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 산책>
가을이 깊어간다.
나무들이 잎을 아름답게 물들이며 떨어뜨릴 준비를 한다. 나는 나무들이 단풍을 만드는 것을 나무들의 작별인사라고 생각한다. 초록의 잎을 그냥 떨어뜨리지 않고, 그동안 신세 진 세상의 모든 것들을 향해 감사를 표시하면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라지는 것이 낙엽이 아닐까?
식물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잎들은 광합성을 하여 나무에 에너지를 제공함으로써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한다. 자기 의무를 다한 나뭇잎은 더 이상 나무에 붙어있으면 나무에 부담만 지우게 되기 때문에 다음 세대를 위해 자기 몸을 기꺼이 버리게 된다. 나무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바로 낙엽이다. 그런데 나무는 낙엽이 되는 인사를 화려하게 하여 이웃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사라진다. 나무들의 작별인사가 하도 화려하여 나무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나무들이 벌이는 단풍축제를 반긴다.
양재천의 나무들도 화려하게 치장하며 작별인사를 고하고 있다.
앞 글에서 꽃이 피어야 나무의 존재가 드러난다고 적었지만, 단풍으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나무들도 꽤 많다.
단풍나무류는 단풍이 가장 화려하다. 얼마나 단풍이 멋지면 단풍나무라는 이름을 얻었겠는가. 단풍나무야 말로 여름 내내 무심히 숨어있다가 가을이 되어서야 붉게 물들며 자기의 존재를 과시한다.
단풍나무는 잎모양이 참 독특하다. 나는 단풍나무류를 볼 때마다 치장이 요란한 잎모양이 기이하게 생각되었다. 저렇게 여러 갈래의 잎모양을 만들려면 힘들지 않을까 하여 괜히 마음이 쓰이기도 했다. 잎도 여러 갈래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입가에 잔잔한 톱니모양을 만드는 것도 신기하다.
그러고 보니 나무마다 잎장식이 다르다. 나무는 자기만의 개성을 만드는데 진심인 듯이 보인다.
단풍도 그렇지만 복자기의 붉은 단풍도 유난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양재천변에 복자기 나무가 많이 심겨 있다. 평소 지나칠 때에는 나무줄기가 독특하다고 여길 정도였지만 가을이 들자 이 나무가 힘껏 붉은 단풍을 피우며 존재를 과시한다.
“여기 나도 있어요. 나 좀 봐줘요”`하면서.
가을에 붉은색으로 화려하게 치장하는 나무에 단풍나무가 으뜸이지만 벚나무 단풍도 단풍 경연에 결코 지지 않는다. 벚나무는 맨 이른 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농염을 떨더니 가을에도 그냥은 떨어지지 않겠다며 다시 한번 깊은 인상을 남긴다. 벚나무의 주황색, 홍색 단풍잎은 끝내 화려한 여인의 향기를 남기며 한 잎, 한 잎 떨어진다.
감은 참 유익한 식물이다. 맛있는 열매를 한껏 맺어주더니 단풍도 참 곱다. 감나무의 탄닌성분이 안토시안의 붉은색과 섞여 형언하기 어려운 부드러운 주황색을 연출한다. 잎이 넓어 그 존재가 더 잘 눈에 뜨이는 감나무 단풍이다.
느티나무들도 작별인사를 고한다. 느티나무에도 탄닌 성분이 많은 것 같다. 느티나무 단풍은 노란색과 갈색이 주조를 이루지만 볕이 좋은 곳에선 붉은 색소도 만들어내는 듯 단풍나무 못지않은 화려함을 뽐낸다.
느티나무 낙엽이 뚝뚝 떨어지는 아름다운 가로수 길 아래를 한없이 걷고 싶은 가을날이다.
이에 비해 안토시안 색소를 만들지 않은 채 녹색만을 분해시키고 노란색으로 남는 나무들도 꽤 있다. 노란색인 카로텐 색소는 본디 나뭇잎 속에 숨어있던 색소이다. 클로로필의 녹색에 가려 드러나지 않고 있다가 가을이 되면 클로로필 색소를 분해시키는 클로로필라아제라는 효소가 작동해 비로소 본연의 노란색을 나타낸다. 대표적인 나무가 은행나무이다. 은행 단풍은 노란색 순수 그 자체이다.
칠엽수도 노랗게 물이 든다. 은행 못지않게 아름다운 노란 단풍이다. 푸른 하늘아래 펼쳐진 황금색 나뭇잎들이 콘트라스트를 이루며 가을날 자연의 연주를 펼치면 이 단풍 아래에 오래 머물며 온화한 나무의 기운을 얻고 싶어 진다.
양버즘나무도 우아한 갈색으로 물이 드는 중이다. 갈색으로 물든 커다란 나뭇잎이 뚝뚝 떨어지면 쓸쓸한 가을 분위기를 만드는데 최고이다.
마침내 나무들이 잎을 떨어 버리고 홀로 적막히 서 있다. 내년에 새 잎을 피우기 위해 이 겨울, 나무들은 적막을 견디며 에너지를 모으고 있겠지. 아듀~
가을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