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 산책>
4월 어느 날, 양재천을 걷다가 바닥에 녹색의 작은 구슬 같은 것들이 엄청나게 떨어져 있는 풍경을 만나게 되었다.
“아! 느티나무가 꽃을 피웠구나”
위를 올려다보니 과연 느티나무에 보일 듯 말 듯 작은 꽃들이 무수히 달려있다.
느티나무는 거대한 몸에 비교해 너무나 작은 꽃을 피운다. 꽃인지도 모를 녹색의 작은 꽃이다. 꽃이 워낙 작아 새잎 사이의 잎겨드랑이를 자세히 살펴야 꽃을 볼 수 있다. 느티나무의 번식은 이 작은 꽃이 열매를 맺으면서 이루어진다.
예수가 활동하던 유다 지역에 느티나무가 있었다면(다른 나라에서는 우리나라의 느티나무를 부러워한다고 한다) 예수는 겨자 씨앗의 비유를 느티나무 씨앗의 비유로 들지 않았을까. 이 작은 씨에서 거목이 탄생하고 이 거목은 천년을 산다. 굳이 찾아 나서지 않아도 어느 시골이든 지나다 보면 노거수 느티나무가 마을 앞을 지키고 있는 경우를 다반사로 볼 수 있다.
느티나무는 지혜로운 나무이다. 이 나무는 햇볕을 탐해 가지를 뻗되 다른 나무들과 공간을 나누어 가져 햇빛과의 경쟁에서 무자비한 난폭자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햇볕이 충분한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으면 가지를 휘어 수형을 둥글게 만든다. 느티나무 가지는 매우 유연하다. 원하는 길이로 늘어나고 원하는 곳으로 몸을 휘어 동그란 모양으로 몸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느티나무가 햇볕을 충분히 받는 곳에 있으면 엄청나게 크고 아름다운 둥근 모양의 나무로 성장한다.
햇볕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절대 지지 않으면서도 뻗을 자리를 보아 가지를 늘이는 이 나무는 참으로 지혜로운 나무이다. 게다가 아름다운 꽃을 만든다거나 향기나 꿀을 만드는 일체의 노력을 절제하고 수수한 작은 꽃을 피워 천년을 산다. 느티나무는 절제의 여왕이요 지혜의 여왕 나무라는 헌사를 드려도 결코 모자라지 않을 것 같다.
아파트를 나와 양재천으로 진입하는 입구에 큰 느티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마음껏 햇볕을 밭아 수형이 둥글고 아름답다. 새봄에 이 나무가 녹색의 신선한 새 잎을 틔우면 나는 눈이 부시게 이 나무를 쳐다본다. 세상에 나무의 신록처럼 화려한 색이 있을까! 느티나무는 다른 나무들보다 새 잎을 늦튀운다고 하여 느티나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참느릅나무에 비하면 그렇게 늦게 새잎을 틔우는 것 같지는 않지만 산수유나 벚꽃보다는 확실히 늦게 봄맞이에 나서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나는 목련처럼 일찍 꽃을 피웠다가 꽃샘추위로 화를 입는 목련꽃보다는 신중하게 날씨를 살펴 완전한 봄임을 확인한 다음에야 잎을 내는 이 나무의 신중함에 훨씬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느티나무는 지혜로운 나무임에 틀림이 없다.
느티나무의 가치를 아는 사람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우리나라 산림청에서 느티나무를 밀레니엄 나무로 선정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2000년). 이때 밀레니엄 후보 나무로 선정된 나무들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구상나무, 주목, 노각나무, 이팝나무, 물푸레나무였다고 한다. 이들 쟁쟁한 후보군을 밀치고 느티나무가 밀레니엄나무로 선정된 것이다.
선정이유를 보면 느티나무가 우리나라 자생수종이고 강한 생명력을 가진 장수하는 나무이며 수형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큰 나무로 성장하는 수종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특히 목재의 결이 곱고 단단해서 가구재나 불상 조각에 최적이라는 용도도 한몫을 한 모양이었다. 이는 느티나무가 천천히 성장하고 오래 살기 때문에 얻어진 미덕이다.
느티나무로 만든 도마, 원탁 등은 현재도 인기가 높지만, 느티나무의 목재로써의 매력은 고가구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나는 가구박물관에서 문양을 살린 느티나무 고가구를 보고 숨이 멎는 것 같은 고혹을 느꼈다. 순박, 질박하면서도 우아한 그 모습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우리나라에 방문교수로 온 한 미국인을 알고 있다. 한국의 쌀문화를 알고 싶어 우리나라를 왔다는 그 문화인류학자는 어느 날 나에게 한국 고가구를 살 수 있는 곳을 물었다. 그이는 한국 고가구, 특히 반닫이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그와 함께 고가구를 살 수 있는 곳을 몇 군데 탐방하다가 나 또한 더욱더 고가구의 매력에 빠졌다.
진짜 옛날에 만든 반닫이를 사고 싶어 했던 그 미국인 교수는 진품에 대한 의심과 비싼 가격 때문에 끝내 옛날 가구를 사지 못하고 귀국하고 말았다.
나는 느티나무 고가구를 사지는 못하였지만 느티나무로 만든 도마 하나를 구입하였다. 무거워서 실용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도마를 사용할 때마다 살아있는 나무의 결을 보면서 느티나무가 살아온 세월의 무게를 가늠해 보는 즐거움을 누린다. 너무나 소박한 느티나무와의 교류이다.
느티나무를 보면 벚나무와 많은 대조를 이룬다. 벚나무처럼 불꽃처럼 자신을 불태우며 짧은 번영을 누릴 것인지 지혜로운 느티나무처럼 에너지를 아끼며 긴 인생여정을 달려갈지 우리 각자가 선택해야 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