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series를 시작합니다. "가장 뉴욕적인 장면들"이란 제목이지요. 기존에 영화를 다루던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series는 선별한 특정 영화 한 편에 대한 이야기만을 엮은 것이지만, 이번 새로운 series는 작품의 질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별된 영화의 어느 특정한 장면이 New York City를 가장 잘 표현했는지만 고려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NY skyscraper 가 나온다고 해서 선택되는 것은 아닌, 여러 요소들을 포함하는지 (당시의 문화, 분위기 등)를 주로 봅니다.
The Secret of My Success (1987)
이런 제목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내용은 형편없었고, 주연 및 조연배우들의 연기 (Michael J. Fox를 제외한) 또한 C급이었지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뉴욕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캔자스 주립대학교를 졸업한 후 뉴욕으로 온 시골청년 Brantley Foster는 맨해튼의 어느 금융회사에서 신입사원으로 일하게 되어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일하기로 한 회사가 경쟁 기업에 인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결과 브랜틀리는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해고되지요.
다른 직장을 구하기 위해 여러 차례 면접을 보았지만 자격 요건 초과 또는 미달, 경력 부족 등의 이유로 번번이 낙방합니다. 결국 브랜틀리는 일면식도 없는 먼 친척인 '삼촌' 하워드 프레스콧의 지시로 펨로즈 회사의 우편실에서 일하게 되고, 이후 여러 이야기들이 엮어지면서 삼촌의 회사에서 크게 성공한다는 이야기지요.
물론 love interest 도 등장합니다. 연기력은 별로였던 Helen Slater 가 연기한 Christy Wills 이란 캐릭터와 Michael J. Fox 가 연기한 Brantley Foster의 관계가 그러하지요. 이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장면이 599 Lexington Avenue, New York City에 위치한 빌딩 lobby에서 촬영되었습니다. 이 장면이 오늘 소개해드릴 "가장 뉴욕적인 장면"입니다.
이 두 사람은 빌딩 lobby에 있는 water fountain에서 처음 만나지요. 정신없이 물을 마시던 Brantley를 보고 "May I?" 라며 다가선 Christy. 그녀의 깔끔한 정장과 단정한 헤어스타일, 완벽한 대칭의 얼굴과 도톰함 입술, 그리고 강렬한 눈빛에 Brantley는 마음이 크게 흔들립니다.
시골청년 Brantley 이 꿈꾸어왔던 뉴욕에서의 성공,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과 의미 있는 관계, 이 두 가지가 어쩌면 모두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며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지요. 이 water fountain 앞에 서 있는 그 짧은 시간동안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이 바빌론 신전 같은 웅대한 건물의 대리석 벽을 배경으로 걸어 나오는 이 신비스러운 여인을 상상하고, revolving door를 통해 그를 응시하는 이 여인을 상상하는 Brantley의 순진하고, 어쩌면 음흉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안쓰러운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상상이었을 뿐, 시골청년 Brantley는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옵니다. 어느새 모든 사람들이 사라진 텅 빈 lobby를 뒤로 한 채, 멋진 인터뷰를 위해 잘 차려입고 오늘을 준비했지만 고작 그를 기다린 것은 단순직종 업무 - 재벌기업 총수인 삼촌을 통해 그나마 간신히 잡은 회사 우편실에서 시작할, 성공과는 거리가 너무 먼 단순업이었지요. 그래도 먹고살아야 하기에 내일 첫 출근을 위해 꿈에서 깬 텅 빈 빌딩을 뒤로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위 장면들이 보여지는 동안 David Foster의 Water Fountain 이란 제목의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Piano 연주곡으로, 이 장면과 더불어 당시 New York City에 참 잘 어울리는 tune이었지요. California에 더 어울리는 작곡가지만 그래도 이 곡이 수록된 David Foster의 앨범만은 뉴욕을 포함한 New England 지역에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입니다. 맨해튼 남쪽의 석양, 아마도 가을의 시작이었을 80년대 후반 맨해튼의 풍경이 아주 적절하게 보여진 장면들이지요.
아래는 위의 장면들이 포함된 영화의 영상 부분입니다. Water Fountain의 선율이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영상과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지요. John Lennon 이란 (결국은 허무한 삶을 살다 간) 가수가 이런 말을 했었지요: "Today America is the Roman Empire and New York is Rome itself." 정말이지 로마제국이나 고대 바벨론 제국의 영화로움과 번영이 이랬으리라 충분히 그리고 넉넉하게 상상할 수 있는 도시는 뉴욕 뿐이더군요. 이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던 80년대와 90년대의 New York City를 이 영화는 아주 잘 잡아낸 듯합니다.
잡고자 하지만 너무 먼 꿈들, 저 차가운 대리석 벽들처럼 딛고 올라설 수 있는 한 틈도 주지 않는 현실에서의 뉴욕, Art Garfunkel의 노래 "A Heart in New York"의 가사처럼 (New York, you got money on your mind, and my words won't make a dime's worth a difference) 그저 뉴욕이란 도시는 돈만 중요하고 그 누구가 무슨 말이나 생각을 해도 공허한 외침으로만 돌아오는 도시라고도 느껴지지만, 열정적으로 기회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두 팔을 벌려 관대하게 품어주었던 80년대와 90년대의 뉴욕이라는 도시가 주는 느낌을 이 장면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영상 마지막 부분 피아노의 low key 를 짙게 누르며 무겁게 마무리되는 음악과 이른 저녁시간 맨해튼이 주는 영상미의 조화 또한 기억에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