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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Jan 23. 2023

멸치똥을 까며

   

가락시장에서 멸치를 사다

가락시장에 간 김에 육수용 멸치를 샀다. 김치 냉장고를 점령하고 있던 멸치가 마침내 바닥을 드러내었기 때문이었다.  

멸치똥을 까는 것은 하나의 즐거움이다. 혹자는 지겨워서 어떻게 그 작은 멸치를 까고 앉았냐고 놀라기도 하고 또 다른 혹자는 그냥 다시 팩을 사서 간편히 사용할 수 있는 시대에 웬 미련을 떠느냐고 퉁박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멸치똥 까기를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기꺼이 이 작업을 한다. 나는 머리 쓰지 않고 반복하는 단순 작업이 좋다. 예컨대 정원의 풀을 뽑는다든지 나물을 쌓아놓고 잡티를 가린다든지 하는 일에 대해 절대 불평하지 않는다. 그런 단순 작업을 하고 있으면 무념무상의 그 순간이 그렇게 편할 수 없이 여겨지는 것이다.          


감칠맛을 위하여

멸치는 ‘다시’ 국물을 내기 위해 사용한다. 일본말로 ‘다시(だし:出し)’란 말은 식품 속에 들어있는 성분을 끌어낸다는 뜻이다. 무엇을 끌어내느냐고 하면 ‘맛있는 맛’ 성분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 ‘맛있는 맛’ 성분을 우리는 ‘감칠맛’이라고 하고 국제적 용어로는 ‘우마미(うまみ:旨味)’라는 일본어를 채용한다. 

감칠맛에 대한 용어에 왜 이렇게 일본어들이 주류로 자리 잡았느냐고 하면 이 맛에 관한 연구자들이 주로 일본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입에 착 달라붙는 맛 있는 맛'이란 의미로 ‘감칠맛’이란 용어가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왔고 중국에서도, 로마에서도 과거부터 감칠맛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그 정체를 과학적으로 규명하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일본 도쿄대학의 이케다 기쿠나에 교수가 이 감칠맛의 실체를 처음 밝혔다. 그가 1907년, 다시마 열수 추출물에서 ‘글루탐산(glutamic acid)’이라는 맛 성분이 나온다는 것을 알아내고 이 맛을 ‘우마미umami’로 이름 붙였다. 그런데 다시마에서 추출한 글루탐산이 물에 잘 녹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한 이케다 교수는 글루탐산을 물에 잘 녹게 하려고 소듐(Na)을 붙인 MSG(mono sodium glutamate)를 개발하였다. 이것이 MSG계 조미료가 되면서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MSG를 발견한 이케다 교수(왼쪽)과 이를 상품화한 아지노모토 회사의 사브로스케 스즈끼(오른쪽) 사진출처: 아지노모토 회사


이케다 교수를 이어서 1913년, 고다마 신타로 교수가 가쓰오부시에서 또 다른 감칠맛 물질을 발견하고 이 물질이 바로 이노신산(inosinic acid, IMP)임을 밝혔고, 1957년, 쿠니나카 아키라가 표고버섯에서 감칠맛 성분을 분리하고 이것이 구아닐산(guanylic acid GMP)임을 밝혔다. IMP나 GMP는 모두 핵산의 대사 물질들로서 여기에서 유래한 맛성분을 핵산계 조미료라고 부른다.    

  

이때까지 우리 혀로 느낄 수 있는 기본적인 맛 성분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의 네 가지 맛 성분(四原味)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가 어떤 맛을 느끼게 되는 것은 입이나 내장기관에 존재하는 미뢰(味蕾)라는 세포 때문이다. 이 미뢰에는 미뢰신경이 연결되어 있어 미뢰에 닿는 맛 성분을 구분하고 인식하게 된다. 우리가 네 가지 기본 맛을 감지한다는 것은 미뢰에 맛을 느끼는 네 가지 수용체(리셉터receptor)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2002년, 미국 마이애미대학교 연구자들이 혀에서 감칠맛 성분을 감지하는 수용체(리셉터)의 존재를 규명하였다. 이 수용체가 반응하는 것은 글루탐산, 이노신산, 구아닐산의 세 가지였다. 사람이 감지하는 기본적인 맛이 사원미(四原味)에서 오원미(五原味)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멸치 속에는 가쓰오부시에서처럼 이노신산의 함량이 풍부하다. 그런데 MSG계 조미료에 핵산계 조미료를 섞어주면 맛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더욱 좋은 맛을 내게 된다. 이런 연유로 살림 좀 한다는 가정주부들이 요리 밑 다시 국물을 낼 때 다시마, 멸치, 마른 표고버섯 등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멸치 한 상자를 사 온 이유이기도 하다.           


미뢰(맛봉오리)의 구조



멸치똥을 까며

위에서 멸치로 다시를 만드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멸치의 우마미는 멸치의 몸에서 우러나온 이노신산의 맛이다. 혹자는 멸치똥에도 건강 물질이 많이 함유되어 있으므로 육수를 우려낼 때 굳이 똥을 빼지 말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멸치똥을 그대로 이용하면 쓴맛과 떫은맛이 나서 상쾌한 감칠맛을 방해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굳이 멸치똥을 뺀다. 

