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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Jan 10. 2024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1)

은사의 사모를 보내며

         

살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된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으로 만나기도 하고 친구로 만나기도 하며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되는 인연도 있다. 수많은 인연 중에는 애착이 커서 영원히 함께 살고 싶은 소망을 품게 되는 사람도 있다. 서로 흠모하고 정을 나누던 사람의 부고를 받아 들면 더욱 그런 애틋한 마음이 든다. 이생에서는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욕심이자 인생의 최고 슬픔이기도 하다. 

내 주변에 계셨던 다정한 사람들을 보내며 우리가 먼 훗날 어디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하며 이 글을 쓴다.       


엊그제 띠리리 하고 들어온 문자를 읽다가 내 눈을 의심하였다. 아는 분의 부고였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카톡을 주로 받았는데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상주에게 전화를 내었다. 상주는 나의 대학 은사이시다.     

 

“교수님, 이게 무슨 소리예요? 왜 사모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건가요?”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전화기 너머 떨리지만 침착한, 그러나 노쇠한 목소리가 들린다.    

  

“폐암이었어. 지난 10월에 알았는데 손쓸 수 없는 지경이었어.”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 10월에 나는 미국에 있었고 미국 여행 소식을 즐겁게 사모께 전하고 있었다. 사모는 나의 은사의 부인이었지만 내게는 다정한 친구 같은 분이셨다. 사모는 내가 보낸 사진을 보고 기뻐하며 남편의 건강을 염려하였었는데. 그러면 그때 이미 당신이 회복될 수 없는 병에 걸린 것을 알고 계셨단 말인가? 나는 사모의 상태를 알지도 못한 채 들뜬 여행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고 생각되자 부끄러움으로 참담한 마음이 되었다. 왜 내게 당신의 상태를 알리지 않았을까 원망하는 마음도 일었다. 


은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참 착한 사람이었는데...  

집사람이 ○교수 참 좋아했었는데...”     


은사의 사모는 다정하고 고운 분이셨다. 특히 쌍꺼풀이 짙게 진 아몬드 눈매가 무척이나 매력적이셨다. 은사님 말씀대로 나를 참 사랑해 주셨던 분이셨다. 나는 나의 은사보다 사실 사모가 더 좋았다. 그것은 같은 여성들만이 나눌 수 있는 친밀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사모의 아몬드 눈을 바라보며 나의 애환을 기꺼이 털어놓았고 사모는 다정한 언니처럼 나의 애환을 쓰다듬어 주었다. 남편이 아파 입원해 있을 때 사모께서 참 기도를 많이 해 주셨다. 사모의 다정했던 성품과 선한 눈망울과 훌륭한 인품을 생각하자 그렇게 좋은 분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게 느껴졌다. 

    

장례식장에 뛰어가자 사모는 여전히 다정한 웃음을 띄우고 나를 맞이하였으나 그것은 영정사진 속의 모습이었다. 

나의 은사는 못 보던 몇 달 동안 몰라보게 야위었고 나의 손을 잡는 그 손이 너무 가늘어 가슴이 턱 막혔다. 은사와 사모는 한 쌍의 잉꼬부부처럼 살아오셨다. 이제 나의 은사는 저 다정한 여인을 잃고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하니 내 마음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은사는 허공을 보며 또 뇌었다.  

   

“그 착한 사람을 왜 그리 일찍 불러가셨을까? ”     


나는 은사님을 위로하며 말한다.   

   

“아마 하늘나라에 착한 사람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착한 사람은 이 지상에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영정사진 속에 남은 사모의 모습을 바라보며 유한한 인생이 가슴에 팍 와 담겼다. 

우리가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날 나는 좀 더 좋은 모습으로 나의 사랑하는 분을 만나 뵐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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