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하인두암

by 보현


남편의 병명은 하인두암이라고 하였다. 이후 이 하인두라는 낯선 이름은 우리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단어의 하나가 되었다. 오래된 해부학책을 꺼내 하인두의 구조와 역할에 대해 공부하였다.

우선 인두라는 조직부터 익혔다. 인두는 입안과 식도 사이에 있는 짧은 소화기관으로 공기와 음식물이 통과하는 통로를 일컬었다. 인두는 위치 및 기능에 따라 비인두, 구인두와 하인두의 세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말 그대로 비인두(鼻咽頭)는 코 쪽 인두이고, 구인두(口咽頭)가 입 쪽 인두라면 하인두(下咽頭)는 그 아랫부분으로서 비인두와 구인두가 만나는 부분을 통칭하였다. 비인두를 통해 공기가 몸속으로 들어가고, 구인두를 통해 음식이 입으로 들어간다면 하인두에서 공기는 기도(氣道)로, 음식은 식도(食道)로 각각 나뉘어 가게 된다.

또 알아야 할 조직에 후두(喉頭)가 있었다. 후두는 기도 입구에 있는 특수한 구조로서 이 후두 입구에는 후두덮개가 있어, 입으로 들어온 음식물이 기도로 가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기능을 한다. 이 후두덮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음식이 폐로 들어가 폐렴을 일으키게 된다. 폐렴은 치명적이므로 인체는 이 음식물을 쫓아내기 위하여 격렬한 기침을 하게 되는데 우리가 흔히 ‘사레들렸다’라고 하는 현상이다.

또한, 후두의 중요 기능으로 발성을 들 수 있다. 공기가 후두를 통과할 때 후두에 있는 발성기가 진동하여 소리를 내는 것이다.

따라서 인두는 먹고, 말하고, 숨 쉬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중요 기관이다. 또한, 이곳에는 뇌로 가는 중요 혈관, 신경이 많이 모여있다. 게다가 이곳에는 림프조직이 풍부하게 분포되어 있어 초기 암도 림프조직을 따라 후두나 식도 등 두경부로 쉽게 전이될 수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하인두암은 상부 기도 및 상부 소화관에 발생하는 암 중 가장 예후가 불량하여 현재의 치료성적은 5년 생존율이 30% 내외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의사들에게는 기피하고 싶은 어려운 수술이고 환자에게는 수술 후 재활이 대단히 어려운 나쁜 암이 하인두암인 셈이다. 이 모든 것을 수술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남편의 목 아래 절개 부위가 상당히 넓었다. 담당 의사의 설명에 의하면 남편의 암이 생각보다 깊이 침습하여 넓은 부위를 절제해야 했다고 했다. 절제한 부위에는 다른 조직에서 잘라낸 피부를 이식하게 되는데, 이러한 수술을 전문용어로 유리피판 수술이라고 하였다. 남편의 경우, 피판 조직으로 허벅지살을 이용했다.

이 피판에는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과 정맥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고, 이 피판을 결손 부위에 이식할 때 원조직의 혈액이 피판 조직의 혈관과 통하도록 미세봉합하는 기술이 중요하다고 했다. 잘라낸 조직의 상처를 봉합하는 것도 중요 수술단계였다. 남편의 수술이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이해가 되었다.

유리피판 수술에 대해 알게 되자 현재의 의료기술에 대하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선회를 뜨듯 살을 얇게 베어내어 다른 조직에 접합시키는 기술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소설 <베네치아의 상인>이 생각났다. 지금의 우리나라라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살을 베어낼 수 있겠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 후 나는 담당 의사의 섬세한 손을 존경과 경탄의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남편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낸 놀라운 그의 실력에 감탄하고 감사하면서 감사를 어떻게 표현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말았다.


그러나 수술 후 몰아친 엄청난 후유증을 바라보면서 이 방법밖에 없었는지 의사를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다. 의사가 남편에게 이 수술의 위험부담에 대해 얼마나 자세히 설명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수술이 끝난 남편을 그냥 떠안긴 꼴이 되었다.

뒷날 남편의 재활 고통이 엄청나서 의사에게 수술하지 않고 치료하는 방안은 없었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의사는 수술과 항암치료의 병용이 생존율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말하며 간단하게 나를 물리쳐버렸다.


자, 이제 현실로 돌아가 보자. 먼저, 넓적다리 살이 성공적으로 활착 되어야만 남편은 살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남편 다리의 넓적 살을 베어낸 곳에 달린 피고름 주머니들이 더 충격적으로 보였다. 생살을 베어내다니 얼마나 아플까 싶어 내 마음이 다 아렸다.

더 다급한 일은 이식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엄청나게 분출해 나오는 침과 가래를 처리하는 문제였다. 남편은 입으로 호흡할 수 없었으므로 수술한 목에다 카눌라(cannula)라는 기구를 박아 호흡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가래도 이곳을 통해 뽑아내었다. 가래를 뽑아낼 때는 흡입기를 작동시켜 강제로 가래를 뽑아내어야 했는데 흡입기를 작동시킬 때마다 부르릉하는 기계음이 병실을 흔들었다. 환자는 가래에 막혀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고 간호사들은 바빠 늘 남편 곁에 붙어 있을 수 없었다. 나중에는 간호사에 의지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나와 딸이 가래 빼는 방법을 배워 우리가 처리하였다. 이 가래는 남편을 가장 오래 괴롭힌 문제였다.


