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두려워하던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남편의 경우는 항암화학요법과 방사선치료의 병행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병원에서는 어떤 프로토콜로 환자를 치료해야 할지를 결정하기 위해 암 시술을 집도한 담당 의사뿐만 아니라 종양내과, 방사선 종양학과의 의사들이 협의하는 것 같았다. 병원 당국에서도 환자의 두려움을 아는지 수간호사와 영양사 등을 병실로 보내 항암화학요법, 항암 영양교육, 항암 스트레스에 관해 설명하였고 이 치료 방법의 부작용에 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환자 보호자인 나는 늘 상세한 설명에 목말랐다. 의사는 전문가이기도 하고, 계속 같은 환자들을 대하기 때문에 환자나 환자 가족의 염려나 궁금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듯했고, 모든 것이 병원이 정한 절차 내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듯 보였다. 환자나 환자 보호자는 반의사가 된다고 했던가. 나는 나름대로 두 치료 방법의 목적, 방법, 부작용 등에 대해 열심히 찾아보고 알려고 노력했다.
항암화학요법이나 방사선치료나 방법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아서, 행여라도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한 수순이었다. 수술을 통해 눈에 보이는 암 덩어리는 제거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암세포가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암세포는 빠르게 증식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금방 또다시 병증을 일으킬 수 있고, 목 주변의 림프샘을 타고 주변 조직으로 전이될 수 있다. 그래서 암이 무섭다.
항암화학요법은 항종양제 약물을 투여하여 어딘가에 숨어있는 암세포를 공격해 사멸시키는 치료법이다. 이 항종양제 약물의 특징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분열하는 모든 세포를 공격해 사멸시키는 치료법으로서 몸의 어디에건 암세포가 있으면 공격하는 전신 치료법이다.
문제는 빠르게 분열하는 세포에 암세포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인체에는 빠르게 분열하는 정상 세포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표피 세포나 혈액을 생성하는 골수 같은 것이다. 항종양제 약물이 무자비하게 정상 세포까지 파괴시키므로 혈액 속의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의 생산이 일시적으로 감소될 수도 있고, 구역질, 구토, 탈모, 콩팥 기능장애 등의 광범위한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다행히 항암화학요법이 끝나면 정상 세포들은 2~3주 이내에 회복된다고 하였다.
남편에게는 씨스플라틴(cisplatin)이라는 항종양제 약물을 투여하되, 일주일 간격으로 다섯 차례 처치하는 프로토콜이 결정되었다. 의사들이 숙고하여 결정하였겠지만, 주사 주기가 짧아 행여나 부작용이 심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항암화학요법에 비해 방사선치료는 병소가 발견된 부위에 방사선을 집중적으로 조사하여 남아있는 암세포를 제거하는 국소 치료법이다. 방사선치료에 이용되는 방사선에는 X선, 감마선, 전자선, 양성자선 등이 있다. 방사선이 치료 효과를 나타내는 이유는 이것이 우리 몸을 투과하면서 세포 내 전리현상으로 DNA 또는 세포막의 화학적인 변성을 초래하므로서 세포를 죽이기 때문이다.
방사선도 정상조직과 종양조직을 구분하지 않으므로 이 조사를 통해 모든 조직이 손상을 입지만, 정상조직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는 반면, 종양 조직은 죽게 되므로 이러한 차이를 이용하여 종양을 치료하게 된다. 이때도 종양 주의의 정상 세포들이 손상을 받아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나타내게 된다.
목 주위에 방사선치료를 계속하게 되면 입안이 건조해지고 헐며, 화상을 입은 것처럼 조직이 벌겋게 탄다고 하였다.
방사선 종양학 담당 의사는 방사선치료 중 이식한 유리피판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하여 나의 간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방사선치료는 유리피판을 이식한 남편 같은 사람에게는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은 치료 방법이라고 생각되었다.
남편은 총 27회의 방사선치료를 받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총 27회의 방사선치료는 매우 가혹한 방법으로 여겨졌지만, 이 방법은 종양이 신체 일부에 국한되어 있고 원격전이가 없을 때, 완치를 목적으로 하는 치료 방법으로 채택된다는 것을 알자 힘들지만 이 고비를 잘 넘기면 좋겠다는 희망도 생겼다.
현대의학에서 방사능은 양날의 칼이다. 잘 쓰면 죽을 사람도 살리지만 계속된 방사선 노출은 없는 암도 생기게 하는 독이 될 수 있다. 방사선 조사나 CT 검사, PET 검사 등을 할 때 다량의 방사선 피폭이 일어난다. 원자폭탄이 두려운 것은 방사성 물질 피폭 때문이지 않은가. 방사능을 연구하여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퀴리 부인의 사인도 과다한 방사선 노출로 인한 악성 빈혈이라고 했다.
화학약물을 투여하든, 방사선을 조사하든 암세포를 죽일 정도이면 건강한 세포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되고, 결국 환자가 그 경계선을 넘어 잘 이겨내면 치료가 되는 것이고 부작용을 견디지 못하면 암에 지고 마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알자 남편이 무사히 이 두려운 과정을 잘 견뎌내기만을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입원한 지 38일째 되는 날, 항암화학치료와 방사선치료가 동시에 시작되었다. 항암화학 약물의 독성 때문에 간호사들이 극도로 긴장하는 것 같았다. 직접 처치를 당하는 당사자의 긴장이 얼마나 클까마는 나도 묵주를 손에 들고 성모마리아를 외쳐 부르며 남편이 아무 탈 없이 이 과정을 무사히 견뎌내기를 기도하였다.
