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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Sep 27. 2024

7. 왕벚나무의 고향은 어디인가?

<양재천 산책>

양재천에서 화려한 꽃을 피우는 주종 벚나무는 왕벚나무이다.

이 왕벚나무는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메이요시노(染田吉野)’라는 종류로 보인다. 소메이요시노는 에도시대 중간인 1750년경에 만들어졌다고 히는데, 이것은 잎이 나기 전에 꽃이 피는 데다 꽃이 대여섯 송이가 무더기로 피고 꽃송이도 크고 아름다워 일본인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다고 한다. 도쿠가와家에서는 서민들의 하나미 풍습을 장려하기 위해 벚꽃 나무를 심었는데, 특히 메이지 시대 이후 이 왕벚나무를 일본 전역에 심었다고 한다. 한일병합 이후에는 우리나라의 전국 명소에도 이 나무를 심었는데, 창경궁은 말할 것도 없고 봄마다 벚꽃 명소를 자랑하는 진해나 하동의 십리벚꽃길 등 전국의 유명한 벚꽃 명소도 일본인들이 조성한 곳들이다. 그래서 벚꽃 구경에 나설 때면 괜히 마음의 부담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이 왕벚꽃나무의 원산지가 우리나라의 제주도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벚꽃놀이에 대한 부담감이 자부심으로 바뀌게 된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이랬다. 1908년 서귀포에 살던 프랑스인 신부 타케가 한라산 자락에서 아름다운 벚나무군을 발견하고 이를 채집하여 당시 권위자인 독일 베를린 대학 쾨네 교수에게로 보냈다. 쾨네는 이 벚나무가 왕벚나무의 새로운 변종이라고 보고하였다. 그때까지 일본에서는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발견되지 않았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2년 일본의 한 생물학자가 일본 왕벚나무의 기본종이 제주도 왕벚나무라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환호하게 되었지만, 오래전부터 벚꽃을 사랑해왔던 일본인들에게는 몹시 기분이 상하는 주장이었다.

일본 학자들은 일본의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발견되지 않는 것은 이 벚나무가 잡종에서 생겼기 때문이라는 잡종기원설을 꾸준히 주장하였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이 묘한 신경전은 2016년 12월, 일본의 삼림종합연구소에 의해 일본의 소메이요시노는 오오시마벚나무와 에도히간계의 종간 잡종임이 최종 밝혀지면서 끝이 났다. 오오시마벚나무가 이즈제도에 자생하는 일본 고유종이며 제주도에는 분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본 왕벚나무가 한국의 제주벚나무와 별개의 종이라는 것이 최종적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왕벚나무 제주도 기원설을 버릴 수 없었다. 2018년, 우리나라의 산림청 국립수목원이 국내 연구진을 동원하여 제주도에 자생하는 왕벚나무 유전체(게놈)를 완전히 해독했고 그 결과 제주도 왕벚나무는 제주에 자생하는 올벚나무를 모계로 하고, 산벚나무를 부계로 해서 탄생한 자연 잡종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통해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는 기원과 종이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제주도 왕벚나무의 존재를 밝힌 타케 신부는 우리나라의 식물, 특히 제주도의 식물을 왕성하게 채집하고 이를 해외에 알렸다. 그는 왜 식물채집에 열성을 내었던 것일까?

에밀 조제프 타케(Émile Joseph Taquet)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로서 1898년 조선에 도착하였다. 그는 조선에서 총 55년을 보냈는데, 1902년부터 1915년까지 13년간은 제주도에서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가 식물채집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일본 아오모리(靑森)에서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던 또 다른 프랑스 출신 포리(Faurie, R.P.U) 신부를 만나면서 였다. 포리 신부는 초창기 일본 식물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일본 파견 선교사였다. 포리 신부는 생애 대부분을 일본에서 활동하였는데, 조선을 세 번 방문하여 조선의 식물을 채집하기도 하였다. 1907년 그가 제주도를 방문해 타케 신부와 함께 식물채집을 하였는데, 이때 포리 신부가 식물채집법을 타케 신부에게 전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타케 신부는 독자적으로 식물채집에 나섰는데, 1907년에 약 500개, 1908년에는 2,000개, 1909년에 1,000개, 1910년에 1,300개, 1911년에 1,200개, 1912년에는 약 200개 정도의 식물을 채집한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1908년 4월 14일, 한라산 북측 관음사 뒤쪽, 해발 600미터 고지에서 제주왕벚나무의 존재를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타케 신부의 식물표본 7,047개는 영국 에든버러왕립식물원,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 그리고 교토대학과 동경대학 등에 보내졌다. 선교사들이 이렇게 열렬하게 식물채집을 한 이유로 당시 식물을 채집해 유럽으로 보내면 돈을 벌 수 있었으므로 선교활동에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식물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없고서야 이렇게 열심히 채집활동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로서는 대단히 실망스러운 연구 결과였지만 과학이 110년간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하였다. 이제 게놈분석이라는 과학적 방법에 의해 두 나무가 기원이 별개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아직도 애국적인 시민들과 일부 학자들은 소메이요시노의 제주도 기원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한편, 사단법인 왕벚프로젝트2050이란 단체에서는 2022년 벚꽃 개화 시기에 맞춰 국회 및 여의로에 식재되어 있는 벚나무를 전수조사한 결과 이곳에 심어진 벚나무의 90% 이상이 일본산 소메이요시노 벚나무임을 밝혔다. 이 단체는 점진적으로 다른 곳의 벚나무의 기원도 밝혀나갈 것이라고 한다.


일본인들은 벚꽃을 정말 사랑한다. 새로운 변종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도 열심히 연구하고 있고 일본 왕벚나무를 세계에 보급하기 위해서도 열심이다. 새로운 변종은 접목이 아니라 열매를 통해서 가능하다. 그 결과 수양벚나무도 나오고 겹꽃벚나무도 나왔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제주도가 일본 왕벚나무의 기원이라는 주장만 하며 이를 증식시켜 보급하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누가 주인인가?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애착하는 자가 주인이지 않은가! 이제는 원산지 논쟁을 넘어 우리도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왕벚나무의 확산을 위해서 노력해야겠다.


양재천에 심어진 벚나무가 모두 왕벚나무는 아니다. 오래된 벚나무의 경우 흰 꽃이나 진한 분홍 꽃을 피우는 산벚도 꽤 많이 눈에 띈다. 산벚의 경우는 왕벚꽃보다 약간 늦게 피고 조금 더 오래 견딘다. 양재천에 요즈음도 어린 수양벚나무를 심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수양벚나무뿐만 아니라 겹꽃벚나무, 산벚도 심어 다양한 벚꽃을 보는 기쁨을 좀 더 오래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왕벚나무의 야간 벚꽃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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