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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Oct 24. 2023

자이언 캐년의 한국 다람쥐

이곳 캘리포니아의 마운틴 뷰(Mountain View)에는 청설모가 많이 산다. 

아들 집 뒤뜰에 커다란 가래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거기에 추자가 열리면 온 동네 청설모들이 몰려와 파티를 연다고 했다. 내가 있을 때에도 청설모들이 자주 출몰해 담을 타고 곡예를 벌이며 뛰어다녔다. 때로는 쌍으로 나타나 나무를 오르내리며 희롱을 벌이기도 한다.      


뒤뜰에 나타난 청설모


청설모뿐만 아니라 때로는 엄청 커다란 다람쥐가 출몰하기도 하였다. 

캘리포니아 땅다람쥐라고 하는 종이다. 몸집이 크고 특히 꼬리가 길고 아름다운 다람쥐인데 눈가에 하얀 테가 있어 특이하게 보이는 종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는 바와같이 캘리포니아 지방에 많이 서식하고 있는 듯했다.


뒤뜰에 나타난 캘리포니아 땅다람쥐


마운틴 뷰의 거리에는 참나무들이 많다. 거리 곳곳에 커다란 참나무들이 가로수로 식재되어 있어 길에 도토리들이 많이 떨어져 있다. 미국 전체로 이야기하기에는 견문이 짧지만, 샌프란시스코에는 확실히 참나무가 많다. 나파밸리로 가는 길에서 보이는 주변의 건조한 산악 곳곳에도 큰 나무가 보이면 대개 참나무들이다. 건조한 지역에서 자라는 참나무들은 약간 몸이 꼬이면서 자라서인지 멀리서 보면 웨이브가 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뿌리를 깊이 내리는 관계로 비가 잘 내리지 않는 건조한 이곳에서도 참나무가 잘 자라는가 보았다.      

참나무가 많다는 것은 다람쥐의 먹이가 많다는 뜻이다. 통통하게 살이 찌고 털에 윤기가 반질거리는 다람쥐들이 거리로, 나무로 뛰어다니는 모습이 평화로운 동네 모습에 일조하는 것 같다.


아들 딸 내외와 함께 나파밸리에서 며칠 머물렀다. 와이너리들이 눈 아래 보이는 산 위의 산장에서였다. 그곳의 산에도 큰 참나무들이 많았다. 밤에는 몰랐는데 아침에 일어나 바깥을 산책하다 보니 도토리들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미국 도토리는 크고 탐스러웠다.

이국땅에 살고 있는 아들딸 내외에게 도토리 음식을 먹이고 싶은 한국 어머니의 본성이 살아나 나도 모르게 도토리를 주웠다. 줍다 보니 금세 한 바가지는 되었다. 차에 실어 집으로 가져왔더니 아들이 영 곤란한 얼굴을 하였다. 아들은 예전에 삶은 밤을 먹다 벌레가 반쯤 잘린 채 남아있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나 보았다. 밤과 도토리의 벌레가 같지는 않지만, 아들이 질색을 하니 도토리묵의 꿈은 버릴 수밖에 없었다.

뒤뜰의 나무 아래에 도토리를 소복이 쏟아 두었더니 동네 청설모들과 땅다람쥐들이 와서 잔치를 벌였다. 도토리를 땅에 묻고 앞 발가락으로 땅을 메우느라고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았다. 어떤 놈들은 도토리를 물고 담을 넘어 어딘가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어딘가에 묻어놓고 오는 모양이었다. 이틀 만에 도토리들이 다 처분되었다.

한 번은 며느리가 엄청난 호박요리를 해주었는데 호박 속의 씨앗이 탐스러웠다. 이걸 또 뒤뜰에 내놓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다람쥐들이 달려와 맛나게 먹거나 땅에 묻느라고 부산을 떨었다. 내가 가만히 바라보고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쁘게 겨울철 식량비축에 여념이 없었다.      


이곳에서 다람쥐들을 보니 한국의 앙증맞고 귀여운 다람쥐 생각이 났다. 갈색의 털에 흰 줄의 스트라이프가 있는 작은 몸에 몸보다 더 큰 꼬리를 쳐들고 입 안에 무언가를 넣고 오물거리는 모습이 그럴 수 없이 귀여웠다. 우리 어릴 때는 다람쥐들이 참 많았다. 엿장수들이 쳇바퀴 돌리는 다람쥐를 가지고 다니며 흥행을 돋우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때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몇 해 전 월정사 근처에서 묶었을 때였다. 그 숲에 다람쥐들이 꽤 여러 마리 보여 반가웠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런데 한국의 몸집이 작은 다람쥐는 시베리안 칩멍크(Siberian chipmunk)라고 하여 청설모나 캘리포니아 땅다람쥐와는 종이 다르다. 이름 그대로 시베리아의 스텝 지역이 원산지라고 한다. 동물학자들에 의하면 시베리안 칩멍크 중에서도 한반도에 사는 종은 시베리안 칩멍크와는 DNA가 좀 다르다고 한다. 이 다람쥐가 어떻게 한반도에 머물게 되었는지, 어떻게 DNA 구성이 달라졌는지 궁금했다. 

