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회화나무처럼
친구들과 유럽 여행을 막 다녀온 직후였다.
다섯 부부와 그리스를 출발하여 발칸을 거쳐 크로아티아를 향하는 여정이었다. 고대 문명의 정수인 아테네와 인류의 화약고인 발칸과 아름다운 자연이 보존된 크로아티아를 둘러보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여행 내내 어느 것 하나 흥미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특히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소크라테스의 감옥,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를 직접 보는 기쁨은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가슴을 설레게 했다.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오면 대개 나에게 여행 사진 편집 임무가 주어진다. 꼼꼼하게 정리하는 데는 나를 이길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친구들이 각자 찍은 사진을 모두 다 내게로 보내왔다. 사진을 늘어놓고 날짜별로 배치하고 적절한 설명을 붙이며 정리하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여행은 여행 당시도 좋지만 다녀온 후의 사진이나 기록을 정리하는 것이 더 재미있을 때도 있다.
그때 남편이 나를 불렀다.
“문여사, 이리 와 보소.”
사진 정리 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나는 남편이 부르는 게 마뜩잖았다.
“지금 바쁜데 왜? ”
하는 소리가 크게 나왔다.
남편이 다시
“이리 와 앉아 보소”
하는데, 남편 소리에 약간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졌다.
“왜?”
하며 거실로 나가자 남편이 옆에 앉으라며 소파 한쪽을 가리켰다.
좀처럼 없는 일이라 약간 긴장이 되었다.
“문여사, 놀라지 마시오. 사실은 간단한 수술을 위해 며칠 내 병원에 들어가기로 했소. 입원에 필요하다고 하니 이 준비물들을 좀 챙겨주시오”
하며 병원에서 주는 서류를 내밀었다. 남편이 내민 종이를 보니 우리나라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는 S병원의 입원안내서였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잠시 남편 얼굴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자동으로 남편의 오른 턱 아래로 눈길이 갔다. 목 부분이 여전히 볼록하게 솟아있었다.
지난 4월, 남편이 자기 목을 만져보라고 한 적이 있었다. 오른 턱 아래쪽의 목 부위가 볼록하게 보였고, 손으로 만져보니 탄력이 있는 혹 같은 것이 느껴졌었다. 당시 남편은
“별일 아닐 거야”
라며 나를 안심시켰고 나도 뭔가 피곤해서 편도선이 부은 것일 거라며 애써 무시하였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넘길 일이 아니었던가 보았다.
알았다고 하고는 사진 정리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그날 밤늦게까지 컴퓨터에 매달렸다. 어쩐지 병원에 들어가면 쉽게 나오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여행사진을 기대하고 있을 친구들에게 먼저 사진을 전해주고 병원에 가고 싶었다.
여행 사진들을 들여다보면서 남편이 수술 날짜를 잡아놓고 여행에 나섰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기가 막혔다. 여행지에서 찍은 남편의 사진을 다시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사진 속의 남편은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다시 보니 그 미소 속에 슬픔이 깃들어 있는 것도 같았다.
우리가 여행을 떠난 것이 6월 말경이었으니 남편은 4월부터 목 아래의 혹 덩어리를 안고 얼마나 고민에 빠졌었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아테네를 간다는 기쁨과 여행 준비에 마음에 붕 떠 남편의 목 아래 혹은 잊고 있었다.
사진을 보자 사진 속의 나는 기쁨에 차 있는 모습이었다. 남편은 기뻐하는 아내의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눈앞이 흐려져 여행 사진이 잘 보이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나도 친구들도, 남편에게서 이상한 징조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남편은 늘 유쾌한 농담을 던져 친구들을 즐겁게 하였고 식사 때마다 와인을 돌리며 분위기를 돋웠다. 후일 그때의 여행 친구들이 병문안을 와서는
“사람이 어째 그러냐?”
고 남편을 원망하였고 부인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마음에 짚이는 일이 하나 떠오르기는 하였다. 우리가 보스니아의 유명한 관광지 모스타르를 지나갈 때였다. 휴게소를 잠시 들렀는데 십자가와 성모상으로 치장된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주변 상가에서도 온통 묵주와 성모상 등 성물을 팔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알아봤더니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메주고리에라는 유명한 성모 발현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팀에 가톨릭 신자들이 몇이 있었는데 그 말을 듣자 메주고리에를 가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우리가 예정에 없던 메주고리에 방문에 목을 매자 가이드는 메주고리에가 다음 일정으로 가는 도중이므로 잠시만 들르자고 여행팀을 설득하였다.
