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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육아법: 업어키우기

포대기 좋아요

by 보현

내가 미국에 손주를 봐주러 간다는 것을 아는 한 지인이 포대기를 줄까 하고 물었다. 안 그래도 하나 사가지고 가려던 참이라 고맙게 얼른 받았다. 포대기는 완전 새것이었다. 지인의 푸념에 의하면 손녀를 위해 포대기를 구입하였건만, 신식 며느리가 포대기 접수를 거부하는 바람에 이렇게 새것으로 남게 되었다고 하였다.

시어머니가 애써 준비한 포대기를 접수 조차하지 않은 그 신식 며느리의 태도가 마음을 심란하게 하였지만 그 며느리 덕분에 내가 손자 보는데 이 포대기를 요긴하게 사용하였다.


내가 경험해보니 포대기로 아이를 업는 육아법이 썩 훌륭한 것으로 여겨졌다. 우선 포대기로 손자를 등에 묶자 손자와 내가 한 몸이 된 듯 혼연일체의 느낌을 받았다. 나는 내 등을 통해 느껴지는 손자의 따뜻한 체온과 심장소리와 꼼틀거리는 손길이 너무 좋았다. 손자도 할머니의 등에서 편안해 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우리 집 신식 며느리는 아이 업어주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나에게는 아기 업기의 노하우가 잠재되어 있었던가 보았다. 내가 업어주면 아이가 편안해하면서 쉽게 잠이 들었다. 제 엄마 아빠가 어설프게 아이를 업으면 아이는 불편한 듯 칭얼거렸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등을 벤츠 에스 클래스라고 하였고 며느리의 등을 그랜저라고 하였으며 아들을 다마스라고 규정하며 즐거워하였다.


포대기를 이용해 아이를 업어주는 방식은 장점이 많다. 우선 물리적으로 업기가 가장 허리에 부담이 덜한 방법이라는 것을 체득하였다. 손자는 상위 1%에 드는 초우량아여서 6개월에 불과한 데도 몸무게가 10킬로그램이 넘었다. 안고 있기에 버거웠으나 등에 업으면 제일 오래 견딜 수 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장점은 아이가 업히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를 업고 집 밖으로 나가면 아이는 좋다고 다리를 구르며 옹알이를 크게 하였다. 아이는 특히 아침 외출을 좋아하였는데 내가 아이를 업고 뒤뜰의 호두나무 아래를 거닐면 아이는 나처럼 호두나무를 유심히 바라보았고 새들이 와서 지저귀면 저도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뒤뜰의 호두나무


우리는 아이의 큰 소리의 옹알이를 ‘아이의 아침 노래’라고 불렀다. 나는 손자의 즐거워하는 모습이 좋아 아침마다 아이를 업고 호두나무 아래로 나가 호두나무의 <은밀한 사랑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는 마치 알아듣기라도 하듯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갖가지 새가 호두나무에 와 지저귀면 새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나는 등에 업혀 세상 편안한 자세로 호두나무를 쳐다보고 새소리를 듣고 저도 크게 노래를 부르는 손자를 보면서 이 방식이야말로 아이의 지적 정서적 성장에 도움이 되겠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이를 업고는 아이가 알아듣든 말든 온갖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였다. 남편과 둘이 있을 때는 거의 말이 없었던 나였던지라 아이에게 계속 뭐라고 지껄이자 목이 다 쉬었다.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손자를 데리고 한국으로 나올 때 사실 걱정이 많았다. 비행기 안에서 계속 울어대던 아이들을 보았던 경험이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기 포대기를 따로 빼서 기내 가방에 넣었다. 아들 내외도 은근히 나의 등에 기대를 거는 눈치였다.


아이가 잠을 쉽게 자게 하기 위하여 일부러 밤늦은 비행기를 예약하였다. 그러나 아이는 환한 불빛과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공항 모습이 신기한 듯 까만 눈을 반짝이며 세상구경하기에 바빴다.

나는 아이를 재우기 위하여 아이를 업고 공항 대기실을 여러 차례 돌았다. 동양 여자의 아이 업은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한국식 포대기 문화가 얼마나 우월한지를 자랑하듯 다녔고 손자도 기쁜 듯 옹알이 노래를 불렀다.


