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의 <침묵>의 배경을 찾아서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명작, <침묵>의 배경이 된 소토메(外海)를 진작부터 가보고 싶었다. 내가 <나의 사가독서>를 쓰면서 위대한 인간 정신을 대표하는 스무 권의 책 중의 하나로 꼽은 것이 <침묵>이었다.
일본의 가련한 기리시탄(크리스천의 일본말) 농부들이 당신 때문에 당하는 고난에 대해 완고하게 침묵하는 하느님을 원망하며 로드리고 신부가 바라보았던 그 슬픈 바다가 바로 소토메였다.
소토메 언덕에 <침묵의 비>가 세워져 있고 거기에 “인간은 이렇게도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나 푸릅니다 ”라는 작가의 유명 글귀가 새겨져 있다길래 직접 가보고 싶은 소망을 품었었다.
내가 <나의 사가독서>를 쓴 것이 2015년이고 보면 서울에서 나가사키까지의 짧은 거리를 오는 데 8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고 인생은 계획대로 잘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쨌건 2023년 4월 초, 나는 드디어 이곳에 왔고 감격적으로 <침묵의 비>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작은 꿈일지라도 버리지 않으면 언젠가 이루어지는 법인가 보다 싶어 내심 감격하였다.
이 여행길에 남편과 딸, 나의 두 언니들이 동행해주었다.
<침묵의 비>는 소토메의 가파른 언덕에 세워져 있었다. 검은 돌에 과연 “人間はこのように悲しいが 海があまりにも青いです”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인생의 고달픔과 푸른 바다의 대비가 묘하게 가슴을 찌르는 구절이다.
나는 감격적으로 <침묵의 비>를 어루만져 보았다. 그리고 소토메의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4월의 화창한 날씨 아래 바다는 끝없이 푸르렀다. 저 바다의 끝 간 데에 소설에서 로드리고 신부가 찾아 간 고토열도(五島列島)가 펼쳐져 있을 것이다.
소토매가 뜻하는 외해(外海)라는 말은 거친 파도와 황량한 풍경의 이미지를 품고 있다. 원래 이곳은 농지가 거의 없어 척박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사람들이 살기 어려웠으므로 쫓기던 기리시탄들이 숨어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엔도 슈사쿠는 이곳의 가난한 농민들을 배경으로 <침묵>을 썼다.
비석 뒷면을 보니 소화 62년(1982년) 11월 22일, 소토메 촌장 아무개가 건립하였다는 설명이 씌어있었다. 이 황량한 곳에 유명 작가의 명문장을 새겨 나 같은 사람도 오게 했으니 소토메 촌장의 혜안이 놀랍다.
<침묵의 비>에서 바라보이는 저 너머 언덕 위에 <엔도 슈사쿠 문학관>이 있었다.
<엔도 슈사쿠 문학관>은 스모나다(角力灘)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져 있었다. 건물의 첫인상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새처럼, 바다를 향해 돛을 올리는 배처럼 어딘가로 표표히 떠나려는 모습처럼 보였다.
<침묵의 비>에 새겨진 슬픈 사연과는 달리 문학관은 밝고 아름다웠다. 4월의 햇살이 따뜻이 내려 비치고, 바다는 고요히 빛나고 있었다.
문학관 입구에서 엔도 선생이 집필활동을 하던 책상을 만났다.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원고지와 연필, 지우개, 시계 등이 선생의 당시의 모습을 전하는듯했다. 보기에는 단아하게 보이지만 저 책상에 앉아 작가는 얼마나 고심하며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을까를 생각하자 그 모습이 예사로 보이지않았다.
이 문학관에는 엔도의 생애와 발자취, 엔도 문학에 관련된 전시물 등 약 25,000점 이상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고 했다. 나는 엔도 선생을 사모하였지만 그가 이렇게 많은 작품을 쓴 줄은 몰랐었다. 특히 작가가 <침묵>을 쓰기 위하여 소토메 지역의 섬들을 탐방하며 자료 수집에 열중하였다는 해설문을 읽으면서 <침묵>이란 훌륭한 작품이 그저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 문학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명상을 위해 마련해 둔 창이 훤히 트인 작은 방이었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그 방에는 푸른 바다와 하늘만 가득 들어와 있었다. 엔도 선생이 생전에 사랑한 방이라고 하였다. 소토메의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한 그 방이 내 맘에도 쏙 들었다. 잔잔한 그레고리안 성가가 계속 흘러나오는 것도 좋았다.
문학관의 바깥에 소설 <침묵>의 배경이 된 지형들이 표시되어 있는 큰 돌판이 놓여 있었다. 가까이에는 오무라, 도모기, 시마바라, 아마쿠사와 고토섬이 놓여있고 저 멀리에 히라도와 이키츠키섬의 모습이 보이며 더 아득히 먼 곳에는 포르투갈과 프랑스가 표시되어 있었다.
도모기나 고토섬 및 히라도는 소설에서 두 신부가 신자들을 만나거나 쫓겨 다니던 곳이며 운젠 지옥 온천은 신자들을 온천 구덩이에 매달아 고문하던 곳이다. 지도 끝에 포르투갈과 프랑스를 표시해 놓은 것은 포르투갈에서 예수회 신부들이, 프랑스에서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이 나가사키에 들어와 가톨릭을 전파한 것을 나타내기 위함인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소토메의 푸른 바다가 보이는 돌담 위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아까부터 금발의 젊은 여인도 한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도 우리처럼 <침묵>의 무대를 쫓아 이곳에 온 것임에 틀림없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침묵>이 전하는 더 슬픈 역사의 현장을 찾아 길을 떠날 예정이다. 엔도 슈사쿠가 소토메의 섬들을 찾아다니며 가쿠레 기리시탄(숨은 그리스도인)들의 흔적을 추적하였듯, 나도 나가사키에서 벌어진 박해의 역사를 찾아 나가사키와 히라도, 운젠 지옥 온천, 시마바라 등을 따라가 볼 생각이다. 나를 동행해준 우리 식구들도 나와 함께 탄식하며 울고 웃는 여정이 될 것이다.
문학관을 나서는데 보라색의 빈카꽃들이 수국 아래서 예쁘게 피어있었다. 기독교에서 보라색은 참회와 속죄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마침 사순절이 가까워 보라색의 빈카꽃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 사순절 기간을 가슴속에 보라색 꽃 한 송이를 품고 보내고 싶다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