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운젠 지옥 온천에서

일본만의 악랄한 열탕 고문

by 보현


운젠산은 시마바라 반도의 중앙에 우뚝 솟아 있다. 지금도 열천이 샘 쏟고 있는 활화산이다. 운젠산의 기슭에 운젠 지옥 골짜기가 있다. 시마바라 시에서 차로 40분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곳이다.

운젠 지옥 온천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경사길이 이어졌었는데, 스기목들이 빽빽하게 울창하여 일본 숲 특유의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왜 이곳이 일본에서 가장 먼저(193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 1956년에는 아마쿠사 지역이 추가되어 이 일대는 현재 ‘운젠 아마쿠사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는 많은 온천이 있을 뿐만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시사철 각각 특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이 길을 가는 것은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고 자꾸 마음을 다잡아 본다. 사실 이 길로 얼마나 많은 기리시탄들이 끌려가 잔혹한 고문을 당하며 죽었을지를 생각하면 슬픈 순례길이다.


지옥온천에서의 지옥 고문

차에서 내리자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골짜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유황 냄새가 훅 끼쳐 이곳이 지옥 골짜기임을 알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온천물이 나는 골짜기를 보통 ‘지옥 골짜기’라고 부른다. 활화산 지역이 많은 일본인지라 유명한 지옥 골짜기들이 여럿 있다. 벳푸 온천이라든지 홋카이도의 노보리베츠 온천 지옥 계곡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벳푸 온천이나 노보리베츠 온천이 있는 계곡의 입구에 들어서면 짙은 연기와 유황 냄새, 때로는 솟구치는 온천수로 인해 “진짜 이곳이 지옥 계곡이구나” 하는 느낌이 확 들었지만, 운젠 지옥 골짜기는 비교적 온화한 온천 지역으로 보였다. 연기도 다른 곳에 비해 적었고 들끓고 있는 진흙탕의 규모도 크지 않았다.

그러나 고온의 황화수소가 지표의 암석을 녹여 하얀 진흙을 만들어 내고 배출되는 유황 가스의 흰 연기가 주변 일대를 덮어 나무나 풀도 자랄 수 없는 모양 하며 오이토지옥, 다이쿄칸지옥(大叫喚地獄) 등 약 30곳의 지열지대가 주변에 펼쳐진 모습이 작은 지옥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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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젠 온천


그러나 정작 이 아름다운 곳을 그야말로 지옥으로 만든 사람은 시마바라의 새 영주가 된 마츠쿠라 시게마사(松倉重政)였다. 그는 막부의 가톨릭 금교 방침에 호응하여 영내의 기리시탄들을 박해하는데 온갖 잔인한 방법들을 동원하였다. 그가 신자들을 꼬챙이에 꿰어 죽이거나 몸을 두 쪽으로 갈라 죽이기, 손가락과 발가락 뽑기, 얼굴과 성기에 불인두로 낙인찍기, 거꾸로 매달아 몸을 좁은 구멍을 통해 분뇨통에 넣기, 바닷가에 세운 말뚝에 묶어 썰물과 밀물에 시달리며 서서히 죽이기 등의 온갖 잔인한 고문 방법을 동원한 것을 보면 사디스트였음이 분명하다. 그의 이러한 잔혹한 고문 방법들이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서도 묘사되고 있다.

특히 시마바라 가까이에 운젠 지옥 골짜기가 있었으므로 그는 신자들을 고문하는 방법으로 지옥 온천을 사용하였다. 뜨거운 온천물을 끼얹거나 끓는 열탕 속으로 신자들을 밀어 넣어 배교를 강요하였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신자들을 잔인하게 죽였다. 특히 유황 분화구에 신자들을 넣었다가 건졌다를 반복하며 배교를 강요했던 ‘운젠지코쿠((蕓仙地獄)’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잔혹한 형벌이었다. 마츠쿠라 시게마사에 의해 고안된 이 형벌을 ‘지고쿠 세매‘(地獄責)라고 불렀는데, 1627년부터 1631년까지 6년간이나 계속됐다. 나가사키의 부교 다케나카 우네매도 기리시탄들을 운젠으로 보내서 ‘지고쿠 세메‘를 시켰다.


바오로 우치보리 일가의 순교

지고쿠 세메를 당해 순교한 유명한 희생자에 성 바오로 우치보리 사쿠에몬(內堀 作右衛門)이 있다. 그는 시마바라 번주 마츠쿠라 시게마사 소속 무사였는데 신실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사제를 돕다 체포된 그에게 마츠쿠라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버릴 것을 종용했으나 우치보리는 끝내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 우치보리에게는 세 명의 아들들(발다사르와 안토니오, 이냐시오)이 있었다. 관리들은 우치보리의 눈앞에서 아들들의 손가락을 차례로 자르며 배교를 종용했다. 막내인 이냐시오 우치보리는 다섯 살에 불과했다. 그래도 바오로가 배교하지 않자 관리들은 아들들을 차가운 바다에 빠뜨려 죽였다. 큰아들은 “이런 큰 은혜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순교하였다.

아버지 바오로 역시 손가락이 잘리고 인두로 이마에 '切支丹'(그리스도인의 일본표기 - 기리시탄으로 발음) 이란 낙인이 찍힌 채 운젠으로 끌려가 ‘지고쿠 세메’로 순교했다. 1627년 2월이었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주님, 주님의 손에서 저를 떼어놓지 마소서!”라는 기도를 계속 바쳤다고 전해진다. 시마바라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에 우치보리 일가의 순교 모습을 생생히 새겨두었다.


