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기도

by 보현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기 한 해 전의 일이었다. 남편이 어둡고 습한 공간에 혼자 서서 나와 딸아이의 이름을 안타깝게 외쳐 부르는 아주 이상한 꿈이었다. 잠에서 깨어나자 그 꿈이 너무 슬퍼 눈물이 났다. 남편이 갇혀 헤쳐 나오지 못하고 있던 그 적막한 고립무원의 공간이 나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하였다. 단테의 <신곡> 첫머리가 떠올랐다. 단테는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무서운 세 마리의 짐승과 마주치게 된다. 날랜 표범과 허기진 사자와 말라빠진 암늑대가 바로 그것들이었다. 세 마리의 짐승이 그를 에워싸고 옥죄어 들어오는 절망적인 광경 속에서 단테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 절망적인 느낌이 남편에게서 똑같이 느껴졌다. 나는 지옥이 바로 빛도 없고 어둡고 습하고 방향도 알 수 없는 그런 적막강산이 아닐까 생각하였다. 그 꿈이 얼마나 강렬하였던지 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단테를 구해낸 베아트리체처럼 남편을 그 황량한 곳에서 빛 가운데로 끌어내야겠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남편은 나의 성화에 못 이겨 그해 크리스마스에 세례를 받았다. 40여 년을 외짝 교우로 지내온 나로서는 남편의 세례가 무척이나 감격스러웠다. 이제 남편이 어두운 곳에서 헤매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아들딸은 태어나자마자 유아세례를 시켰기 때문에 남편만 세례를 받으면 나의 숙제는 완성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에도 줄곧 남편이 우리와 함께 교회에 나갈 것을 권해 왔다. 권할 뿐만 아니라 혼자 마음속에 남편의 구두를 품고 미사에 갈 때마다 남편도 이 구두를 신고 함께 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내가 성화를 부릴 때마다 남편은 퇴직하면 나와 같이 성당에 나가겠다고 약속하였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남편은 나름의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기독교 관련 서적을 구해 읽고 교회 TV도 가끔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꿈 사건이 나의 성화를 촉발하였고 눈물로 호소하는 아내의 성화를 더는 외면할 수 없었든지, 아니면 하느님의 때가 마침 그에게 내렸던지 남편은 큰 결심을 하고 세례를 받았다.

나는 남편의 세례명을 무엇으로 할까 고심하였다. 그러다 미사를 다녀오는 길에 남편에게 가장 적절한 세례명이 딱 떠올랐다. ‘요셉’이었다. 성모 마리아의 남편 그 요셉 말이다. 요셉 성인에 대해서는 평소에도 깊이 존경해마지 않았었다. 그는 마리아의 혼전 임신이 밝혀졌는데도 그녀를 아내로 받아들였고, 예수에게도 성실한 아버지의 역할을 다하였다. 그 인간적인 면모와 성실함이 남편의 이미지와 딱 들어맞는 것 같았다. 말하자면 남편에게 요셉이라는 세례명을 권한 것은 남편에 대한 최고 존경의 표시였다.

이리하여 남편은 ‘요셉’이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던 날 밤 몇몇 친구들과 조촐한 파티를 열었는데, 남편의 얼굴은 막 세례 받은 자의 기쁨으로 빛났었다.


꿈 이야기로 시작하였으니 이상한 꿈 사건을 하나만 더 이야기해야겠다. 어느 날 밤 꿈속에서 나는 검은 옷차림의 사람에게 쫓기고 있었다. 배경은 어느 고택 같았다. 화장실에 가려고 높은 대청마루에 나가 앉았는데 화장실 곁 문간에 검은 사람이 서 있었다. 갑자기 검은 갓모자를 쓴 형체를 알 수 없는 그 사나이가 내게로 쓱 다가왔다. 쓱 다가왔다고 표현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나이가 내 턱 밑까지 쫓아와 있었다. 꿈속에서 나는 비명을 질렀고 잠에서 깨고 보니 밤 2시경이었다.

‘애고 또 개꿈을 꾸었구나’ 하며 진땀을 닦으며 다시 잠을 청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예사로운 개꿈으로 치부하고 학교에 갔다. 그런데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어젯밤 2시경 당신 비명을 들은 것 같은데, 괜찮아?”

하는 것이었다. 전신이 와들와들 떨렸다. 남편은 아이들과 서울에 살고 있었고 나만 지방에 살고 있을 때였다. 대학원 학생들이 나더러 그 검은 모자를 쓴 사람이 저승사자라고, 잡혔으면 교수님은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놀렸다. 내가 떨었던 것은 저승사자 때문이 아니라 남편과 나 사이의 텔레파시 때문이었다. 그 긴박한 순간에 나의 비명이 남편에게 들렸다는 사실은 남편과 내가 서로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뜻했다. 두 사람 사이에 시공을 넘어 텔레파시라는 것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깨닫자 소설 <제인 에어>가 떠올랐다. 미친 부인이 지른 불 속에서 로체스터가 제인 에어를 외쳐 부르는 순간,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제인 에어에게 로체스터의 비명이 들렸다는 그 장면이다. 난 그냥 소설이겠거니 했는데 남편이 나의 비명을 들었다고 하니 시공을 채우고 있는 신비에 몸이 떨렸던 것이었다.


꿈 이야기는 이쯤 하자. 이제 남편의 투병 생활에서 중요한 힘이 되었던 여러 사람의 기도에 대하여 말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남편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 주었고 지금도 기도해주고 있다. 나는 줄줄이 이어진 기도의 행렬이 남편을 살리는 데 분명히 일조하였다고 믿는다. 남편이 입원하자 제일 먼저 병원 사목을 하시는 수녀님과 신부님께서 방문해 오셨다. 가톨릭 신자가 입원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는지 지금도 그게 궁금하다.

