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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하나로마트의 명절 전 모습

지나가는 생각들

by Rumi


금요일 늦은 오전, 서울 양재동

서울 양재동에 있는 하나로마트에는 구정이나 추석등 명절 전 3주 전쯤 되는 시점에 아주 큰 규모의 택배접수텐트가 외부 주차장의 반 정도 차지하는 공간에 설치됩니다. 이 텐트가 설치되는 날부터 명절 분위기가 조금씩 느껴지지요. 이 때쯤부터 매장 내 여러 상품들의 가격도 평소보다 다소 오릅니다. 명절이 다가오는 분위기가 이렇게 조금씩 감지되지만, 매장 내부에는 아직까지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명절용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는 아직 아니기에 그렇겠지요.


명절 일주일 전에 택배텐트는 철거됩니다. 그 대신에 그때까지는 한산하던 매장이 아주 많은 사람들로 갑자기 채워지지요. 바로 이 때부터 명절이 다가온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매장 안을 편하게 다니는 것은 포기해야 하고, 계산대 라인이 평소보다 대여섯배는 길어진 것도 명절의 흔적이지요. 사람들간의 대화 소리가 꽤 많이 커지는 시기도 명절 전 일주일 기간이더군요.


명절이 되면 모습을 드러내는 선물세트는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지요. 특별한 것들도 아닌 연중 내내 아무 떄나 볼 수 있는 과일, 고기, 식용유, 스팸, 참치캔, 비누, 참기름 등을 모양이 적당히 좋은 박스에 넣은 후 높은 가격에 판다는 것이 말이지요. 물론 예전보다는 mark up 이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이런 성의없어 보이는 상품이 팔린다는 것이 아직까지는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카트 잔뜩 채우고 나가는 사람들이 꽤 많더군요. 고기, 굴비 등 비싼 상품세트도 꽤 잘 팔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선물세트가 아니더라도 매장 여기저기는 며칠 후 있을 가족들과의 큰 모임을 위해 미리 음식 준비를 하고자 여러 식료품들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모습들로 북적입니다. 상품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판매원들은 열을 올리고 있고, 한정된 시간동안 할인행사를 하는 상품 코너에서는 하나라도 더 집기 위해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요즘같은 불경기엔 이런 상품에 대한 인기는 대단하더군요. 이번 주 내내 양재 하나로마트의 분위기는 불경기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빠 보였습니다. 어쩌면 불경기는 그냥 뉴스프로그램에서만 떠드는 가짜 뉴스일 뿐이고,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금도 충분히 가지고 있고 카드 한도도 넉넉하게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곳이 서울 및 서울 근교에 위치한 백화점들과 이런 대형마트인 듯 합니다.




금요일 늦은 오후, 지방 하나로마트

서울 양재동에서 대략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있는 지방도시에 위치한 하나도마트를 오후 4시경에 가 보았습니다. 명절휴일이 시작되기 하루 전이지만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평소보다 줄은 듯이 보였지요. 사람이 하도 적은 탓에, 여기저기 크고 다양한 "세일"싸인들이 왠지 아련하게 보일 정도었습니다. 축산물 코너, 해산물 코너에는 평소와는 다르게 더 신선한 상품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지만, 기웃거리는 사람들조차 없었고 그럼에도 직원들은 그래도 계속해서 새 상품을 진열하고 있더군요.


노래 한 곡 틀어놓지도 않고, 한정세일 안내방송도 샤핑을 하던 40분 내내 들리지 않은 이 곳.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 Virginia 의 Annandale 이란 시골마을에 갔었던 어느 한 날이 기억나더군요. 표정도 없고, 강렬하지도 멍하지도 않은 눈빛으로 바라보던 사람들과 그들의 눈길, 인사를 건네도 돌아오는 인사도 없던 그 도시 - 어쩌다 들어간 식당에서도 그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조용히 깔린 음악소리조차 없던 그 이상한 마을의 기억이, 경기도 이 도시의 한 마켓에서 다시 느끼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Virginia 의 그곳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시골이라고 하기엔 큰 도시지만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 지역도 아닌 꽤 멀리 위치한 이 도시... 그래서 그런지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얼굴생김새, 말투 등은 마치 80년대에 보던 사람들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곳이긴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촌스럽고 세련되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도시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이는 사실 틀린 표현이겠고, 삶에 있어 외부적인 또는 외적 요건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바로 그 다른 점이었지요. 편하게 삶을 사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곧 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명절 며칠 전, 이렇게 사람이 없다는 점은 의아했습니다. 하지만 곧 "그래도 저녁시간이나 내일은 사람들이 많이 오는가보다. 지역마다 다르고, 양재하고는 샤핑패턴이 다를지도 모르니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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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이른 저녁, 지방 하나로마트

