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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Dec 23. 2023

사진 한 장

시라카바 공원의 그때를 그리워하며


우리는 너나없이 사진을 열심히 찍는다. 

휴대폰도 통화를 위해서 개발되었겠지만 실제로는 사진을 찍는 데 더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휴대폰 회사에서 해마다 화소를 높인 제품 개발에 열중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사진 찍는 동물’로 정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진을 열심히 찍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의 역사를 기록하고 싶은 역사성에서 발로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냥 그 찰나의 순간을 남겨 오래 기억하려고 하는 행동에서 아닐까? 우리는 은연중에 지금 이때가 가장 젊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행복했노라고 자부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때의 그 사진을 들여다보며

 “아! 이때는 내가 정말 젊고 행복했었지” 

하는 느낌을 가지고 싶어 하면서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추억을 먹고사는 동물’ 인지도 모른다.      


자주 보는 일본 NHK TV 프로그램이 있다. 

일본의 한 유명 탤런트가 나와 시청자가 가 보기를 원하는 장소를 대신 찾아가 주는 프로그램이다. 유명 탤런트라고 하지만 그는 이미 한물이 간 노인이다. 그런 노인이 자전거를 타고 시청자가 원하는 추억의 장소를 찾아간다. 노인은 시청자의 사연 편지를 들고 지도를 펼치며 그 장소를 찾아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다. 추위도 혹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언덕을 헉헉거리며 오르는 그 모습이 경건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대개 사연의 편지와 함께 사진 한 장이 노 탤런트의 손에 쥐어져 있다. 노인은 길 중간에서 사연 편지를 한번 읽어준다. 그리고 그 추억의 장소를 찾고 난 뒤에는 그곳에서 다시 한번 더 편지를 낭독한다. 


사람들은 대개 어릴 때 가족과 함께했던 행복한 추억의 장소를 대신 가 봐 달라고 부탁한다. 어릴 때 온 가족이 찾아갔던 한적한 시골 바닷가. 그 바닷가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때를 회상하며 한 할아버지가 된 시청자는 이제 병실에 누워 추억의 그 장소를 그리워한다. 온 가족이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이라며 한 장의 사진도 곁들여져 있다. 젊었던 부모는 다 돌아가셨고 그때 어머니 배 속에 있었던 동생도 죽고 홀로 남은 사람은 요양원에 누워 자신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회상한다. 

노인을 대신하여 노 탤런트는 추억의 장소를 찾아간다. 그 장소는 유명한 곳이 아니고 이름 없는 어촌 바닷가인지라 찾아가는데 애를 먹는다. 마침내 그곳에 다다른 늙은 탤런트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시골 바닷가에서 시청자의 편지를 낭독한다. 

볼 때마다 가슴 뭉클한 사연들이 소개되어 눈물이 찔끔 흐른다. 남의 추억이라도 추억은 아름다우면서 슬프다.      


사진을 정리하다가 내 눈이 한 장의 사진에 머무른다. 

우리 온 가족이 일본의 홋카이도를 방문했을 때의 사진이다. 우리는 이제 온 가족이 뿔뿔이 헤어질 줄을 알았다. 그래서 홋카이도 여행을 계획하였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우리는 홋카이도의 오타루에도 들르고 비에이의 언덕에서 “오겐키데스까!”를 외쳐보기도 하였다. 사진 속의 얼굴들에 한 점 구름이 없고 모두 밝고 행복하게 보여 사진을 들여다보는 내 입가에도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한 장의 사진이 유독 내 마음을 움직인다. 



사진 속의 우리는 아오이 이케(青い池)를 지나 막 시라카바 공원으로 나온 참이었다. 아오이 이케는 알루미늄이 포함된 호수물이 신비한 청색을 띠어 홋카이도를 가는 여행객들의 필수 방문지가 되어 있다. 

그러나 내가 바라보고 있는 사진은 아오이 이케가 아니라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시라카바가 줄지어 서 있는 공원이다. 시라카바는 자작나무를 가리키는 일본말이다. 흰 줄기의 신비한 나무들이 줄지어 선 그곳은 투명할 정도로 공기가 맑았고 청아하였다. 깨끗한 자연 속에 우리는 완전 동화되어 한 점 의혹도 없는 행복감에 도취되었었다. 사진 속에 고스란히 그때의 순수한 감정이 남아있다. 아!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제 아들, 딸은 자기 가정을 꾸려 멀리멀리 떠났다. 남편과 나만 남아 옛 사진을 바라보며 추억에 젖는다. 남편은 그동안 병으로 죽을 고생을 하였고 그 깊은 상흔이 온몸에 남아있다. 나도 남편을 간호하느라고 그랬던지, 세월이 흘러 어쩔 수 없었는지 얼굴에 수심의 그림자가 내려앉고 그때의 행복했던 얼굴을 잃었다. 


다시는 갈 수 없을 것 같은 그곳을 그리워하다가 NHK의 할아버지 텔런트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우리 가족 대신 사진 속의 그곳을 찾아가서 시라카바 나무 곁에서 한 가족의 단란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N

HK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아오이 이케 앞의 시라카바 공원에 들르면 우리를 대신하여 그곳 사진 한 장 올려주면 좋겠다. 행복한 가족사진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 


사진 한 장을 앞에 두고 옛 추억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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