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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성인을 외쳐 부를 때

잃어버린 차 키를 찾아서

by 보현


누구나 한 번은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것도 당장 필요한 물건이라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아찔함을 느낄 것이다.

내가 차 키를 잃어버리고 완전 멘붕에 빠졌다.


언니들과 거제도에서 이틀을 보내고 산청의 시골집으로 다 같이 몰려갔다.

거제도의 첫날은 한내리의 모감주 관람으로 보냈고 이틀, 사흗날은 온종일 수국을 보러 다녔다.

이맘때 거제도는 수국 천지이다. 거제도야 말로 수국이 자라기에 안성맞춤의 땅이라는 것을 발견해 낸 지자체의 안목이 놀라웠다. 어디를 가도 수국이 만발해 있었는데, 특히 파란 대문집 앞의 거대한 수국 무리와 싼트리팜 건너편의 넓은 수국밭과 산속까지 수국으로 덮여있는 저구항 주변은 제철을 만난 수국꽃이 만개하여 감탄을 자아내었다.


거제도의 수국


그런데 우리의 수국 여행 중 가장 아름다웠던 곳은 고성의 <그레이스 정원>이었다. 백운산 자락의 17만 평의 땅에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숲을 이루고, 그 아래에 30만 그루의 푸른 산수국들이 미모 경쟁에라도 나선 듯 저마다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있는 곳이었다. 나는 산수국의 매력에 완전 매료되었다. Deep marline blue색의 산수국들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마치 꿈길을 거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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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그레이스 정원>의 수국들


한 여성이 거의 20년 간의 정성을 들여 이 정원을 가꾸어 왔다니 그분의 집념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나에게도 이십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도 나무를 심고 싶다고 생각했다.


차 키가 없다는 것을 인지한 것은 시골집에서 전주로 출발하려고 하던 날 아침 시각이었다.

시골집에 도착한 우리는 이틀을 시골집에서 보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나의 꽃밭에 엎디어 풀을 뽑고 거제도에서 사 가지고 온 몇 그루의 수국을 심으며 꽃밭 재건에 들어갔고 나의 등살에 떠밀려 남편은 잔디를 깎았다. 음식솜씨가 좋은 작은 언니는 요리를 하였고 다리가 아픈 큰언니는 데크에 의자를 놓고 앉아 총감독을 하였다.


산청에서의 첫날밤, 식탁에 둘러앉아 와인을 마시던 우리는 갑자기 성지순례에 가자고 모의하였다. 작은 언니가 성지순례를 가고 싶다고 하자 나도 큰언니도 좋다고 동의하고 나섰던 것이었다. 무엇이든지 계획을 세워 빈틈없이 일처리 하기를 좋아하는 남편 눈에는 우리의 뜬금없는 결정이 기가 막히는 모양이었다. 남편은 우리 세 자매가 하는 짓을 ‘질정이 없다’고 비난하였지만 싫지는 않은 듯했다. 문제는 남편의 식사를 충분히 챙겨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우리를 시골에 남겨주고 홀로 서울행 버스를 탔다. 그리고 며칠간의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챙겨 한밤중에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오전에 잔디 깎느라고 허덕이던 남편이 오후에는 한양천리길을 다녀왔으니 병약한 남편에게 참으로 미안한 노릇이었다. 그러나 세 자매의 변덕스러운 여행길에 발걸음을 맞추어 주려는 남편이 너무 고마웠다.

그리하여 내일 아침 일찍 출발을 다짐하며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서둘러 출발하려는데 차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화면에 ‘차 키가 근처에 없다’는 사인이 나타났다.

제일 먼저 차 키를 놓아두는 거실 상자로 달려가 보았다. 남편이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두어야 찾느라고 부산을 떨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만들어 둔 차 키 보관 상자였다. 거기에 차 키가 없었다. 핸드백 안을 샅샅이 살폈으나 키는 보이지 않았다. 남편의 식사 가방 안을 살펴보아도 키는 없었다. 그럴 경우 대개 그 전날 입었던 옷 포켓 속에 열쇠를 둔 경우가 많아서 어제 무엇을 입었던 가를 생각하며 빨래통에 넣어두었던 옷을 꺼내 포켓을 다 더듬었으나 열쇠는 없었다.


지금까지는 여기까지 하면 대개 키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 데서도 키를 찾을 수 없었다.