하루는 병원 소속 신부님께서 오셔서 남편의 병이 심각하다고 생각했는지 남편 머리맡에 서서 오래 기도하시면서 남편이 하느님께 기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물었다. 말을 못 하는 남편은 메모지에다 이렇게 적었다.

“부끄럽지만 건강이 회복되게 도와주시면 나은 후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가슴이 뭉클하여 남편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를 회복시켜 주시기를 신부님 곁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남편이 쓴 그 쪽지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남편이 말하는 새로운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내가 생각하는 새로운 삶을 남편이 살지 않으면 그 쪽지를 내보이며 남편을 압박할 참이다.


항암화학치료와 방사선치료로 신경이 날카로워졌던 남편이 누구의 병문안도 거부하였을 때도 남편의 대부인 문 아우구스티노 씨는 날마다 병실에 들러 기도해 주고 갔다. 나의 대녀인 정 카타리나는 가는 성당마다 초를 봉헌하며 남편의 건강 회복을 위해 기도하였다. 카타리나가 성당 미사 때마다 울며 기도하자 남편에게 무슨 큰일이 생겼는가 하고 놀란 우리 성당의 신부님과 수녀님이 병실을 찾아오셨다.

남편을 위해 기도해 주시던 차 토마스 신부님에게 갑자기 폐암이 발견되면서 남편보다 먼저 천국으로 가셨다. 퇴임 후 홀가분하게 인생을 즐기시겠다던 신부님을 하느님께서 쓰겠다고 불러가시니 사람의 계획이란 참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 수녀님은 비둘기가 있는 십자가를 사서 병문안을 오셨는데, 희망을 상징하는 그 십자가를 사기 위해 인사동을 한동안 돌아다녔다고 하셨다. 수녀님께서 남편 머리맡에서 해주시던 감동의 기도를 잊을 수 없다. 수녀님께서 우리 성당의 임기를 마치고 강원도 원주로 전출해 가셨는데 거기에 수녀님이 일곱 분이 계셨다. 어느 날 그곳에 함께 계시던 노수녀님께서

“나는 그 ‘말 못 하는 환자’를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다오”

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원장수녀님으로부터 전해 듣고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지금은 논산의 모 유치원에 근무하시는 수녀님을 얼마 전에 찾아뵈었다. 수녀님은 남편의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고 전하자 제 일처럼 기뻐해 주셨다.


우리 성당의 반회원들도 남편을 위한 ‘묵주의 9일 기도’를 시작했다. 반장인 김 말가리타는 적어도 한 주에 한 번은 병원에 와서 밥도 사주고 기도도 해주며 나를 격려하고 갔다.

우리 학교의 조현 교수는 자기 성당의 기도하는 팀에 남편의 이름을 올리고 남편의 회복을 위해 날마다 기도한다고 했다. 남편의 친구인 임 사장은 날마다 새벽기도에 나가서 남편의 회복을 위해 눈물로 기도한다고 하였다. 부여에 사시는 김 목사님은 성격대로 열렬히 기도하시면서 하루도 빼지 않고 내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김 목사님은 친구 목사님들께도 기도를 부탁하셔서 최 목사님과 윤 목사님을 위시하여 그 주위의 기도부대가 남편을 위한 기도에 나섰다. 김 목사님은 지금까지도 남편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계신다.

이밖에도 부산에 계시는 조신부님, 남편 친구인 한 교장, 나의 은사인 최교수님 부부, 엘지전자 심 회장님 부부 등 거론하기 숨차게 많은 분들이 남편을 위한 기도에 동참해 주셨다.

나는 이 모든 천사 같은 사람들 때문에 감동하였다. 소돔과 고모라를 치실 때, 하느님은 그 고을에 의로운 사람 열 명만 있으면 그 고을을 불사르지 않겠다고 아브라함과 약속하셨지만, 의인 열 명이 없어 소돔과 고모라는 불벼락을 맞고 멸망하였다고 했다. 나는 평소 우리 사회가 메마르고 이기주의가 팽배하여 남의 아픔에 둔감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는 선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이렇게나 많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고 감동하였다.


나 자신은 감정이 건조하여 눈물을 흘리는 일이 드물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주일 미사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났다. 내가 하도 눈물을 흘리자 함께 미사를 보던 방콕의 김 사장 부부가 나와 함께 울었다.

하루는 미사를 보고 식당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데 정 카타리나와 김 말가리타가 나와 점심을 함께 하자며 병원 식당으로 찾아왔다. 그들은 눈물로 얼룩진 나의 얼굴을 마주 보고 밥을 먹으며 함께 울었다. 울면서도 내가

“요즈음 하늘나라가 권 요셉 때문에 시끄럽겠다”

라고 농담을 하자 모두

“맞다”

고 하면서 울다가 웃었다. 대규모 기도부대가 권 요셉을 위해 하느님께 빌어대니 하느님께서

“권 요셉이 누구길래 이렇게 소란스러우냐?”

고 할 것 같았다.

성경에 한 친구가 밤중에 다른 친구를 찾아가 빵을 빌려달라고 조르는 광경이 나온다. 빵을 가진 친구는 이미 자녀들과 침상에 들었으므로 일어나 빵을 내어줄 수 없다고 거절하지만, 그 친구가 하도 조르자 귀찮아서 일어나 빵을 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귀찮아서 빵을 내준 친구처럼 나도 하느님을 귀찮게 만들어야겠다는 외람된 믿음이 생겼다.

이 눈물의 기도부대를 하느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신다면, 히스기야의 수명을 15년 연장해 주신 것처럼 남편의 수명을 연장해 줄 것을 믿는다.

남편이 많이 회복된 데에는 남편을 위해 기도해 준 기도부대의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기도의 빚을 많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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