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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Feb 08. 2024

이승만의 <건국전쟁>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조간신문을 읽던 남편이 갑자기 영화 보러 갈 것을 제안하였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그날, 신문의 주말 편에 한 영화가 소개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남편과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보았다. 영화예매를 위해 사이트를 뒤졌더니 이 영화 상영관이 극히 제한적인 데다 상연 시간도 하루에 두 번, 그것도 오전 이른 시간과 밤늦은 시간이 전부였다. 일흔이 넘은 노인네들이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영화를 보러 나설 수는 없어서 우리는 이른 아침밥을 챙겨 먹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마침 지방에 계시는 손위 동서가 우리 집에 와 계셔서 함께 극장으로 갔다.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당시의 모습이 재현되면서 마침내 감독이 조명하고자 했던 한 고독한 영웅의 모습이 나타났다. 건국 영웅 이승만 전 대통령이었다.

감독은 그동안 편견과 오명으로 가득 찼던 영웅의 얼굴에서 때를 벗기고 그 본래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동안 이승만 대통령은 이 나라에서 부정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나만 해도 이승만이라고 하면 부정선거를 저지르다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하와이로 망명한 독재자로 여기며 살아왔다. 영화를 보니 내가 가진 부정적인 의미보다 훨씬 더 부정적으로 그가 평가되고 있음을 알았다. '독재자’ 뿐만 아니라 ‘미국의 앞잡이’, ‘친일파’, ‘런승만’(한국전쟁 때 한강 다리를 부수고 먼저 도망쳤다는 의미), ‘양민 학살의 주범’, ‘하와이 망명설’, ‘막대한 비자금 조성설’ 등 대부분 부정적 묘사가 그의 얼굴에 덧칠되어 있었다.      

이 다큐 영화를 만든 이는 김덕영이라는 감독이다. 북한 사회에 관심이 있던 그는 4년 전에도 '김일성의 아이들'이라는 화제작을 만들어 국제적으로 평판을 얻은 바 있다. 김 감독은 북한 관련 취재를 하다가 1990년대 평양에 다녀온 한 목사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평양 거리에 '이승만 괴뢰 도당을 타도하자'라는 구호가 붙어 있더라는 이야기를 그 목사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했다. 김 감독은 “왜 북한은 아직도 이승만에 집착할까”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승만에 관한 모든 자료를 섭렵하던 중 그는 이승만 대통령이 왜곡 평가된 근저에 북한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고 한다. 북한은 자신들이 한반도에서 민족의 정통성을 계승한 정치 집단이라는 거짓 이데올로기를 퍼뜨리기 위해  ‘이승만 죽이기’ 공작을 끊임없이 시도하였고 우리나라의 1980년대 친북 주사파 세력들이 그에 동조하면서 이승만은 천하의 역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한마디로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건국 세대 전체에 대한 죄송한 감정이 이 영화를 만들게 했다."라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이 영상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인간됨을 증언하는 여러 사람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특히 이승만을 증언하면서 눈물을 감출 수 없어하는 하와이의 한 동포 노인의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는 나도 옆자리의 동서도 터져 나오는 슬픔으로 눈물을 훔쳐야 했다. 사람들의 인터뷰가 주축이 된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렇게 감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는 감독의 절제된 항변이 슬프고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마침내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 자막이 올라왔다.

나는 영화가 끝나고도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눈물이 흘러내렸기 때문이었다. 그 눈물은 전후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데 일생을 바친 한 영웅에 대한 찬사때문이 아니라 그를 폄하하고 무시한 우리의 오만이 슬퍼서였다.

영화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어떤 분이 “이승만 만세”를 외치자 “이승만 만세”를 외치는 소리가 파도를 타고 이어졌다.

예전에 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영화 <영웅>을 보았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영화가 끝났는데도 어린 소년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너무나 서럽게 흐느꼈다. 사람들이 그 소년을 기특하게 바라보았고 내게도 소년의 모습이 기특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때와 달리 이른 아침에 극장을 메운 대부분의 관객은 노인들이었다. 노인들은 탄식을 짧게 내뱉기는 했으나 섧게 울지는 않았다. 극장에 들어설 때부터 알았지만 젊은 관객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서럽게 크게 우는 소년도 물론 없었다.