오전 11시가 되자 주삿바늘을 팔의 정맥혈관에 삽입하였다. 남편은 정맥이 발달하여 굵은 정맥이 노출된 편이었다. 평소에는 혈관 찾기가 쉽다고 간호사들이 좋아하였는데, 입원 기간이 길어지자 희한하게도 정맥들이 다 숨어버렸다. 자꾸 주삿바늘을 찔러대니 혈관들도 괴로움을 아는지 숨어버리는 것이었다.
혈관으로 화학 약물을 주입하는데, 우선 한 시간 동안 염수를 주입하고, 한 시간 동안 항암제(cisplatin)를 천천히 투여한 다음, 또다시 한 시간 동안 염수를 넣는 순으로 치료가 진행되었다. 초긴장 속에서 첫 번째 함암화학치료는 무사히 끝났다. 오후 4시에는 방사선 조사를 하였다. 상처 부위에 20분가량 방사선을 조사하였는데, 조사 부위가 붉어진 것 외 별다른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뒤로 방사선치료는 주말을 제외하고 주 5일간, 매일 20분씩 계속되었고 제27차 방사선치료까지 중단없이 계속되었다.
방사선 조사가 계속되자 여러 가지 부작용 이 나타났다. 우선 방사선을 조사한 목 부위가 붉게 변화하였다. 가장 오랫동안 남편을 괴롭힌 부작용은 입안의 건조증, 구내염, 수술 부위의 따끔거림, 피부의 건조증이었다. 방사선 조사가 계속되자 목 바깥 피부가 화상을 입은 듯 헐었고 짓물렀으며 껍질이 벗겨졌다. 머리털이 눈에 띄게 빠지기 시작했다. 얼굴의 수염도 면도한 듯이 빠졌다.
4차 항암화학치료를 하자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수치가 떨어져, 수혈하고서야 마지막 화학치료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두려운 화학치료가 일단 끝이 났다.
남편은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나날이 고통이 심해졌다. 가래에 숨이 막혔고 가래를 계속 빼내자 목에서 피가 쏟아지기도 했고 열이 나기도 했다. 체중도 많이 빠졌다.
체중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가 슬로베니아의 블레드 호수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블레드 호수는 쥴리안 알프스의 빙하가 만들어낸 이름다운 호수로서 그 섬 가운데에 성모승천성당이 있다. 그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려면 신랑이 신부를 안고 그 계단을 올라 성당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이를 안 우리 여행팀도 객기를 부려 각자 아내를 업고 계단을 올라가기로 하였다. 나는 남편이 암 수술 날짜를 받아놓고 여행에 따라나섰는지도 모른 채 남편 등에 업혀 그 계단을 올라갔다. 당시 나는 꽤 살집이 있어서 지금 생각하면 남편이 나를 업고 그 99계단을 어떻게 올랐을까 싶어 아찔한 생각이 든다.
그 성모승천성당에서 종을 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모든 여행객이 줄을 서서 종을 땅땅 울렸었는데, 그때 남편의 발병 사실을 알았더라면 내 소원은 단 한 가지였을 것이다.
남편이 입원해 있는 동안 나의 체중이 3kg이나 빠졌다. 그렇게 다이어트를 하려고 해도 안 되더니 병원 생활이 힘들긴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평소에도 날씬하던 남편은 항암치료 과정 중 더욱 살이 빠져 이제 나와 비슷한 체중이 되었다. 만일 블레드 호수에 다시 간다면 내가 남편을 업고 가야 할 형편이 되었다.
암이 두려운 것은 재발이나 전이 때문이다. 수술 후 3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지만, 수술 초기에는 암세포가 살아나 엄청나게 증식하고 다른 부위로 전이되는 악몽을 자주 꾸었다. 한번은 새로운 인턴 의사가 남편의 아침 소독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남편의 목 안에 암세포가 누렇게 남아있다고 하여 주저앉을 뻔하였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 말로는 남편 병소의 암세포를 깨끗이 제거했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담당 의사를 찾아가 누런 암세포에 대해 문의하자 교수 의사는 암 덩어리는 다 제거했고 누런 부분은 염증이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남편을 담당한 교수 의사는 차분하고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었다. 목소리를 높이는 법도 없었고 언제나 온화하고 다정하게 우리를 대해 늘 감사하게 생각하였다. 병원 생활에서 좋은 의사를 만나는 것보다 더 좋은 행운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정기적으로 두경부 CT를 찍고 있지만, CT 결과를 들으러 갈 때마다 긴장하게 된다. 암 환자만이 아는 두려움일 것이다. CT 결과, 별문제가 없다는 의사의 말 한마디에 전신의 긴장이 풀리며 비로소 웃음을 되찾게 된다. 처음에는 3개월마다 환부의 CT를 찍었다. 일 년 뒤에는 PET 검사를 하였다. 수술 후 일정 시간이 지나자 의사는 6개월마다 CT를 찍으라고 권고하였지만 불안하여 6개월을 채우기가 힘들었다. 남편의 경우는 폐렴의 우려가 있으므로 CT를 찍을 때는 꼭 가슴 X-선 검사를 한다. X-선 조사도 그렇지만 CT나 PET의 경우 단순한 X선 촬영의 수십 배에서 수백 배에 이르는 방사선 피폭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의사가 권한 6개월을 지키지 못하고 조기에 가서 CT 검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수술 3년 차에 접어든 올해부터는 6개월마다 CT를 찍고 있다.
그동안에도 소소한 문제로 입원을 세 차례 더하였다. 남편은 불굴의 의지로 어려운 시기를 다 이겨내었다. 그 인간승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