, 또 하나의 장소가 Flying Deer Diner라는 식당이었습니다. 영화는 인디애나 주에 위치한 Carlinville 이란 township을 배경으로 하지만 실제는 Massachusetts에 위치한 (on the Mohawk Trail) Shelburne Falls라는 마을이었답니다. 식당 옆에 있는 여러 개의 큰 창문들을 통해 볼 수 있는 저 man-made 폭포는 아마도 이 식당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겠지요. Niagra Falls 보다도 더 매력적인 곳일 듯합니다. 언젠가 저곳에 가서 Downey Jr. 가 먹었던 음식을 주문할 예정입니다.
https://youshouldgotoo.com/robert-downey-jr-and-the-filming-of-the-judge/
1989년작 Chances Are에서 Robert Downey Jr. 가 보여준 한 장면, 그리고 2014년작 The Judge에서 그가 다시 보여준 모습을 보며 "아, 이 배우의 이 행동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는 행동) 은 연기가 아닌, 자신이 평상시 당황했을 때 취하는 것일지도 모르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25년이 지난 2014년 영화에서도 이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요. Avengers 시리즈에서도 그가 이 모습을 보였는지는 저는 모릅니다 - superhero 영화는 아무리 영화라 해도 웬만해서는 보고 싶지 않은 genre라서 말이지요.
https://brunch.co.kr/@acacia1972/375
자 이제 영화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물론 full spoiler 입니다.
89년에는 Downey Jr. 는 귀여운 모습이었습니다. 진지함조차 장난으로 보였었던 그였지요. 하지만 2014년작 The Judge에서는 그 반대였습니다. 귀여운 모습조차 진지하게 보인, 2014년 기준으로 그의 25년간 변한 모습을 알아채기는 어렵지 않더군요.
이 영화에 등장한 Robert Duvall을 포함한 배우들도 연기력이 1등급인 사람들입니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및 기타 다른 영화제에서 (이번이 결코 처음은 아니었지만) 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Duvall을 포함, Robert Downey Jr., Vera Farmiga, Vincent D'Onofrio, Jeremy Strong 그리고 캐릭터 연기로는 아마도 주연급보다 더 많은 개런티를 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Billy Bob Thornton까지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특히 Billy Bob Thornton의 존재감은 어느 영화에서나 강하게 느낄 수 있지요.
평생 엄격했던 아버지이자 인디아나의 작은 도시 Carlinville 이란 곳에서 판사로 수십 년을 봉사해 온 Joseph Palmer와 그의 세 아들 (Hank, Glen, 그리고 약간의 지적 장애가 있는 Dale)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그린 영화입니다. 첫아들인 Glen (Vincent D'Onofrio) 은 메이저리그 야구선수가 될 수 있었으나 십 대 시절 동생 Hank (Downey Jr)의 운전실수로 인한 자동차사고로 인해 오른손에 큰 부상을 입어 그 꿈을 접고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둘째인 Hank는 Chicago에서 아주 유능한 형사재판 변호사지만 아내의 외도로 인한 충격과, 법을 마음대로 유린하는 자신의 '특기'에 많은 회의감을 가지고 살고 있지요. 순하기만 한 막내인 Dale의 아마도 암울할 앞날도 이 가족에게는 무시하지 못할 걱정거리로 보입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잠시나마 십수 년 만에 다시 고향에 돌아온 Hank는 형과 동생과 함께 지난 세월이 남긴 빈 공간들을 부족하나마 조금씩 채워나갑니다, 지금까지도 삼 형제 모두 아버지를 "판사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엄격하고 가까이하기 어려운 존재이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 홀로 되었고 은퇴가 머지않은 아버지가 어떻게 이 변화에 적응할지 삼 형제 모두 조심히 그리고 몰래 살피지요. 며칠간의 짧은 고향방문이지만 Flying Deer Diner에서 우연히 만난 옛 여자친구와의 추억들도 되살리는 기회도 가집니다.
Flying Deer Diner에서 일하는 Hank의 오랜 친구이자 고등학교 여자친구였던 Sam 역할을 한 Vera Farmiga는 출연한 영화가 무엇이건 간에 The Conjuring 시리즈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왠지 그녀의 뒤에서 evil nun 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여배우가 만든 The Conjuring에서의 이미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아주 다정다감하지만 성숙해진 옛 여자친구 역할을 아주 잘 해내는데, 특히 Hank를 오래간만에 만난 장면에서 보여준 '넥타이 넘겨주는'모습은 정말이지 옛 여자친구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겠지요.
https://www.youtube.com/watch?v=lQfu2RXBzY8
Hank 가 고향을 오랫동안 방문하지 않은 이유는 나름대로 있습니다. 그의 정말이지 오랜만인 고향 방문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의 부드럽지 못한 관계, 아마도 Hank의 십 대 시절 운전실수로 인해 형 Glen의 메이저리그 career를 수포로 돌아가게 한 사건 때문에 아버지의 마음속에 어떤 앙금으로 인한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가 시카고에서 유명한 형사전문 변호사일지라도 엄격한 판사의 눈에는 법을 유린하는데만 혈안인 criminal defence lawyer 들 중 한 명인 아들을, 아무리 아들이라도 좋게 보일리가 없겠지요. 판사인 아버지가 재판을 진행하는 모습을 법정 2층에서 몰래 지켜보는 Hank의 눈빛에서 여러 감정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은 무난히 마무리됩니다. 공과 사가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만 봐온 Hank는 아내의 무덤 앞에서 떠나지 못하고 앉아있는 아버지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서 있지만 그 눈빛에는 연민과 사랑이 느껴지기도 하지요. 다가가고 싶으나 거리감이 너무나도 느껴지는 아버지의 존재감으로부터 그렇게 멀어져 간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일까요?