노인들에게서는 특유의 어눌함이 보인다. 극장표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고(젊은이들은 앱으로 미리 구매해 온다), 상영관을 몇 번이나 묻고, 그 흔한 팝콘도 사지 않는다. 그 대신 구부정한 허리를 한 어부인의 손을 잡고 어두운 극장 안을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겨우 찾는 모습이 어김없이 노인이다. 그 모든 불편함을 딛고 노인들을 극장으로 나서게 하는 영화가 <건국전쟁>이다. 감독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건국 시민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고 했는데 극장을 찾은 노인들은 마치 자기들이 주인공들이 된듯 뿌듯한 얼굴로 극장을 나갔다.


영화를 본 나의 소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승만은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 준비된 하늘의 선물이다’라는 것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바람 앞의 등불 같았던 나라를 구한 영웅이 이순신이었다. 류승룡은 <징비록>에서 “우리나라를 망하지 않게 하려고 하늘이 이순신을 내었다”라고 몇 번이나 하늘에 감사하고 있다. 그런데 하늘은 공산 세력에 무너지려는 이 나라를 구하려고 또 한 번 위대한 인물을 내었고 그 사람이 바로 이승만이었다.

나의 이러한 소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하에서 한 청년이 나라의 독립운동에 투신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가 미국 유학을 통해 공산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에 민족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야말로 이 나라를 구한 하늘의 뜻이 아니었겠는가. 당시 일제의 강압 속에 있던 가난한 나라의 한 청년이 어떻게 죠지 워싱턴대를 졸업하고 프린스턴과 하버드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여 미국 백인들도 쌓기 어려운 지성을 몸에 익힐 수 있었는지 실로 기적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는 그 과정을 통해 1920년대 세계 제일의 국가로 부상하는 미국을 직접 체험하였다. 그가 강대국들의 냉혹한 국제질서 재편 논의 속에서 대한민국의 존재를 알리고 독립 의지를 천명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실크헷과 정장을 빌려 입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모습은 참으로 숙연하게 보였다. 그의 영어 실력, 그의 지성, 그의 예지가 있었기에 한미방위조약이 만들어졌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안정과 평화 위에서 번영의 토대를 만들었다. 우리는 공산주의 북한과 그 추종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낸 그의 노고를 기억해야 한다.      


이쓰모글루와 로빈슨이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다시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탁월한 시선을 가진 이 두 경제학자는 책의 모두에 북한과 남한의 경제 상황을 날카롭게 비교한다. 이는 최근 얼론 머스크의 위성이 찍은 한반도의 모습에서도 극명히 드러난다. 불빛 하나 없이 깜깜한 북쪽과 온통 불빛으로 넘쳐나는 밝은 남한의 모습이 그것이다. 38선을 경계로 두 사회가 이렇게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이유를 두 석학은 제도 탓으로 풀이한다.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공산사회와 개인의 창의적 노력에 대한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간의 제도 말이다.

이들은 지리적 이점이 문명의 차이를 만들어 내었다고 주장하는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총균쇠>를 줄곧 비판하면서 지리적 차이가 아니라 제도적 차이가 문명, 문화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주역이었음을 주장한다. 그들의 시선은 전 세계를 아우르고 인류의 전 역사를 넘나들지만, 남북한을 동시에 놓고 비교하는 그들의 수완은 수긍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저자들은 “수탈적 체제의 지배자들은 포용적 제도가 불러올 창조적 파괴를 두려워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인민의 힘을 키워줄 어떤 변화에도 반대한다”라고 줄곧 주장한다. 오늘날 많은 국가가 수탈적 지배 체제 속에 놓여있고 세계의 많은 사람이 그 체제 속에서 신음하는 것을 보여주는 그들의 자료를 따르다 보면 대한민국을 번영으로 이끈 지도자의 혜안에 놀라게 된다. 그 지도자가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이 대통령의 탁월한 식견과 혜안이 이 나라에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켰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번영, 자유가 모두 그 제도에서 유래하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르기까지 극심한 공산주의자들의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외로운 영웅이었다.     