아마도 동이족이 우랄 알타이를 넘어 남쪽으로 내려올 때 함께 남하하여 이 땅에 온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보현생각). 동이족이 파란만장한 여정을 거쳤던 것처럼 다람쥐도 파란만장의 여정을 거쳐 한반도에 정착하면서 약간 다른 형질을 갖게 된  것이라고 생각해 보면 이 작은 동물이 예사롭지 않게 여겨진다. 다람쥐는 한민족과 함께하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소중한 동물의 하나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무튼 한국 다람쥐가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하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 같다.    


한국산 다람쥐의 앙증맞은 모습이 알려지면서 세계인들이 애완동물로 이 다람쥐를 많이 사 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으로 대량반출되었고(그 수가 50만 마리라는 설이 있다), 1970년대에는 유럽으로 30만 마리나 수출될 정도였다고 한다. 가난해서 여인들의 머리털까지 팔아야 했던 1960년대 한국에서 다람쥐가 주요 수출품이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운 사실이다. 유럽인들과 일본인들은 이 한국산 다람쥐를 애완동물로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다람쥐가 씨가 말랐나 의심이 될 지경이다. 혹자는 청설모가 다람쥐를 잡아먹어 다람쥐 개체가 줄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청설모의 주요 먹이가 다람쥐는 아니라고 한다. 현재는 환경부에서 다람쥐를 포획·채취 금지 동물로 지정해 두고 있어 앞으로 이 땅에서 좀 더 많은 다람쥐를 만날 수 있게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해외로 입양돼 간 한국산 다람쥐들이 대량 증식하면서 환경교란종으로 지정되었다니 이 또한 놀라운 일이다. 주인들의 변덕으로 버려지거나 동물원을 탈출한 다람쥐들이 야생으로 빠져나가 번식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벨기에, 독일, 프랑스에서 빠르게 증식한 다람쥐들이 환경교란종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라임병을 일으키는 보렐리아 박테리아를 옮기는 진드기의 숙주로 밝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한다.  


얼마 전 미국 서부의 사막지대에 있는 유명 관광지인 자이언 캐년(zion canyon)에 갔을 때였다. 붉은 사암의 돌산으로 구성된 웅대한 자연이 압도적인 풍광을 보이는 유명한 곳이다. 이곳은 몰몬교도들이 이단으로 몰려 쫓기면서 들어간 곳이라고 한다. 몰몬교도들은 이곳을 성경에 나오는 시온산이라고 생각하여 이곳을 시온계곡이라고 부른 데서 자이언 캐년의 이름이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자이언캐년의 장대한 풍경


그런데 이곳에 다람쥐들이 많이 있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가와 사람 주변을 맴도는 데, 보기에 영락없는 한국 다람쥐였다. 다만 몸집이 한국 다람쥐보다 작았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 다람쥐들은 자이언 캐년 측에 의해 한국에서 입양되어 이 계곡에 방류된 것이라고 한다. 자이언 캐년에서 찍은 사진에도 이 다람쥐들이 등장한다. 사진을 자세히 보니 다람쥐는 나의 손 주의를 맴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또 다른 사진에도 다람쥐가 가방을 쳐다보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이 사진을 보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이 다람쥐들은 배가 고팠던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 주변을 맴돌았던 것을 나는 이들이 사람에 대한 친화력이 커서 그런 줄 알았다. 또는 이국 땅에서 만나는 한국인이 반가워서 그런 줄로도 생각했다(억측).      


오른손 근처에 작은 다람쥐 모습이 찍혔다.


사실 미국 서부의 사막지대는 관광자원은 될지언정 식물이 자라기에는 열악한 곳이었다. 거의 나무가 없거나 나무가 있다고 해도 키가 낮은 종이 물기를 아끼기 위하여 가시처럼 단단한 잎으로 무장해 있는 형태였다. 참나무같이 보이는 나무도 있었지만 역시 땅바닥에 붙어 잎이 딱딱한 가시처럼 보였는데 거기에 도토리가 열릴 것 같지 않았다. 가이드의 설명이 맞는다면 결국 이곳에 입양된 한국산 다람쥐들은 극도의 열악한 환경 속에 방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미국에 와보니 미국이 엄청 큰 나라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나무도 크고 동물도 크고 사람들도 크다. 심지어 시금치도 미국에서는 엄청나게 큰 잎으로 자란다. 이 풍요로운 나라에 입양되었으면 다람쥐도 잘 먹고 잘 커서 몸집도 더 커지고 털에 윤기도 자르르 흘렀으면 좋으련만 바싹 마른 작은 몸이 되어 인간에게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으려고 인간 주변을 감돌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이 자이언 계곡의 다람쥐들이 너무 가엽게 생각되었다.  


아들 집 담장을 뛰놀던 윤기 흐르던 청설모와 땅다람쥐 생각이 났다.

사람이나 다람쥐나 이국 땅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이 얼마나 험난했을까 싶어 괜히 마음이 쓰였다. 이제 미국의 사막지대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저 한국 다람쥐들을 다시 고국의 품으로 되돌려주었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이제 한국의 산하는 푸르르고 풍성한 도토리도 열리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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