메주고리에는 성모 발현지라는 명성 외에도 바깥에 세워진 예수 고상이 유명하다고 했다. 예수 옆구리에서 액체가 조금씩 스며 나오는데 그것이 온갖 병을 치유하는 기적을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득달같이 예수 고상으로 달려갔더니 이미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차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여행팀을 위하여 그곳에서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가이드가 고심하다 그 옆에 세워져 있는 예수상의 다리를 만져보고 가자고 하였다. 웬일로 남편도 예수님 다리를 껴안았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나에게 카메라를 넘기고 예수님 다리를 껴안는 남편의 모습이 그때 좀 이상하게 느껴졌었다. 우리를 기다리며 뿔이 많이 나 있는 다른 여행객들에게 그날 저녁 식사 때, 남편이 와인을 돌리며 사과하여 분위기를 풀었다.
후일, 나의 대녀인 정 카타리나가 예수님 옆구리에서 흐른 액체를 훔친 귀한 손수건을 내게 건네주었다. 이것을 남편 병실 베개 속에 넣어두었다가 세탁물을 내면서 분실해 버렸다(주의력 없는 내 행동에 한동안 상심했었다.
또 하나, 나를 카메라 앞에 자주 세웠던 것도 남편답지 않은 이상행동이기는 했다. 남편의 사진 실력을 아는 친구들이 여기저기서 포즈를 취하며 남편을 불렀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기꺼이 친구들 사진을 카메라에 담았었다. 하지만 남편은 나를 앵글 앞에 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모델이 별로여서 그런가 하고 서운하게 여기면서도 자존심이 상해 굳이 나를 찍어달라고 조르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나를 자주 불러 세우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래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여러 장 남았다. 웃고 있는 사진 속의 나의 모습을 보니 더욱 가슴이 쓰렸다.
입원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기내 가방에 챙겨 넣고 다시 해외여행을 떠나듯 병원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입원이라든가 수술이라든가 하는 단어에 대한 현실감이 별로 없었다. 결혼 후 거의 40년을 살면서 남편이나 나나 크게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었다. 물론 감기몸살 같은 소소한 일로 병원을 드나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병원에 도착하자 병원에서 풍기는 특유의 냄새가 훅 와닿았다.
S병원의 첫인상은 온통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 번잡한 시장을 연상시켰다. 바쁘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 의자에 앉거나 누워 있는 사람들, 휠체어를 탄 사람들, 베드에 누운 채 이송 중인 환자들, 그 사이로 간호사들, 의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픈 사람이 이렇게나 많을까 하고 놀라면서 덩달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배정받은 병실에 들어갔을 때 창가 병상에 한 환자가 누워 있었다. 인사를 나누기 위해 그쪽으로 갔다가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움푹 들어간 눈, 몸에서 살이란 살은 다 빠진 한 노인이 나의 인사를 받자 바짝 마른 손을 들어 반갑다고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간병하는 중년 부인에게
“아버지신가 보네요?”
하고 인사를 건네자 그 부인이
“남편입니다”
라고 말해 무안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였다. 애써 침착하려고 했지만 놀란 티가 역력하였을 것이다.
저녁에 레지던트 의사가 병실로 올라왔다. 그는 내일의 수술을 위해 수술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목 아래에 생긴 암 덩어리를 제거하고 왼쪽 허벅지 살을 베어 목에 붙여 넣는 수술이라고 하였다. 나는 처음으로 남편의 병이 하인두암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수술이 매우 시급한 시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때는 현실감이 없었다. 다만 ‘어머 이게 보통 일이 아니네.’, ‘남편이 내게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던 게 거짓말이네’ 하는 생각만 들었다.
의사는 수술 과정에 있을 여러 위험한 상황을 설명하며 우리의 동의를 구했다. 그 설명을 듣는 내내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것 같았다. 허벅지 살을 베어 목에 붙인다는 것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동의서를 작성하면서 심장이 뛰기 시작한 것이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옆집 환자는 고통으로 밤새 고함을 질렀고 그의 아내가
“여보, 우리 천국에서 만나요”
하며 흐느끼는 말이 그대로 들렸다.
남편을 힐끗 보니 그는 침상에 누워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 옆 보호자 간이침대에 누워 나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바닥에서는 시멘트 냄새가 올라왔고 흰 시멘트벽과 형광등 불빛, 낯선 곳의 낯선 느낌과 옆 환자와 보호자의 흐느낌, 허벅지 살을 베어 목에 붙인다는 의사의 설명 등이 뒤 엉겨 나는 악몽 같은 병원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