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mi May 23. 2024

What They Had (2018)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This was the perfect time. Any later... I'd have forgotten him. Any earlier, I'd have missed him too much. Right now is perfect. I'll hardly ever know the difference."


"시간적으로 완벽했어. 조금만 늦었어도 내가 그를 기억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 조금만 일찍이었더라도 내가 그를 너무 그리워했을지도 모르고. 지금이 아주 완벽한 시점이었어. 그가 세상에 없어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니까."




애틋하기도 하고, 동시에 냉정하기도 한 대사였지요. 2018년작 What They Had의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치매 초기의 Ruth (Blythe Danner)가 세상을 떠난 남편을 생각하며 그녀의 딸인 Bridget (Hilary Swank) 에게 이야기하는 중 대사입니다.



"가족의 소중함"이란 주제를 가진 영화라는 평을 한국에서는 받고 있지만 저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리움"이라는 주제라는 의견인데, 조금 더 구체화한다면 "내재된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라고 이 영화를 평합니다. 그리움이라는 subject matter 가 사실 일반적인 love 또는 familial love와 아주 긴밀한 선상에 위치하고 있긴 합니다만, 이 영화를 통해 느껴진 "그리움"은 질병 (아내는 치매, 남편은 심장병)으로 인해 아내와의 삶에 대한 기억이 잔인하게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도 아내를 향한 한 남자의 불멸의 사랑을 의미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영화의 plot 은 이런 류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line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고령에 심장병까지 가지고 있는 남편 Norbert (Robert Forster) 이 초기 치매증상을 보이는 아내를 끝까지 보살피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동시에 이를 통해 앞으로 다가올 깊은 고통과 고생도 감수하겠다고 하고, 이 노부부가 가진 두 명의 자녀들 - Nicholas (Michael Shannon)와 Bridget (Hilary Swank) - 은 어머니를 위한 요양원과 아버지를 위한 케어시설을 동시에 찾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 노부부가 경험하는 일련의 이야기들이 A Story 가 되겠습니다. 이 메인 줄거리에 더해 - 나름대로는 열심히 성실하게 살고 있으나 정작 그의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 아들 (Nicholas)과, California에서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 (Bridget)의 마음속 이야기들과 그 속마음들이 겉으로 드러나게 되는 부분을 B Story로 이 영화는 풀어내고 있지요.



물론 이 영화의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가족 간의 사랑"이 참 소중하다는 사실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지만 감독이자 각본을 쓴 Elizabeth Chomko의 의도는 아마도 이 두 노부부가 가졌던 (What They Had) 긴 삶의 여정을 통해 다시는 가질 수 없는 추억들 (남편의 경우 죽음으로, 아내의 경우 치매로 인해)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아련함을 그리는 데 있지 않았을까요?


이 노부부가 평생을 통해 가졌던 것은, 가족 간의 관계와 행복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두 사람의 자녀들이 가졌던 것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노부부가 함께했던 시간, 즉 데이트와 결혼, 자녀를 낳고 키우며 공유했던 소중한 순간은 이제 기억 상실과 죽음이라는 것을 마주하며 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깊고 활기찬 사랑이었지만 이제는 과거형으로 변해버린 사랑이 되어가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시련에 대한 슬픔, 시련을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 분노로 커질 수 있는 묻혀 있던 분노의 연속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할머니부터 손녀까지 세대 간의 사랑을 축하하는 방법을 찾지요. 아직까지는 이 영화가 유일한 작품인 Elizabeth Chomko 가 이 영화를  마무리하는 방식이 독특합니다 - 삶이 꺼져가는 어둠의 순간에 발산되는 영롱한 빛에 집중하기로 선택하지요. 물론 영화는 씁쓸하지만 옅은 향기처럼 조금은 위로가 되는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Hilary Swank as Bridget Ertz

Michael Shannon as Nicholas Everhardt

Robert Forster as Norbert Everhardt

Blythe Danner as Ruth Everhardt

Taissa Farmiga as Emma Ertz


Cast 된 배우들을 보면 최고의 emsemble입니다. 연기력으로 존재감을 보여주는 배우들로만 구성이 되었습니다. 배우들 중에서도 연기를 통해 자신의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본능이 있을 텐데도, 이들은 배역에 그대로 충실하게 임하는 찾기 어려운 재능들이지요.




2007년작 The Savages 또한 같은 주제로 만들어진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의 casting 도 대단했지요. 성인이 된 남매가 따로따로 각자의 바쁜 삶을 살고 있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 그리고 아직까지는 정정한 아버지가 (여타 다른 미국의 가정들이 그러듯) 등장합니다. 이 두 남매, 그들이 어렸을 때 매우 폭력적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가족 간의 관계는 애초부터 그리 좋지 않습니다. 이 두 남매의 사이도 간격이 있어 보이지요. 이를 배경스토리로 "그리움"을 그려낸 또 다른 명작이었습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 Ms. Laura Linney라는 훌륭한 배우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Mr. Hoffman이라도 결코 혼자 그려내기가 매우 어려웠을 작품이지요. 이 두 배우가 보여준 performance는 그 누구가 했더라도 소화해 낼 수 없었을 듯합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갑자기 직면하게 된 부모의 병치레와 죽음, 피하고 싶지만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슬픈 뒤처리, 그리고 그 후엔 더 나은 날들이 있겠지 하며 희망을 가져보는 남매의 삶을 이 두 배우보다 더 잘 보여 줄 능력자들을 2018년 What They Had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좋았습니다.


https://brunch.co.kr/@acacia1972/98


노년기에 잃어버릴 것이 많지만, 우리 모두에게 붙잡을 가치가 있는 추억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겠지요. 그리워할 것들이 많다는 것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는 감내하기 고통이긴 하지만, 동시에 강렬한 행복이기도 합니다.


Most of us live our lives

devoid of cinematic moments.


우리 대부분은

영화 같은 순간이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Nora Ephon 이란 American journalist 이자 writer 가 남긴 말입니다.




- May 23, 2024


                     

작가의 이전글 미국에서까지 이들을 보고 싶지는 않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