어제 오후 7시경, 이 곳의 풍경은 변한 것이 없더군요. 여전히 사람들도 없고, 상품들은 그다지 팔리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직원들도 상당 수 퇴근한 듯 보였습니다. 어제도 그랬지만 노래 한 곡, 특별할인 안내방송도 나오지 않고 적막함까지 느껴지는 토요일 저녁 이 곳. 하지만 이 적막이 머지 않아 편안함으로 느껴지더군요. 명절시즌, 북적이고 소란스러워야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에, 그렇지 않은 이 곳을 두고 "적막함"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했고, 물건들이 많이 팔려야 많은 사람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것은 시장경제에서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왠지 그 소란스러움보다는 이 조용함 (적막함이 아닌) 이 조금씩 그리고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저녁이 된 시간이라 약간의 피로감이 이런 편안함과 고요함을 더 익숙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명절의 당연한 북적임보다는 이곳의 한산함은 꽤나 매력이 있었습니다.


물건을 사는 사람들도 그저 평범하기만 합니다. 그나마 남은 직원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아마도 단골인 듯한 어르신들, 화장과 옷차림이 지방 소도시 다방 '레지'같이 보이는 젊지 않지만 젊어보이는 여성들, 정육코너에서 느린 속도로 일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40대 중반의 남자 둘, 그래도 이 조용한 마트에 간간히나마 이 곳이 물건을 사고 파는 곳이라는 곳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는 수산물 코너 아주머니... 제 나이는 되 보이지만 아마도 저를 보면 한참 아래 동생이라고 할 듯 합니다.


어제 보았던 선물세트 코너, 그 앞에 서 있는 담당직원은 사람들이 그 바로 앞을 지나가도 그 흔한 sales pitch 하나 던지지 않습니다. Pitch 를 던져도 안 던져도 그만인 이 곳이라는 것을 그 직원은 알고 있나 봅니다. 저도 한 번 지나가보았지만 그 직원은 마냥 편한 모습입니다. 이 한산함이 준 매력의 결과일지는 모르지만 어제 이 곳에서 계획보다 더 많은 물건을 샀긴 했습니다. 양재 하나로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사실 물건값이 너무 올라서 거의 건진 것이 없던 것에 비해, 이 '시골'하나로는 꽤 많은 상품들이 할인되어 판매중이었고, bargain hunting 을 삶의 행복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사는 제게는 어제 저녁은 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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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지 않은 저 많은 선물세트들, 누가 사갈까요? 10시에 문을 닫는 이 곳, 혹시 삶에 바쁜 나머지 고향 부모님들과 형제자매들, 그리고 가족에게 줄 선물을 살 시간도 돈도 모자라는 day-by-day 노동자들이 이 곳에 들러 이 선물세트들을 바라보며 소박한 즐거움으로 두세박스 들고 나갈지도 모를 일입니다. 혹시 약간 술에 취한 중년의 남자가 들어와서 카트 잔뜩 채우고 나갈지도 모를 일이지요. 아니면 돈이 모자란 젊은 청년들이 고기 또는 굴비세트는 살 수 없기에 몰래 부끄러운 듯 참기름 선물세트 한 두 박스 가지고 종종걸음을 하며 사 갈지도 모릅니다. 그 누가 알겠어요?


이런 시골 마트에는 솔직함이 있습니다. 그 솔직함이 수수하거나 남루한 옷차림이건, 사는 물품들의 종류이건, 또는 언행에서 느낄 수 있는 무식함이건 무지함이건간에 솔직함은 확실히 이 곳에서 느껴집니다. 그렇기에 80년대의 풍경이 아주 잘 느껴지는 이 곳의 구정분위기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 January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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