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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Jan 10. 2024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2)

서평원 회장님을 추모하며

서 회장님께서 병중에 계신 줄은 알았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내던 차에 부고를 받고 말았다. 이번에는 장례식장에라도 가서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싶었건만 가족장으로 조용히 장례를 치르신다고 하여 그마저도 하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회장님의 천국행을 빌었으나 회장님 영정 앞에 국화꽃 한 송이 놓을 수 없는 마음이 참 슬펐다. 


서평원 회장님은 나의 기도가 필요 없는 분이라고 생각된다. 회장님은 외모에서 이미 성자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분이셨다. 그분은 기업인으로서 전설적인 존재로 이름을 떨치셨지만 내가 알고 있는 회장님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함과 사랑으로 가득하셨다. 

서평원 회장님은 엘지전자가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 앨라배마에 TV 공장을 지을 때 진두지휘 하셨다. 그 후 미국에서 40여 년을 사시다가 조국을 그리워하던 회장님 부부는 얼마 전 우리나라로 영구 귀국하셨다. 나는 남편 덕분에 회장님 내외와 몇 차례 만남을 가지는 영광을 누렸다. 전설적인 세평에도 불구하고 회장님은 너무 소탈하고 다정하여 나의 긴장이 첫 만남에 녹고 말았다.  

     

회장님의 인품이 세상에 드러난 사건은 故이태석 신부와 관련이 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회장님(암브로시오)은 이태석 신부를 흠모하던 차에 이신부의 제자들이 의대생이 됐다는 기사를 읽고 무언가 그들을 돕고 싶다고 결심하셨다고 한다. 미국에서 돌아온 회장님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이태석 재단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회장님이 국내외를 다니면서 틈틈이 모았던 미술품(동양화, 서예, 서양화) 70점을 재단에 기증하였다. 이 작품들로 만든 기금은 이태석 신부가 그토록 사랑했던 톤즈지역 의료시설 지원에 쓰게 되었다. 

     

나는 서 회장님의 작은 몸에서 품어져 나오는 사랑에 압도되었다. 큰 사랑을 품고 있으면 주위로 사랑이 넘쳐흐른다는 것을 그분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회장님은 내가 쓴  <한국가톨릭순교성지를 찾아서>를 받아보시고 너무나 기뻐하셨다. 그 기뻐하시는 모습에 한점 가식이 없으셨다. 또 내가 쓴 남편의 병상일기인 <부부회화나무처럼>을 읽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들었다. 남편이 병중에 있을 때 회장님 내외분께서 남편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 주셨다.   


서 회장님을 잊을 수 없이 만드는 사건은 회장님께서 보내 주신 꽃씨 때문이었다. 남편과 내가 시골에 작은 집을 지은 것을 아신 회장님께서 우리 집으로 꽃씨 한 가마니를 보내주셨다. 꽃씨를 한 가마라고 표현했는데, 좀 과장해서 말하면 경비행기로 뿌려도 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금계국이었다. 나는 진짜 놀랐다. 꽃씨와 더불어 회장님의 메모가 붙어있었다. 생태계에 꼭 필요한 벌이 죽어가고 있으니 꽃을 많이 심어 벌이 생존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당부 말씀이었다. 

난처한 일은 그 많은 꽃씨를 뿌릴 곳이 마땅찮다는 것이었다. 우리 시골집 마당은 금계국 몇 송이만 심어도 될 정도로 좁다. 나는 일단 우리 마당에 꽃씨 몇 개를 뿌렸다. 금계국은 놀라운 번식력을 자랑하였다. 온통 마당을 다 차지할 기세로 번져나가기에 일부는 솎아 내야 했지만, 회장님의 금계국은 우리 마당에서 노란 꽃을 피웠다. 

여름철 고속도로변에 금계국이 노랗게 피어나면 초록의 산하를 아름답게 받쳐준다. 하지만  마당에 심기에는 금계국의 번식력은 파괴적이었다. 이걸 어디다 뿌리나 고심하다 아직도 회장님의 꽃씨는 시골집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그 회장님께서 한국에 돌아온 이듬해 코로나에 걸리셨다. 그 후유증으로 폐가 굳어지는 폐섬유증이 진행된 것이 결정적인 사인이라고 들었다. 한국에 돌아오시지 않았더라면 회장님은 좀 더 수를 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그러나 고국에 돌아와서 사랑하는 친구들과 조국의 품에 안겨 돌아가신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내 마음을 위로해 본다. 

서평원 회장님의 명복을 빌며 올해는 꼭 회장님의 씨앗을 시골 들판에 뿌려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언젠가 어디서 다시 서 회장님을 만날 수 있을까?

그날 나는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나의 존경하는 분을 만나 뵐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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