며느리가 비행기의 택시에 맞추어 아이에게 우유를 듬뿍 먹였다. 아이 머리에는 헤드샛을 끼워주었다. 손자는 피곤했던지 마침내 잠이 들더니 무려 열 시간을 잤다. 그리고 도착 두 시간쯤 전에 잠을 깨어 칭얼거리며 울기 시작하였다. 나는 얼른 아이를 업고 비행기 안을 걸어 다녔다. 사람들을 구경하던 아이는 잠시 후 나의 등에서 다시 평화로이 잠이 들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태평양을 건너 무사히 인천공항에 발을 디뎠다. 스튜어디스들도 근처의 사람들도 아이가 순하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들도 갖난쟁이를 보는 순간 비행이 힘들겠구나 하고 걱정하였을 터였다. 나는 아이의 순한 기질도 중요하지만 포대기도 한몫하였다고 생각하고 포대기에게 감사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진산성지에 성지순례를 갔다가 아기를 업은 성모상을 발견하고 크게 놀랐다. 진산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의 고향에 세워진 성당이다. 나는 이 조촐한 성전을 좋아하여 이번이 세 번째의 방문이었건만 이곳에 세워진 성모상에 처음으로 눈길이 갔다. 그전에는 윤지충과 권상연의 비석 주위만 맴돌았었다.


구 진산성지


보통은 어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의 성모상을 주로 보았던터라 아기를 업은 성모상은 낯설면서도 친근하게 보였다. 여인의 등에 업힌 아이가 손을 엄마의 등에 대고 평화로이 잠들어 있는 모습이 꼭 우리 손자 모습 같았다. 내가 손자를 업어주는 기쁨을 알았기 때문에 이제야 아기 업은 한국 여인의 거룩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 같았다.


<구 진산성지>에 세워져 있는 아기업은 성모상


진산성지는 오래되어 성전에 물이 새더니 작년에 새 성전을 지었다. 새 성전의 특징은 성전 중앙의 예수고상이 십자가에 매달린 고통스러운 모습이 아니고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하늘로 오르는 환희의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는 것이었다.


<신 진산성지>의 예수 고상: 천사들의 환영을 받으며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이다.


새 진산성지의 예수 고상은 남양성모성지의 줄리아노 반지가 만든 예수고상을 떠올리게 하였다. 반지의 예수는 하늘을 향해 땅을 박차고 오르는 모습이어서 처음 이 고상을 보고 충격을 받은 바 있었다.

이제 앞으로 예수고상은 줄리아노 반지의 영향을 받아 하늘로 날아오르는 예수의 모습으로 그려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에 더해 성전 오른편에 세워져 있는 성모상이 내 눈길을 끌었다. 아기업은 하얀 성모상이 새 성전에도 세워져 있었다. 이 성모상을 새 성전에 세우기로 한 신부님과 신자들의 결정이 내 마음에 안도감과 함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감동을 주었다.


<신 진산성지>의 아기를 업은 마리아상


아이업은 성모상을 바라보니 박수근의 그림이 생각났다.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즐겨 그린 화가는 아이업은 여인들의 모습을 자주 그렸다. 박 화백의 눈에는 아이업은 여인의 모습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모습으로 비쳤는지 모르겠다.


나는 몇 해 전 서울에서 관람했던 박수근특별전에서 박수근의 <나목>을 보면서 울컥했던 마음이 되살아났다. <나무와 두 여인>, <절구질하는 여인>, <아기업은 소녀> 등 여인들의 등에는 아이가 매달려 있었다.

아이를 업은 여인의 모습은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나게 하여 울컥 마음이 슬펐던 모양이었다.


박수근 화백의 <절구질하는 여인>과 <나무와 두 여인>


한국인은 정이 많다고 한다. 어쩌면 한국식 끈끈한 정의 시작은 엄마와 아기를 포대기로 묶으면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우리사회를 괴롭히는 온갖 말세적인 패악증세에는 어쩌면 엄마들이 아기를 업어키우지 않아서 인지도 모르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해도 좀 지나친 비약이기는 하지만 포대기로 아이를 업어키우는 고유의 관습으로 돌아가면 어떨까싶어 해보는 생각이다.

그나저나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세대라 이 모든 논의가 쓸모없는 라떼가 될 지 모르겠다.


우리 집 며느리의 아이 업기 실력은 요즈음 나날이 향상되어 레밸을 제네시스급으로 올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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