IMG_4301.JPG 우치보리 일가의 순교도

1632년 7월 19일에는 안토니오 이시다 신부 등이 운젠 화산에서 열탕 고문을 당한 끝에 나가사키의 니시자카에서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이시다 신부 등이 열탕 고문까지 당했으나 배교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자 운젠에서의 열탕 고문은 이때부터 중지되었다. 1627년부터 1632년까지 이곳에서 순교한 기리시탄이 33명이라고 한다.


이사벨라, 아름다운 조선 여인

이 중에는 이사벨라라는 조선인 여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사벨라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와 나가사키에서 노예로 살던 조선인 여인이었다. 이사벨라와 그녀의 남편은 착실히 노예생활을 했던지 후일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었다. 그들은 하느님을 믿게 되었다. 그러나 해방된 지 6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어 그들도 체포되었다.

1629년 나가사키에서 체포된 기리시탄 64명과 함께 8월 3일 운젠으로 끌려온 그녀는 동료순교자들(여성이 27명)과 함께 600여 명의 구경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3일간의 지고쿠 세메를 당하였다. 온천물을 머리에 끼얹는 고문을 당하며 배교를 종용받으면서도 순교자들이 끝내 배교를 거부하자 지쳐버린 형리들이 참다못해 "우리는 10년, 20년이고 계속해서 너희를 괴롭힐 것이다”라고 협박하였다. 그러자 이사벨라는 "10년, 20년은 잠깐 사이, 100년이라도 나는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도록 이 고통을 참고 그 시간을 행복하게 생각할 것입니다"라고 고백했다. 형리들은 신자들에게 더 큰 고통을 주기 위해 못 끝으로 신자들의 등을 할퀴고 그 할퀸 상처에다 뜨거운 유황 온천물을 붓는 고문을 행하였다. 그래도 이사벨라가 배교하지 않자 그녀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뜨거운 온천물속에 그녀를 집어넣었다. 40분간 온천물에 있었던 그녀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의식을 잃은 그녀를 관리들이 억지로 배교도장을 찍게 하였다. 이일로 그녀는 복자위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사벨라는 지금도 운젠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 널리 공경받고 있다고 한다.


IMG_4300.JPG 운젠 온천의 고문도


운젠 골짜기의 송림 사이를 거쳐 약간 숨 가쁘게 올라가다 보면 산 중턱에 있는 '오이토 지고쿠' 근처에 1961년 나가사키대교구에서 세운 십자가 순교비와 이전 1939년에 설치한 비석이 있다. 십자가 순교비에는 안토니오 이시다 신부와 미카엘 나카시마 수사 등 순교 복자 6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비석에는 시인 이쿠타 쵸스케가 순교의 피를 운젠의 붉은 철쭉에 비유해 지은 시 가운데 '성스러운 불이 타오르다'라는 시구가 새겨 있다. 시인은 봄이 되면 운젠온천 골짜기를 장식하는 붉은 철쭉에서 순교자들의 뜨거운 믿음의 불꽃을 발견한 모양이다.


IMG_4277.JPG 십자가 순교비


나는 분기공 주변을 도는 산책로를 천천히 걸으며 지글지글 끓고 있는 암석 지대를 가까이서 바라보다가 노천의 족욕탕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이 모든 고통을 꿋꿋하게 견디고 천국 행을 택한 사람들의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예수님 말씀대로 성령께서 주신 격려 덕분일까? 그래도 슬픈 역사가 숨겨져 있는 비극의 땅에 서 있으려니 비감한 생각은 어쩔 수 없었다.


운젠성당

운젠지옥온천에서 2km 정도 위로 올라간 곳에 운젠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운젠 지옥 온천에서 순교한 순교자들을 위해 세운 기념성당이다.

입구에는 이곳에 순교기념성당을 세운 유래에 대해 적고 있다.

우선 1627년부터 1632까지 운젠지옥이 영웅적 순교의 무대가 된 유래는 마츠쿠라 시게마사(松倉重政)라는 시마바라의 새 영주와 나가사키 부교 다케나카 우네매 때문임을 분명히 적시하고 있다. 마츠쿠라 시게마사의 명령에 의해 시마바라, 아리마 등의 신자들이 운젠에서 고문을 받아 30여 명이 영웅적으로 순교했다고 적었다. 나가사키 부교 다케나카 우네매도 5인의 선교사와 60인 이상의 기리시탄을 배교시키기 위하여 기리시탄들을 나가사키로부터 운젠까지 호송하여 심한 고문을 했다고 적어 우네메의 잔혹성도 적시하고 있다.

안토니오 이시다 신부 등 5인의 선교사는 1867년(교황 비오 9세) 시복 되었고 2008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의해 시마바라(島原), 운젠(雲仙)의 순교자 26위가 복자품에 올라 이 지녁에서 총 32위의 순교 복자가 탄생했다.

이곳 신자들은 많은 기리시탄들과 순교자들의 피로 물든 신앙의 성지에 교회를 세우기를 열망해 왔는데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역사적 방문에 의해 그 소망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교회 내에는 운젠 지옥 온천에서 순교한 사람들의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고 하는데 내가 방문하였을 때는 교회가 개방되어있지 않아 교회 바깥만 둘러보게 되어 아쉬웠다.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교회의 규모는 상당해 보이는데 교인 수는 많지 않다고 한다.


나는 해발 800미터의 산중에 세워진 운젠성당에 서서 지옥온천을 내려다보았다.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성당과 저 아래 들끓고 있는 지옥온천이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마치 슬픈 인생과 푸른 바다의 대비 같기도 하였다.


운젠성당.png 운젠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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