 

전 세계 경제학자들은 오늘날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토대로 ‘이승만의 토지개혁’에 주목한다. 지주들의 반대를 극복하고 이뤄낸 1949년 토지개혁은 농노 상태에 있던 많은 국민을 의엿한 독립된 개인이자 인격체로 승격시켰고 스스로 경제주체가 되도록 자극함으로써 경제 발전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도록 하였다. 사람은 자기 소유를 사랑하게 되어있다. 자기 것을 지키고 키우는데 온 정성을 기울이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재산에 대한 인정이야말로 인간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왔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세계의 경제학자들은 개개인의 잘 살고자 하는 노력과 투지가 오늘날 대한민국 대기업의 성장 촉매가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영화에는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1949년 이승만의 토지개혁이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인터뷰어 중 내가 좋아하는 마이클 브린(Michael Breen) 전 주한외신기자클럽 회장도 등장한다. 나는 그가 완전 민머리인 것을 처음 알고 기뻤다. 책에서 만난 그가 직접 인터뷰어로 나오자 반가웠던 셈이었다. 아무튼 그는 “만약 한반도가 분단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아마 미얀마 같은 나라, 혹은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가 말하는 분단이란 두 체제 간의 경쟁을 뜻하기도 하겠지만 한반도가 적화되었다면 보여질 미래를 나타내기도 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뿐만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도에 이미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하여 여느 서구 여성들도 누리지 못한 민주주의를 이 나라에서 체득하게 하였다. 4.19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와 부정선거를 규탄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심어준 자유민주주의 풍토 탓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승만은 강대국의 이기적인 모습을 체득하고 있었다. 미국은 세계 경찰의 역할을 기꺼이 맡아 세계 분쟁지역에 쉽게 뛰어들지만, 갈등이 오래 지속되는 것을 견딜 수 없어한다는 것을 이승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발을 빼자 6.25 전쟁이 발발한 것을 지켜본 지도자였다. 그가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해 전후에도 미국의 안보 공약을 확고히 한 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나라의 안정과 번영의 핵심이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데이비드 P. 필즈(David P. Fields) 위스콘신대학교 동아시아센터 부소장은 “이승만은 미국과 대한민국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비전을 갖고 있었다”며 “아무도 그 당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 오직 이승만이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기 때문에 북한과 주사파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미군철수를 외쳐댄다. 우리나라의 가장 약한 고리를 끊어내기 위하여.       


지금 북한의 젊은 지도자는 핵을 안고 계속 남한을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의 차르로 등극한  푸틴은 근육질을 자랑하며 주변 나라를 침략하고 있고 중국의 시진핑은 음험한 시선을 한반도에 돌리고 있다. 이 백척간두의 작은 나라가 이토록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문화 강국이 되고, 국민 개개인이 번영과 행복을 누리고 사는 것은 이승만대통령이 만든 한미동맹 덕분이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웅을 만들지 않는 강퍅한 마음을 진작부터 개탄해 왔는데 이 영상을 보면서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다. 서양에 가면 거리 이름이건, 건물 이름이건, 다리 이름이건 대부분이 사람 이름으로 되어있다. 미국의 초대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이름이 들어간 건물이나 도로가 수백 곳이 된다고 한다. 베트남을 방문한 사람들은 베트남인들이 얼마나 그들의 독립투사 호찌민을 사랑하는지 알 것이다. 그들은 호찌민이 사망하자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을 호찌민시로 바꾸었고 그의 시신을 방부처리하여 전 국민이 경배하고 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갔을 때 묵은 호텔 이름이 아주 어려웠다. 알고 보니 그 지역에 살았던 원주민 인디언족의 이름이라고 했다. 백인들이 인디언을 몰아내고 만든 역사를 생각하면 쓴웃음이 나오지만 그래도 어쨌든 그 이름을 기억하려고 하지 않은가.

우리는 기억해야 할 사람들도 애써 깎아내리면서 기억에서 지우려고 애를 쓴다. 이 못난 습관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 속에서, 그렉 브라진스키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국이 자신의 역사를 정직하게 점검하고 자신의 지도자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선 필요한 게 있다. 가장 중요한 작업은 문서와 기록 자료에 기초한 평가다. 한국은 1950년대 자료에 대한 연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우리는 우리를 만든 역사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안락의 향유만을 쫒고 있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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