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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Aug 26. 2024

먹기 전에 손 씻어야지

지나가는 생각들


Evelyn 이 다섯 살이었던 어느 날, 어머니는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무엇인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사과요!"라고 대답했죠.


다음 날, 식탁 위에 껍질을 벗긴 사과가 담긴 그릇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Evelyn은 손을 뻗으려고 했지만 어머니는  “먹기 전에 손을 씻어라"라고 하셨지요. Evelyn은 손을 씻고 사과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입 안에 퍼지는 사과향과 맛이 그녀를 아주 행복하게 했답니다.


10년 후 Evelyn은 열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침실에 누워 "난 세상을 대하기가 너무 두려워"라고 생각하며 절망에 빠져 있었지요. 이 때도 어머니는 부엌에서 딸이 좋아하는 사과를 준비해 두셨습니다. 어머니는 사실 사과를 먹을 마음이 없었지만, 딸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알고 있었고, 딸이 다섯 살 때 사과를 보고 얼마나 행복하게 보였는지 기억하고 있었지요. 딸이 조금이라도 행복하길 위해 그날도 어머니는 사과껍질을 까고 계셨습니다. 저녁 식사 다음 날 밤, Evelyn은 테이블 위에 사과가 가득 찬 그릇을 보았습니다. 옛날을 생각하며 행복했던 날들이 떠올랐고, 손을 씻고 사과 한 개를 손에 들자, Evelyn의 마음이 조금은 나아졌습니다.


10년 후 Evelyn은 성인이 되어 결혼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녀가 대학교에 다닐 때 지병으로 세상에 더 이상 계시지 않았지요. Evelyn도 자식이 생겼습니다. 딸이었지요. 유치원에서 돌아온 딸이 유난히도 찾는 과일은 역시 사과였습니다. 딸도 자신처럼 집에 오자마자 사과를 향해 손을 뻗었고, Evelyn은 딸에게 "손을 씻고 먹어야지"라고 했지요. 


세상은 두렵게만 변해갑니다. 딸자식을 키우자니 하루 종일 마음이 편한 날들이 없을 정도로 망가져가는 이 세상, 그래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먹기 전에 손을 씻어라"라는 주름진 손의 촉감이 피부에 느껴졌습니다.





- August 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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