병문안을 온 남편 친구들은 나더러

“왜 이 지경이 되도록 몰랐느냐?”라고,

“건강검진은 받지 않았느냐?”

고 하며 아내인 나를 은근히 비난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해마다 건강검진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자기 몸에 일어나는 이상 현상에 둔감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하인두암은 조기 발견이 상당히 어려운 암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초기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고,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남편도 목에 혹 덩어리가 만져져 병원을 찾았는데, 목에 혹 덩어리가 만져졌다는 것은 암이 림프절로 전이된 후라는 뜻으로 병이 상당히 진행되었음을 나타낸다고 했다. 하인두암이 발견된 환자의 70%에서 진단 당시 이미 경부림프절 전이가 관찰된다고 하니 이 병의 조기 발견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다.

굳이 의심을 가져 보자면 남편의 경우 병이 진단되기 전 해의 연말부터 가래와 기침이 많이 나왔다. 가래를 뱉어대는 남편이 걱정스러워 명의로 소문난 이비인후과 교수에게 남편을 모시고 간 적이 있었다. 어떻게 치료했는지 병원 치료 후 가래와 기침이 똑 끊겼다. 그게 발병한 해의 정초였다. 그 명의로 소문난 의사도 암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 당시의 종합검진 결과지를 꺼내 보았더니 암 지표가 약간 높게 나왔다고 적혀있었다. 그런데도 병원 측에서는 정밀검사를 요구하지 않았고 나도 그걸 간과했다. 그냥 통과의례처럼 건성으로 종합검진 결과지를 보았을 뿐이었다.


하인두암은 술 담배를 많이 하고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60~70대 남자에게서 잘 발생한다고 하니 남편은 여러모로 이 조건에 딱 들어맞았다. 남편 집안에 사 형제가 있는데 셋째 시숙은 시골에 계시고 도시에 나와 사는 나머지 삼 형제가 명절이나 기제사 때 주로 모였다. 시집가서 보니 이 삼 형제는 거의 말도 없이 술을 마시고 줄담배를 피웠다. 술은 청탁을 가리지 않고 좋아했지만, 독한 위스키를 잘 마셨던 것으로 생각된다. 재떨이 치우는 것이 막내인 나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그랬던지 큰 시숙은 위암으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인후암까지 전이되어 예순을 못 넘기고 돌아가셨다. 둘째 시숙은 형님이 돌아가신 꼭 일 년 후 그다음 날에 인후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두 시숙의 제삿날이 같은 기막힌 일이 우리 집안에 일어났다. 그러니 가족력도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후암으로 돌아가신 둘째 시숙의 마지막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목에 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경동맥을 막자 결국 혈관이 파열되어 돌아가셨다. 그때 병문안을 가 있던 우리 집 아들딸이 의사 가운이 피범벅 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이들은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그 후 자기 아버지의 금연에 결사적으로 매달렸다. 남편이 태국법인에 근무할 때였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녔던 나는 금연을 독려하는 전화나 했지만, 아빠와 함께 살던 아이 둘은 직접 행동에 나섰다. 아빠의 담배를 모두 버려버리고 재떨이며 라이터를 치워버리는 등 필사의 담배 제거 작전을 벌였다. 남편은 강제 금연 첫날 기사에게 담배를 얻어 피우다 자존심이 상해 그날로 담배를 끊어버렸다고 했다. 그로부터 20년도 더 지났지만 젊은 시절부터 피운 담배가 남편의 목 상피세포를 서서히 변이 시켜 왔던 모양이었다. 담배는 정말 무서운 독임이 남편으로 인해 다시 입증되었다.


남편은 친구도 좋아했고 술도 좋아했으므로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많이 마셨다. 대학시절부터 술을 밥처럼 먹고 규칙적인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한 위경련 증세로 고생해야 했다. 결혼 후에는 규칙적인 식사와 아내가 준비한 나름의 영양식을 먹고 남편의 위장장애는 많이 개선되었다. 나의 전공이 명색이 식품영양학이다. 이 전공이 남편에게 좀 도움이 되었으면 좋았으련만 남편과 오래 떨어져 살아 별로 그러지도 못한 것 같아 자책감이 들었다.


하인두암의 주요 위험인자가 술 담배인 것이 분명해지자 남편을 이 지경으로 만든 누군가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치솟았다. 우리 사회는 술 권하는 사회였으며, 회사에서는 법인카드를 주어 술을 마음껏 마시게 하였고, 친구들은 만나기만 하면 술을 마셨다. 고도성장기의 우리 사회에서 남편은 어떻게 보면 희생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을 회사에 온 청춘을 다 바치게 한 우리 사회, 그 희생을 바탕으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회사, 남편과 술잔을 기울이며 희희낙락한 친구들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남편의 산재 신청을 해야겠다고 공언했고 남편의 발병에는 친구들에게도 책임이 있으므로 병원비는 친구들이 보태야 한다고 농담을 했다. 남편이 좋아하여 마신 술에 대해 남의 탓을 해대니 어찌 보면 억지스러운 주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남편 친구들은 ‘저이가 병원비가 부족하여 그러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는지 병원비를 많이 보태 주었다. 그리하여 친구들에게 빚을 많이 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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