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내리의 모감주 기행

아름다운 우리나라

by 보현


거제도에 살고 있는 큰언니로부터 거제도로 빨리 내려오라는 전화가 빗발치듯 왔다. 둘째 언니도 거제도에 와 있으니 우리 부부도 빨리 와서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예정에 없던 거제도로 가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남편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살살 몸을 뺐을 터인데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선뜻 같이 가겠다고 나섰다. 고맙기도 하고 내가 없는 사이에 많이 외로웠구나 싶어 측은하기도 하였다.


큰언니는 올봄에 친구들과 놀러 갔다가 발꿈치뼈가 박살나는 중상을 입었다. 박살 난 뼈를 맞추어 넣는 어려운 수술을 하고 꼼짝을 못하고 있길래 남편과 병문안을 다녀온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같이 모여 놀자고 채근해대니 언니의 복원력이 감탄스럽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시간이 꽤 흘렀다.


부산에 살고 있는 둘째 언니도 큰언니 위로차 거제도에 와 있다고 하였는데 내가 미국에서 돌아온 것을 알고는 오랜만에 세 자매가 다시 뭉치자고 안달을 내었다. 우리 세 자매는 죽이 맞아, 모이기만 하면 어딘가로 가지고 모의하기를 즐겼다. 엄마 살아계실 때는 엄마를 모시고 전국 곳곳을 누볐고 남편이 퇴직한 후로는 남편도 끼워 함께 다녔다.

이렇게 하여 세 자매와 남편, 네 사람의 거제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거제도에 도착하여 간단한 점심을 먹자마자 내가 한내리의 모감주 군락을 보고 싶다고 하였다. 서울에서 대전을 거쳐 통영까지 내려오는 고속도로 변에 드문드문 노란 모감주 꽃들이 보였다. 고속도로 변의 모감주 꽃을 보면서 거제도 한내리의 모감주 꽃이 이즈음 한창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나의 제안에 언니들도 좋다고 기뻐하였고 남편은 영문도 모른 채 우리에게 끌려 한내리로 가게 되었다. 한내리는 건너편에 삼성중공업의 큰 크레인이 보이는 거제도 연초면에 면한 바닷가에 있다.


삼성중공업 조선소가 보이는 거제 한내리


한내리의 모감주나무는 꽃이 한창이었다. 한내리에 들어서자 노란 모감주 꽃 군락이 멀리서도 눈에 뜨였다. 모감주나무 꽃은 신라의 왕관을 닮았다고 한다. 역시 하늘을 향해 곧추세워져 노란 꽃을 터뜨리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금관 모양이다. 금관이 수백개, 수천개 달려있으니 왜 장관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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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금관모양의 모감주나무 꽃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한 나무도 있었지만 이미 핀 꽃은 하나씩 팽그르르 돌며 땅바닥에 떨어져 내리기도 하였다. 그 모습이 마치 황금비가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서양에서는 이 나무를 Golden Rain Tree라고 부른다. 그 전날 내린 비로 땅바닥에 떨어진 꽃잎이 그야말로 황금띠를 만들어 두었다.


땅에 떨어진 모감주 꽃


우리는 모감주 군락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걸으며 하나씩 떨어지는 모감주 꽃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시인의 감성을 지닌 작은 언니가 “와우 멋져~ 멋져~”소리를 연발로 터뜨렸다. 무던한 남편도 “야~ 이곳에 모감주나무가 진짜 많네” 하며 우리 감탄에 동조하였다.


모감주 꽃은 개나리처럼 생긴 네 개의 꽃잎이 꽃술들을 앞으로 쑥 내밀고 몸을 뒤로 발랑 젖힌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성숙한 모감주 꽃의 중심은 마치 붉은 연지를 바른 듯 붉게 물들어 있다. 모감주 꽃잎이 붉게 연지를 바르고 곤충을 유혹해서인지 벌뿐만 아니라 등에, 파리, 나방 등 온갖 곤충들이 몰려와 부지런히 붉은 꽃잎에 입술을 들이밀고 있었다. 곤충을 부르는 모감주 꽃의 병기는 저 붉은 연지일까 아니면 몸 속에 지닌 꿀단지일까 궁금하였다.


모감주 꽃 잎


이미 꽃이 지고 꽈리모양의 열매가 풍선처럼 매달려 있는 나무도 보였다. 저 꽈리모양의 중심에 모감주나무의 종자가 들어있다. 이 종자는 가을이 되면 진갈색으로 단단하게 여물게 되는데, 종자가 얼마나 단단한지 모감주나무로 만든 염주는 최상급으로 친다고 한다.


모감주나무의 꽈리모양의 열매


목발에 의지한 큰언니도 우리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나서며 모감주에 관한 설명에 열을 올렸다. 우리 큰언니는 ‘잡학박사’라는 호칭이 무색하지 않게 아는 것이 많다. 이 열매가 너무 단단하여 어떻게 꿰어 염주를 만들까 궁금하였는데 언니의 설명에 의하면 종자가 덜 익었을 때 실에 꿰어 염주를 만든다고 하였다. 과연 그럴듯했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꽈리 모양의 모감주 열매의 역할이었다. 모감주는 주로 중국에서 해류를 타고 우리나라에 건너온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모감주나무 자생지는 포항시 동해면 발산리 (천연기념물 제371호)와 태안 안면도 군락지(천연기념물 제138호) 및 완도 대문리 군락지(천연기념물 제428호)가 있는데, 대부분 해안지방에 위치하고 있다.

모감주 열매가 어떻게 해류를 타고 우리나라의 해안까지 이르렀을까가 궁금하였다. 각자 휴대폰을 꺼내 모감주 열매의 이동에 관한 폭풍검색에 들어갔다. 어느 설명에 의하면 이 꽈리모양의 껍질이 돛단배가 되어 우리나라의 해안까지 종자를 실어 나른다고 하였다. 모감주나무의 열매가 중국 어느 해안지방에서 떨어져 우리나라를 향해 긴긴 항해를 한 후 이땅에 뿌리를 내려 군락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니 모감주나무의 여행이 기가 막혔다.


거제도 한내리의 모감주는 신라말엽, 이곳을 지나가던 금강산의 큰 스님이 이곳의 번성을 기원하면서 바닷가에 심은 나무라고 전한다. 설명문에 의하면 이곳에 있는 모감주나무는 41그루쯤 된다고 한다. 해풍과 태풍의 재해를 막기 위해 나무를 심은 스님이야말로 큰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늘 나무를 심은 사람이야말로 미래를 내다보는 위대한 안목을 지닌 사람이라고 존경해 왔다.


한여름의 초입에 드는 이때 황금색 꽃무더기를 하늘로 힘껏 펼치며 피는 모감주나무가 한내리에 군락을 이루고 있어 너무 좋았다. 이날 거제도 하늘에 구름이 너무 예쁜 문양을 만들어 내었다. 나는 새삼 우리나라의 곳곳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였다. 미국의 광활한 지형을 보다 와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아기자기한 풍광이 참 정다웠다.

이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더욱 잘 가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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