멸치 내부에서 들어내는 까만 부분은 실은 똥이 아니고 멸치의 내장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멸치내장은 그냥 ‘멸치똥’이라고 표현해야 제격이다. 멸치똥을 까는 행위를 ‘멸치 내장을 들어낸다’고 고상하게 표현하면 어쩐지 어색하게 들리고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굳어진 언어 관습이라는 것이 참 괴이하기도 하다. 


우선 이렇게 구도를 잡는다. 식탁 위에 멸치 상자를 놓고 그 앞에 두 개의 비닐 봉지를 펼쳐놓는다. 하나(A)에는 멸치 대가리와 똥이 든 부분을 넣고 다른 봉지(B)에는 다듬어진 멸치를 넣는다. 장시간의 작업을 위해 그 왼쪽에는 커피 한잔도 함께 준비한다. 처음에는 다듬어진 멸치를 놓는 봉지(B)를 왼편에 두고 대가리와 똥이 든 봉지(A)를 오른편에 두고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작업 도중 심심찮게 에러가 생겼다. B에 들어가야 할 것이 A로 들어가고 A에 들어가야 할 것이 B로 들어갔다. 어떤 때에는 멸치를 커피 컵에 빠뜨릴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행동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이 쓴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는 책 내용이 떠올랐다. 우리 인간이 어떤 사물을 판단하고 선택하는 데에는 두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시스템 1은 빠르게 주변 세계를 감지하고 사물을 인식하는 즉흥적 능력을 말한다면 시스템 2는 주의 집중과 기억을 조정해 시스템 1의 즉흥적인 충동과 연상작용을 억제하는 기능을 가진다고 한다. 

멸치의 버리는 부분과 먹을 부분이 살풋 섞이기로서니 치명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시스템 1만 작동시켜 손이 가는대로 버려둬도 된다. 약간 귀찮기는 하지만 잘못을 인지하는 순간 교정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데도 나의 시스템 2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시스템 2는 무엇 때문에 오류가 일어나는지 주의를 집중시켜 작업노선을 분석하고 행동을 수정할 것을 지시한다. 

그래서 작업 노선상에 개선할 부분이 있을까 하고 A, B의 비닐의 위치를 바꾸어 보았다. 오른손에 멸치를 잡고 왼손으로 대가리와 똥을 빼낸 뒤, 버리는 부분을 왼쪽에 넣고 다듬은 부분을 오른편에 넣었다. 그렇게 하자 실패할 확률이 훨씬 줄었다. 멸치를 커피 컵에 빠뜨릴 확률은 확연히 줄었다. 작업이 끝나고 보니 1.5kg의 멸치에서 약 1kg의 다듬어진 몸이 얻어졌다. 수율 60% 정도이다. 이는 생선의 평균 가식부율 62%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값이다.           



멸치똥을 까며 하는 치매 걱정 

다듬어진 멸치가 버리는 봉지로 몇 개씩 잘못 들어갈 때, 뭐가 잘못된 것일까 하는 걱정이 일었다. 그 걱정은 사실 시장 볼 때, 실수를 거듭하면서 생긴 미혹의 연속이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락 시장은 진창의 흙바닥에서 비린내가 훅하고 올라왔고 사람도 별로 없어 을씨년스러웠다. 가락시장에는 설을 위하여 제수용 생선을 사러 나온 늙은 부부 몇 쌍, 다리를 절뚝거리며 홀로 장보러 나온 할머니들, 얼굴에서 표정을 잃은 할아버지들 등 대부분이 늙수그레한 노인들이 덤성덤성 보였다. 노인 부부가 생선을 사는 모습은 그래도 약간 정다웠지만 남자 노인 혼자 생선가게를 기웃거리는 풍경은 뭔가 구슬픈 느낌을 주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걸까? 아니면 아파 누웠길래 대신 장을 보러 나선 걸까? 하며 속으로 온갖 상상을 해보았다. 가락시장의 구시장에는 무언가 쇠락한 구슬픔이 있다. 젊은 멋쟁이들은 모두 빛나는 마트나 백화점으로 몰려가지 질퍽거리는 가락시장에 오지는 않는 것 같다. 

나도 다리를 절룩거리며 장을 보았다. 나이가 드니 고질병이 하나둘 생기는 것인지 오른쪽 장단지 쪽에서 시작된 통증이 좀처럼 낫지 않는다. 그렇게 절뚝대며 몇 군데 가게를 들러 생선도 사고 과일, 채소도 샀다. 그리고 몰 쪽으로 옮겨가 이 멸치도 한 상자 샀다. 

그런데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 것은 어느 가게에서도 올바른 장보기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거스름돈을 받지 않고 돌아서거나 산 물건을 그대로 두고 오다가 가게 주인의 호출을 몇 번씩이나 받았다. 멸치 똥을 빼면서도 A, B의 위치가 자꾸 헷갈려 무언가 나의 뇌 속이 흐려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심각하게 떠올랐다. 


