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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Sep 27. 2024

6. 벚꽃구경

<양재천산책>

     

양재천에는 벚나무가 많다. 

메타세쿼이아에 이어 가장 대표적인 나무가 벚나무라고 여겨진다. 양재천의 벚나무는 세월 탓인지 제법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랐고 길 양쪽으로 무성하여 벚꽃이 피면 벚꽃 터널을 이룬다. 양재천의 벚꽃이 제법 명성을 탄 듯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면 이곳이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따뜻한 날씨 속에서 산책객들의 얼굴도 벚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난다. 나는 벚꽃의 화려한 모습도 좋지만 이곳에 북적이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좋다. 뭔가 생명이 용천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특히 남편이 병원에 오래 입원한 뒤로는 해마다 맞이라는 벚꽃놀이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휠체어를 타고 벚꽃맞이에 나선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잘 뜨인다. 생명의 잔치에 동참하고 싶은 그들의 마음이 내게도 와닿기 때문일 것이다. 


벚나무는 줄기가 두쪽으로 분지 되면서 차상분지(枝)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 분지(枝)란 말 그대로 가지가 나뉘는 것을 뜻한다. 차상분지란 가지가 분지 될 때 원래 줄기 끝에서 똑같은 두 개의 가지가 생기고, 이 가지 끝에서 같은 두 개의 가지가 생기는 식으로 반복되는 가지치기를 말한다. 차상분지를 하는 식물은 하등식물에서 주로 보인다고 하지만 벚나무를 하등식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벚나무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만천하에 드러내려고 진화한 나무처럼 보인다.


겨울에는 검게 차상분지한 특성을 드러내며 늘어서 있던 이 나무가 봄이 되면 완전히 변신한다. 마치 잠에서 화들짝 깨어난 것처럼 벚꽃은 갑자기 확 피어난다. 벚나무는 이른 봄에 어떤 나무도 꽃을 피우기 전에 구름처럼 화사한 분홍의 꽃을 피운다.


차상분지의 전형을 보여주는 벚나무


벚꽃은 화사하게 피었다가 일주일을 못 넘기고 지고 만다. 꽃은 잎이 나기도 전에 서둘러 피고, 떨어질 때도 꽃잎이 하나씩 꽃비처럼 날리며 순식간에 떨어져 버린다. 

벚나무는 독점욕이 강한 여인과도 같다. 

“다른 이에게 눈길을 주면 안 돼!”

라고 외치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마구 뽐내는 여인이 벚꽃이다. 


벚꽃이 이른 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것은 이른 봄에 활동하는 곤충과 새를 독차지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들을 유혹하기 위하여 벚꽃은 화려한 꽃을 일시에 피우고, 아름답고 은은한 향기를 만들어 내며 꿀샘에서는 달콤한 꿀을 만들어 낸다. 

벚꽃이 피면 기다렸다는 듯이 꿀벌과 작은 새들이 몰려와 꽃가루를 묻혀가고, 찍박구리가 달려와 꽃잎을 뜯어먹는다. 

벚꽃의 유혹이 너무나 강렬하여 이 시기의 벚꽃에 경쟁자로 나서려고 하는 어떤 꽃도 없다. 벚꽃보다 더 이른 봄에 산수유와 개나리가 노란 꽃을 피우지만, 이들의 존재는 벚꽃의 아름다움을 받쳐주는 조력자에 불과하다. 그만큼 벚꽃의 매력은 강렬하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여인은 구질구질하게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절대 남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아 아직도 화려한 자신의 꽃잎을 가차 없이 떨어뜨려 버린다. 

벚꽃은 청춘의 덧없음 같은 꽃이며 이렇듯 짧고 화려하기에 더욱더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남는 아쉬운 꽃이다. 


이렇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느라 벚나무는 에너지를 너무 쏟아버려 다른 나무들에 비교해 수명이 짧다(길어야 70~80년 정도이다). 꽃인지도 모를 작은 꽃을 피우며 에너지를 아껴 천년을 사는 느티나무나 은행나무에 비교하면 아름다움을 위해 목숨마저 돌보지 않는 어리석은 여인 같은 꽃이 바로 벚꽃이다. 벚꽃의 짧은 번영은 미인박명을 연상시킨다.

차상분지한 벚나무 가지에는 유독 눈물 같은 진물이 흐른다. 나는 벚나무의 눈물이 예사롭지 않게 보안다. 미인박명의 자기 처지를 나무는 아는 것만 같다. 


나는 이 아름다운 여인에 매료되어 봄이면 봄마다 벚꽃놀이에 몸살을 앓았다.

잊을 수 없는 벚꽃놀이가 동경의 신주쿠교엔(新宿御苑)이었다. 동경에 살때 봄마다 그곳의 만개한 벚꽃 나무 아래에서 벚꽃놀이를 즐겼다. 우리나라의 벚나무는 대개 길가에 심어져 있어 나무 밑에 앉아 벚꽃을 즐기기는 어렵다. 그런데 신주쿠교엔 공원에서는 나무 아래에 자리를 깔고 누워 벚꽃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만개한 벚꽃을 바라볼 때면 내 몸도 두둥실 하늘로 떠올라 벚꽃과 손잡고 춤이라도 추는 것 같았다. 

더 잊을 수 없는 광경은 벚꽃이 떨어져 날릴 때였다. 흰 눈송이처럼, 또는 흰 나비처럼 벚꽃 꽃잎이 하나씩 날려 떨어지면 뭐라 할 수 없는 아스라한 아픔이 몰려 왔었다. 

나는 여전히 자신을 불태워 교태를 부리는 이 미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양재천의 벚꽃: 성인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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