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수술

by 보현


남편의 수술일이다.

수술은 정오에 예정되어 있었다. 남편은 11시 30분이 되자 병상에 누운 채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여보 사랑해요. 무사히 돌아와요”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너무나 빨리 수술실 문이 닫혀버려 아무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말았다.


남편은 수술실로 들어가고 나는 상황실의 전광판에 나타나는 남편의 이름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전광판에는 환자별로 수술 준비 단계, 수술 중, 수술 완료, 회복실 등의 전 과정이 마치 중계방송하듯 계속 표시되고 있었다. 남편은 수술 준비 단계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가족을 수술실로 보낸 사람들이 초조하게 전광판을 응시하고 있었다. 전광판을 통해 실시간으로 수술 과정을 알려주는 것은 대한민국다운 최첨단 제도로 보여 놀라웠다. 하지만 눈을 전광판에 붙잡아 매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고약한 면도 있었다.


전광판을 바라보는데 우리 병실의 옆 환자가 오늘 오전 하늘나라로 갔다고 하는 소식이 계속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밤새 부부가 흐느끼며 작별 인사를 나누더니 결국 그 부부의 인생길이 이승과 저승으로 나뉘고 말았다. 폐암 말기였다던 그 환자는 기나긴 투병 끝에 관찰실 침대에서 최종적으로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복도에 울려 퍼지던 그 아내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계속 귓전을 맴돌았다. 한 사람의 인생이 사라진다는 것은 하나의 우주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르며 사라진 한 우주를 위해 잠시 기도했다. 그들 부부의 기원대로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전광판에서 남편의 이름을 쫓으면서도 관찰실 좁은 병상 위에서 최후를 맞았을 그 눈이 퀭하던 환자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그 후 관찰실을 지날 때마다 저 차가운 병상 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갔을까를 생각하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부여에 살고 계시는 김 목사님께서 친구 최 목사님을 모시고 병원으로 왔다.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던 목사님인지라 남편을 위한 특별기도를 부탁드렸더니 기어이 노구를 이끌고 병원까지 오신 것이었다. 두 목사님은 보호자가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며 억지로 나를 이끌고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사주셨다. 그리고 병원 동산의 벤치에 나를 앉혀놓고 장엄하게 기도해주셨다.

하지만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나는 밥이 어디로 들어갔는지, 기도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하나도 마음에 새겨지지 않았다. 그냥 혼자 조용히 기도하고 싶었다. 그래서 두 분 목사님을 가시게 하고 병원 안의 기도실로 향했다. 병원 안에는 가톨릭, 개신교, 불교 기도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기도실 문을 열고 들어가 성모님 발아래 엎드려 남편을 살려달라고 눈물로 기도했다.


기도 중, 남편과 함께 살아온 길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지나갔다. 대학에서 만난 남편과 나는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아 기르며 인생 2막을 함께 보냈다. 인생 2막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함께 보낸, 우리 인생의 확장기가 바로 그 시기가 아니었나 여겨졌다. 그 시기는 그야말로 치열한 생존경쟁의 전쟁터이기도 했다. 둘 다 서로에게 적응하느라고 힘들었고, 직장에서 버텨야 했으며 아이들을 키우고 노부모를 모시느라고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어느 하나도 쉽지 않았다. 우리 세대가 다 그러했듯이 남편과 나는 방향도 모르고 무조건 앞으로 내달렸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인 줄로 알고 살았다. 나아가는 방향이 어디인지도 몰랐다.

남편은 말 그대로 회사맨이었다. 오로지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중에 승진도 하였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최고의 자리에도 올랐다. 나도 교수 사회의 일원으로서 생존경쟁에 뒤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그동안 양쪽 부모님들은 다 돌아가셨고 아이들은 성장하여 각기 제 갈 길로 갔다. 이 년 전, 남편이 먼저 퇴직하였고 나도 곧 퇴직할 시점이 되었다.