얼마 전 뇌 MRI를 찍고 치매 검사를 받았다는 친구 생각이 났다. 그 친구는 슈퍼마켓에 갈 때는 차를 가지고 갔는데, 돌아올 때는 걸어서 귀가했다고 했다. 그리고는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어느 날 아파트의 주차장에 갔다가 아무리 찾아도 자기 차가 안보여 도난 신고를 하고 경찰을 부르며 난리를 떨었다고 했다. 그러다 견인보관소에서 차를 찾았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하여 친구들을 웃게 만들었다. 웃다가 우리들의 얼굴이 어두워진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우리 나이의 친구들이 모이면 그런 류의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번에는 내가 뇌 MRI 검사를 해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염려가 일었다.            



멸치와 DHA 그리고 IQ

멸치를 다듬으며 한 번씩은 멸치를 입에 넣고 맛을 음미했다. 멸치를 씹자 입안에서 퍼지는 우마미를 감지할 수 있었다. 핵산성분 이외에도 멸치에는 DHA와 EPA라는 고도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함유되어있다. 내가 멸치를 다듬으며 내게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를 치매를 걱정하지만 사실 멸치 속에 함유된 DHA는 대표적인 두뇌활성물질이다. 물론 멸치 속에만 함유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참치, 고등어, 청어, 정어리 같은 등푸른 생선에 많이 들어 있다.  

두뇌활성물질이라는 것은 두뇌를 좋게 한다는 말이다. 두뇌활성과 관련하여 DHA가 주목을 받은 것은 1989년, 영국의 마이클 클로포드(Michael Crawford) 교수가 쓴 <더 드라이빙 포스 the driving force>라는 책에서 비롯됐다. 클로포드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일본 어린이의 지능지수가 높은 것은 생선을 많이 먹어 두뇌에 DHA가 많기 때문이라는 학설을 세계 처음으로 내놓았다. 이 주장을 기화로 DHA와 IQ와의 관련성, DHA의 치매방지효과 등이 엄청나게 연구되기 시작했고 DHA를 첨가한 식품들이 줄줄이 시장에 출시되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DHA와 EPA가 들어있는 식품이 건강에 좋고 심장질환 위험과 다른 증상을 줄여 주는 데 효과적이라고 인정하면서 2004년, DHA와 EPA가 함유된 식품포장지에 건강에 좋다는 문구를 쓸 수 있도록 승인했다.


그런데 일본인들의 IQ가 세계에서 가장 높을까? 일본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생선을 많이 먹을까? 그렇지 않다. 스위스 쮜리히 대학에서는 세계인의 I.Q를 보고하고 있는데 해마다 싱가포르를 위시하여 한국, 일본, 중국 등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세계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2021년도 리포트에서도 1위가 한국이고 일본이 2위이며 대만 3위, 싱가포르 4위, 독일 5위, 네덜란드 6위, 오스트리아 7위, 이태리 8위 등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면 생선소비량은 어떨까? 우리나라의 연간 수산물 소비량은 58.4kg으로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위 노르웨이가 53.3kg, 3위 일본이 50.2kg으로 뒤를 잇고 있다. 4위인 중국은 39.5kg으로서 우리보다 한참 뒤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해산물을 먹고 있다는 리포트도 흥미롭다. 우리는 낙지, 쭈꾸미같은 연체류뿐만 아니라 속이라는 독특하게 생긴 조게, 게불처럼 지렁이 닮은 것도 먹는다. 해초류들은 또 어떠한가! 우리나라 국민의 해산물 섭취 욕심은 열거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세계의 IQ 연구자들은 동북아시아의 아이큐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이유를 다양하게 분석하고 있다. 물론 생선을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 분석하지는 않는다. 높은 인구밀도, 높은 경쟁률, 높은 학구열 등등이 나열되고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높은 경쟁률 쪽에 한표를 던진다. 

세계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민족으로 유대인을 꼽아왔다. 그런데 유대인들도 사는 환경에 따라 IQ의 차이가 많이 나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의 평균 IQ는 94로서 한국의 106보다 크게 낮다. 이것은 비교적 편하게 살았던 세라피딤 유대인(스페인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구소련과 동구지방(독일포함)에서 혹독한 핍박을 받았던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지능이 우리나라보다 높은 113~115였다. 이것을 전적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머리가 좋아졌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는 없지만 아이큐가 높다는 것과 행복한 환경과는 관련이 없다는 증거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왜 동북아시아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최고가 아닌지 이해가 되기도 한다.      


IQ가 높다는 것은 유리한 점이 엄청 많다. 이 높은 IQ를 이용하여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국가로 가꾸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와 함께 행복지수도 함께 높아졌으면 좋겠다. 

멸치똥을 까며 여러 문제로 생각의 지평이 확대되고 있으니 아직은 치매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또 모르니 어서 좋은 치매치료제가 개발되어 치매 걱정 없이 사는 날이 왔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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