Hank 가 다시 시카고로 떠나기 전날 밤, 아버지가 홀로 운전을 하고 나간 밤길에 hit and run 사고를 냅니다. 다음 날 다시 시카고로 떠나기 전 Hank는 우연히 아버지의 차가 일부 파손된 것을 보게 됩니다. 삼 형제가 이를 보고 모두 의아해 하지만 자신이 그런 것이 아니라고 우기는 아버지의 역정에 모두 입을 다물지요. 하지만 정작 그 자신 (아버지) 은 이를 기억하지 못하지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판사 아버지는 아내 외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상태로 4기 암투병 중이었고, chemo의 역효과로 단기적 기억상실증 또한 앓고 있었습니다.
이 날 Hank는 시카고행 비행기를 타지만 이륙 전 다시 Carlinville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의 아버지가 살인혐의로 체포될 상황에 처해졌기 때문이지요. 그의 아들이 유능한 criminal defence lawyer 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잘 알려진, 유능한 토박이 변호사를 써야 한다"라는 말에 Hank는 제안을 할 의지조차 없어지게 됩니다. 최고로 유능한 변호사를 써야 함에도 아들을 그렇게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판사 아버지의 고집 또는 마음 깊은 속 화는 쉽게 풀리지 않지요.
하지만 이후 Hank는 그의 아버지를 변호하는 자리에 서게 되고 (아버지가 선임한 변호사가 너무도 무능했기에), 할아버지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자신의 딸도 이곳으로 불러 아버지와 처음으로 만나도록 합니다. 형의 미래를 영원히 날려버린 상처를 준 사고, 그리고 형으로서 동생으로서 가족으로서 해 주지 못한 모든 것들을 조금씩 치유하고 풀어나가게 되지요.
재판 결과는 기대와는 다르게 나오지만 이런 류의 영화가 그렇듯이 올바른 가치관, 가족의 중요성, 전통과 역사의 힘, 그리고 사람이 사람됨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영화입니다. 4년형을 받았지만 병치료를 위해 조기출소한 판사 아버지가 그의 아들 Hank와 낚시를 하면서 나누는 대화가 이 영화를 잘 마무리하지요:
아버지 (the Judge): 바로 너다.
아들 (Hank): 저요?
아버지 (the Judge): 그래.
누가 최고의 변호사였나고
너가 전에 물어봤잖냐.
바로 너가 내가 아는 최고의 변호사다.
https://www.youtube.com/watch?v=w0-WWpbc0bI
이 말을 들은 Hank 는 목이 메어오는 듯 시선은 먼 곳으로 향하고, 어색하게 턱을 쓰다듬지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묵묵히 아버지의 말을 마음속에 새겨넣는 듯 합니다. 판사 아버지는 이 말과 함께 "네 형, 야구선수가 되었으면 대단했을거야"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판사 아버지의 장례식 날, Carlinville 법원에는 조기가 계양되며, Hank 는 아버지가 수십년간 앉아 판결을 내리던 법정 내 의자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평론에는 Hank 가 이 마을로 다시 돌아와 판사직을 이어간다는 의미라고 해석을 하지만, 무리지요. 아버지의 정신을 존중하고 이어받아 제대로 된 변호사가 되리라는 각오를 하는 모습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 합니다.
David Dobkin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이유도 마음에 듭니다. 지금부터 10년 전 영화지만 그 당시에도 감독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2000년 이후 주류가 된 kick-ass female 캐릭터, 수퍼히어로, 엉터리 리메이크, 폭력, 섹스, 돈이 주된 소재인 수준낮은 영화를 수준낮은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Hollywood 를 감안하자면 이 감독의 '모험'에 대해 존경을 표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영화만 만들다가는 같은 해 2014년에 나온 The Rewrite (2014) 의 극작가 (Hugh Grant 역) 처럼 지금의 Hollywood 에서는 '퇴물'이 될지도 모르겠지요. 아니면 flow 를 따라가는 속물들 중 하나가 될지도 모릅니다. 바라는 바로는 존경받는 퇴물감독이 되길 바랍니다 (이미 돈은 많이 벌었겠으니까요).
아래는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입니다. Color pallette 의 향연이라 해도 괜찮을 듯 합니다. Lighting 의 존재감이 이 영화에서는 human story 라는 감독의 제작의도와 아주 잘 어울리지요.
May 02,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