우리는 인생 3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자기 목표 때문에 각자의 길을 걷던 삶에서 벗어나 나머지 인생길을 함께 한 방향을 보며 걷자고 약속하였다. 끌려다니는 인생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보고 싶은 것을 보는 삶으로 방향을 바꾸자고 결심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계획을 비웃기라도 하듯 병마가 남편을 덮쳤다.

성경에 나오는 어느 부자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부자는 많은 소출을 얻어 새로 창고를 지어 재산과 재물을 모아 두고 쉬면서 먹고 마시고 즐기려고 마음먹던 그날 밤, 하느님은 그의 목숨을 가져가겠다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부자는 아니지만 인생 3막을 살 여유는 약간 생긴 참이었다.


전광판 앞에 혼자 있으려니 불안하고 스산하였다. 아들딸 생각이 간절해졌다. 두 아이 다 외국에 있어 당장 뛰어올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올 수 없는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알릴 수 없는 상황이 더욱 나를 안타깝게 했다. 딸아이가 간절히 그리웠다. 장녀인 딸아이에게는 아버지의 수술 사실을 알려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남편은 자기의 상황을 아이들에게 절대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다. 혼자 전광판 앞을 지키고 있는 마음이 떨렸다.


쉼 없이 여러 이름이 수술실에서 회복실로 옮겨갔다고 알리건만 남편 이름만 계속 수술실에 머물러 있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오후 8시가 되자 이제 수술실에 남은 사람은 남편과 또 한 사람의 환자밖에 없었다. 나는 왼쪽 넓적다리 살을 베어 목에 붙인다는 의사 말이 자꾸 떠올라 기가 막혔다. 허벅지 살을 얇게 베어내기도 어렵겠지만 그걸 목에 붙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려운 과제로 여겨졌다. 그게 어찌 가능하다는 걸까? 의사의 설명에 의하면 붙인 살이 괴사하거나 방사능 치료 중 떨어져 나가면 다른 쪽 허벅지 살을 베어 한 번 더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무서운 일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후일, 안면 이식 수술을 위해 양쪽 허벅지 살을 베어낸 사람이 우리 병실에 입원해 온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극도의 공포감 때문에 간호사가 다가오면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발작을 하며 주사를 거부하였다. 결국, 남자 여럿이 와서 환자를 묶고 안정제를 놓아 관찰실로 데려갔다. 그 환자의 공포심 같은 두려움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밤 9시가 되었다. 이제 전광판에 남편 이름만 덩그러니 남았다. 초조감이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수술이 복잡해서 그런가 보다’에서 ‘수술 과정 중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닐까’하는 불안감이 온통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음이 한 방향으로 기울자 걷잡을 수 없었다. 불안감으로 터지려고 할 무렵 나의 이름을 부르는 방송이 나왔다. 수술실 어디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이제 무서운 통보를 듣게 될 것만 같았다. 겨우 수술실로 들어갔다. 의사가 나의 하얗게 질린 얼굴과 후들거리는 다리를 보고 걱정스러웠던지 먼저

“수술이 잘 끝났다”

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수술복 차림의 의사를 바라보며 그 자리에 주저앉을뻔하였다.


수술 후 남편은 중환자실로 가고 나는 상황실에 앉아 있었다. 이제 모든 수술이 다 끝났기 때문에 상황실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나처럼 방금 수술이 끝나고 환자가 중환자실로 가면서 병실에서 쫓겨난 타지 사람들이 상황실 의자에 쪼그린 채 밤을 새울 모양으로 몇 명이 남아있었다.

밤 11시 30분이 되자 남편 얼굴을 볼 수 있으니 중환자실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남편은 의식이 깨어나 나를 알아보고 미소 지었다. 나는 살아난 남편의 손을 잡고

“여보, 무사히 살아 돌아와서 고마워요”

라고 말하며 그가 누워있는 중환자실의 병상에 얼굴을 묻었다. 하루의 긴장이 다 녹아내리는 순간이었다. 아침에 하려고 했던 “여보 사랑해요”라는 말은 끝내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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