초조감이 몰려왔다. 온 식구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저마다 차 키 찾기에 나섰다. 핸드백을 거꾸로 쏟아보았고 냉장고를 열어보았으며 혹시 마당에 떨어뜨렸나 하고 잔디 위와 꽃밭을 샅샅이 스캔하였다.

잔디를 깨끗이 깎아두기를 잘한 것 같았다. 안 그랬으면 잔디사이에 숨었나 하고 잔디밭을 다 쓰다듬을 판이었다. 한 시간이 다 되도록 온갖 곳을 뒤지다가 남편은 땅속에 묻은 음식쓰레기까지 다시 파 보았다. 행여 내가 음식 쓰레기 묻을 때 거기에 딸려 들어갔나 의심하고서였다. 나는 아무리 그렇기로 내가 치매도 아닌데 그럴 리가 있냐면서 화를 내었다.


점차 열쇠를 찾지 못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제는 다음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 같았다. 언니들은 예약해 두었던 호텔부터 취소하자고 하였고 남편은 한 번 더 서울을 다녀와 예비 키를 가지고 오려고 하였다. 기가 막히는 상황이었다.


모두들 집바깥에서 잔디 위와 내가 다녀간 꽃밭 쪽을 살피느라 부산한 가운데 나는 집안을 다시 한번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그때 벽에 매달려 있는 예수 고상이 눈에 들어왔다. 성당 친구들이 새집에 걸어두라고 사준 예수상이었다. 예수님 발치에는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은 바뇌의 성모상이 ‘외로이’ 세워져 있었다. 성모님이 ‘외로워’ 보인 이유는 내가 성모님께 기도를 잘하지 않았기 때문에 느끼는 죄책감 때문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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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바뇌의 성모상


나는 예수 고상과 마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잃어버린 물건을 찾게 해 준다는 성인의 이름을 불렀다.

“안드레아님, 안드레아님, 잃어버린 키를 찾게 해 주세요. 차 키를 찾아 우리가 성지순례를 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하고 나는 안드레아의 이름을 간절히 외쳐불렀다. 기도를 하고 나니 마음의 불안이 좀 가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을 때 데크 모서리 위에 놓여 있는 차 키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온 데를 뒤지면서도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데크 위였다.

그러고 보니 차 키가 왜 거기에 놓여 있었는지 연유를 알 것도 같았다. 아침에 남편이 쓰고 내게 건네준 키를 내가 데크 위 모서리에 얹어두고 다른 일에 열중하다 깜빡 잊었던 모양이었다.


“차 키 찾았어요. 차 키 여기 있어요”


내가 차 키를 흔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가방의 짐을 다 꺼내 마당에 펼쳐두고 행여나 하고 짐을 뒤지고 있던 식구들이 내 손에 달린 차 키를 바라보았다.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비로소 얼굴에 웃음이 돌아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전주로 성지순례를 떠날 수 있었다.


그런데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준다는 수호성인은 안드레아가 아니고 안토니오 성인이었다. 파도바의 안토니오신부는 탁월한 설교와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유명하였으며, 당대에 그를 능가할 만한 설교가가 나오기 힘들 정도라고 높이 평가받은 분이었다.

그런 안토니오 신부에게 너무나 소중한 물건 하나가 있었다. 그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사용하려고 쓴 원고들과 주석이 포함된 시편집 한 권이었다. 어느 날 한 수련자가 안토니오의 시편집을 슬쩍 가지고 가버리는 사건이 생겼다. 자신의 시편집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된 신부는 하루속히 시편집이 자신에게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나중에 그 수련자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시편집을 안토니오에게 반환하였다고 한다. 이후 안토니오는 잃어버린 물건이나 사람을 찾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내가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수호성인인 안토니오의 이름을 안드레아로 틀리게 불렀건만 주님은 나를 틀렸다고 나무라지 않고 내 눈을 열어주어 테크 위에 놓여 있던 열쇠를 찾게 해 주셨다. 그렇게 생각하니 하느님의 방식이 기가 막혔다.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님은 우리의 필요한 것을 아시고 채워주시는 분이 틀림없으시다.

그러나 다음번에는 꼭 수호성인의 이름을 바르게 부르리라고 결심하였다.


“안토니오 성인님! 잃어버린 사람도 찾아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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