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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Sep 27. 2024

4. 버드나무가 만드는 풍경

<양재천 산책>

     

어느 날 영동 6교 위를 지나가다가 습관적으로 양재천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양재천변에 버드나무가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버드나무들은 몽실몽실한 클러스터를 이루며 천변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버드나무의 속명 Salix는 라틴어로 'sal' ('가깝다'는 뜻)과 'lis'('물'이라는 뜻)의 합성어로 '물 가까이에서 자라는 나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물이 있는 양재천변에 버드나무가 많은 건 당연한 일일 듯한데도 그 모습이 새삼스럽게 보였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버드나무는 30여 종이 있다고 하지만, 내가 양재천에서 인식할 수 있는 버드나무 종류는 버드나무와 왕버들, 수양버들, 갯버들 정도이다. 버드나무와 수양버들, 갯버들은 본래부터 양재천변에 자생하고 있었던 듯하고, 방제천변의 왕버드나무와 산책길 가에 조성된 수양 버드나무들은 일부러 심은 나무들로 보인다. 

     

왕버드나무는 버드나무 중에서도 가장 크게 자라는 나무(20미터까지 자란다)이며 나무 전체가 멋진 캐노피를 형성하므로 왕버드나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을 얻은 것 같다. 이른 봄에 새잎이 날 때 턱잎이 왕관 모양이어서 더욱 이름에 어울린다. 왕버드나무는 우리나라의 남부지방에서 마을의 노거수(老巨樹)로 많이 심었다. 시골 마을을 지나가다 보면 정자 곁에 용틀임이라도 하듯 거대하게 자란 이 나무를 발견할 수 있다. 청송 주산지의 물 가운데 서 있는 나무도 왕버드나무이다. 

그런 멋진 왕버드나무가 영동 3교 아래, 양재천변의 논이 있는 물가에 쭉 심겨 있어 이채롭다. 이곳에 버드나무를 심은 이유는 양재천의 제방 유실을 방지하고자 함인 듯하다. 이 방제천 곁에는 논이 조성되어 있어 강남의 어린이들이 올챙이를 발견하기도 하고 가을에 누렇게 익은 벼를 관찰할 수도 있다. 


양재천변의 왕버드나무


수양버드나무는 긴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처럼 야리야리하게 보인다. 봄이 오면 줄기부터 푸른 물이 올라 낭창하게 드리운 모습이 자태가 고운 여인을 연상시키는지 시의 주요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가 읊은 <위성가(渭城歌)>는 이별의 노래로 유명하다.      


     渭城朝雨浥輕塵(위성조우읍경진) 위성의 아침 비 가벼운 먼지 적시는데

     客舍青青柳色新(객사청청류색신) 객사에는 파릇하게 버들 색이 새롭다。

     勸君更盡一杯酒(권군갱진일배주) 그대에게 권하노니 술 한잔 더하게나,

     西出陽關無故人(서출양관무고인) 서쪽 양관으로 가면 친구 다시없다네。    

 

위성은 오지인 서역西域으로 가는 관문이다. 시인은 친구를 오지로 보내며 이별의 술 한잔을 더 건넨다. 그때 객사에 푸르러져 가는 버드나무가 늘어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양재천에도 봄이면 연둣빛을 품어 올리는 버드나무들이 여전히 있다.     


                                                            연둣빛 수양버드나무      


그런데 내가 주목하는 버드나무는 둔치에 심어진 수양 버드나무이다. 유난히 황금빛을 띠는 수양버드나무가 영동 5교에서부터 영동 3교까지 둔치에 쭉 심어져 있다. 이 나무의 색은 확연히 황금색이다. 나는 이들을 기존의 수양 버드나무와 구분하여 ‘황금 수양 버드나무’라고 이름 지어주었다.   

  

양재천에서 가장 먼저 봄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이 황금 수양 버드나무이다. 

2월에 들면 벌써 이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면서 줄기가 노란 황금빛을 띠기 시작한다. 이 나무에 꽃이 피면 더욱 황금색을 띤다. 버드나무의 꽃은 강아지풀처럼 생겨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지만 꿀을 듬뿍 함유하고 있는 듯 새들이 꽃 잔치를 즐긴다. 버드나무가 꽃을 피우면 며칠간 박새를 볼 수도 있다. 눈더미가 하얗고 그 가운데 까만 눈알이 도드라지는 이 새는 몸이 하도 작고 가벼워 수양 버드나무에 매달려 있는 데도 전혀 가지가 흔들리지 않는다.


양재천의 황금 수양 버드나무

    

나는 황금 수양 버드나무 아래를 걸을 때마다 이곳에 황금색 수양 버드나무를 심어놓은 것은 사람들이 황금색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황금색은 부귀를 상징하는 색이다. 황금색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 마음을 즐겁게 하는 모양이다. 간혹 녹색을 잃고 황금색을 띤 식물이 출현할 때 사람들이 큰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황금 소나무라든가 황금 측백나무 같은 것이 정원수로 인기 있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식물의 본래 색은 클로로필이므로 녹색을 띄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황금색 식물을 귀히 여기므로 종묘회사들이 황금색을 띤 식물개발에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고 들었다. 

어쩌면 부를 쫓는 강남 사람들의 취향을 고려해 일부러 황금색 나무를 심은 것은 아닐까 혼자 억지스러운 생각을 해본다.      


어쩠거나 버드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연둣빛과 황금빛의 대비는 양재천의 봄 풍경을 화려하게 만드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한다. 


버드나무들이 연출하는 양재천의 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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