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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Feb 25. 2023

“미안했네”의 그 한마디

  

진통제로 간신히 고통을 이기며 버티고 있던 말기암 환자 한 분이 계셨다. 그날도 노인의 병상을 들렀던 신부님은 그에게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음을 직감하게 되었다. 노인의 얼굴이 유난히 맑고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깜짝 놀란 신부님은 노인에게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하고 물어보았다. 노인은 고요히 “나 어젯밤 전처에게 전화했어. 그리고 ‘미안했네’라고 말했어”라고 하셨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병원 사목을 하셨던 신부님께서 병원에서 만났던 가장 인상 깊은 환자 한 분에 대해 하신 말씀이었다. 미사 강론 중에 그 이야기를 하셨는데, 나도 몰래 눈물이 주르르 흘러 마스크 가로 번져나갔다. 마스크를 하고 난 후로는 눈물이 흐르면 은근슬쩍 훔치기가 어려워 여간 고약한 것이 아니다. 마스크를 빼고 눈물을 훔치며 왜 이 이야기가 이렇게 감동이 될까 미사 내내 생각해 보았다.    

  

미사 때 맨 앞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내내 흐느끼던 어떤 노인 생각이 났다. 뒷자리에 앉아 노인의 초라한 어깨가 흔들리던 모습을 훔쳐보면서 내 가슴도 먹먹했던 날의 기억이 되살아 난 것이었다.   

   

노인의 눈물은 젊은이들의 눈물과 격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의 눈물은 슬픔의 눈물도 있지만 기쁨의 눈물도 있고 격정의 눈물도 있으며 분해서 흘리는 눈물도 있다. 그러나 노인의 눈물은 참회와 아픔의 눈물뿐이라고 생각된다. 인생의 막바지에서 흘리는 눈물은 후회의 눈물, 참회의 눈물 외에 무엇이 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녹나무의 파수꾼>이라는 소설에 한 알코올 중독자가 말년에 흘리는 참회의 눈물이 그려져 있다. 이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피아노 연주 실력을 가지고 있어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자랐다. 특히 그 어머니의 기대와 지원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유명 음대에 진학한 후부터 이 청년의 행동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피아노를 버리고 작곡을 한다더니 결국 가족들 몰래 대학을 그만두었다. 어느 날은 공원에서 팬터마임을 하기도 하고 노숙자처럼 지내기도 하다가 결국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요양원에서 죽게 된다.  그동안 아들은 어머니의 절대적인 지지가 자신에게 엄청난 부담이 되었고, 그것 때문에 방황하게 되었다고 어머니를 원망하며 살았다. 그러나 마침내 죽음 앞에 선 이 사람은 어머니의 사랑을 절감하면서 어머니를 원망하며 재능을 썩히며 살았던 자신의 어리석은 인생을 후회하게 된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남기는 마지막 참회의 음악을 녹나무에 남기고 그 음악을 들은 어머니는 가슴을 부여잡고 아들의 이름을 애달프게 외쳐 부른다. 

이렇게 참회는 가슴 아프면서 감동을 준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여 결혼한다. 부부와 아이들이 만드는 가족이라는 단위는 사회를 이루는 최소 단위이기도 하면서 그 단위는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서로에게 가장 상처를 입히는 관계가 또한 가족이기도 하다. 카인과 아벨을 생각해 보라.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은 형이 동생을 시기하여 돌로 쳐 죽이는 사건이다. 가장 사랑하는 관계여야 할 가족이 가장 많이 미워하고 원망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은 인생의 아이러니이다. 


여기에서 <안나 카레리나>의 유명한 첫 구절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행복한 가정은 저마다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사정으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조건이 필요하며, 그중에 하나만 어긋나도 불행한 가정이 되어버린다. 어디 가정만 그렇겠는가. 우리가 사는 삶은 수많은 조건과의 조우이다. 아슬아슬하게 외나무 타기를 하며 만나는 악조건하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참으로 균형을 잡기가 어렵다. 어려운 조건을 만났을 때 피해 갈 수 있는 편도 2차선의 길을 달린다면 행운의 사람이다. 편도 1차선 만의 길이라고 하더라도 위급 시에 옆으로 피해 설 수 있는 약간의 공간이라도 있다면 천만다행한 인생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인생을 운 7, 기(노력) 3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운이 좋은 삶을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 빚을 졌던 사람들에게 “미안했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끝내 그 말 한마디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은 불행하다.      


남편 때문에 무척 고생하던 친구가 있었다. 우울증 치료를 받던 그 친구가 가끔 내게 전화를 걸어 남편에 대해 횡설수설하며 불만을 쏟아내면 젊은 시절의 나는 그 친구가 걱정스럽기도 하였지만 짜증스럽기도 하였다. 어떤 때는 폭력적인 남편을 피해 우리 집으로 피신을 오기도 하여 그 남편이 우리 집으로 찾아올까 하여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 

친구 남편은 인격적으로도 문제가 있어 보였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인 듯 보였다. 돈을 벌려고 잠을 자지 않고 주식투기를 하고, 돈을 벌면 아파트를 사들이고, 건물을 사들이며 끊임없이 목표를 높이며 앞으로만 나아갔다. 자식들과 어디를 놀러 간 적도 없었고 가족을 위해 붕어빵 한 봉지 사가지고 들어온 적이 없었으며 외식이란 꿈도 꿀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말을 뱉었다 하면 가족에게 비수를 꽂는 험악한 말뿐이었다. 

그러던 그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다. 인생의 목표였던 돈은 약간 모았지만, 그 돈을 자신을 위해 한 푼도 써보지 못했다. 남겨진 가족들은 아버지의 돈을 물려받았지만,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할 기회는 영구히 잃어버렸다. 그 남자가 죽기 전 가족에게 “미안했네”의 한마디만 남기고 죽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인생은 그때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또한 “미안했네”의 그 한마디는 그냥 나오지 않는 법이다. 통렬한 참회가 앞서야만 위력을 가지는 것이다.      


80대의 말기암 환자가 이혼한 전처에게 ‘미안했네’의 그 한마디를 하기까지의 굴곡진 그 인생을 내가 어찌 감히 예단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한마디를 숙제처럼 가슴에 품고 있다가 마침내 고백하면서 마음의 짐을 던 그 노인을 생각하자 내 마음이 다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며 왜 눈물이 흘렀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마치 내가 남편으로부터 ‘미안했네’의 그 한마디를 들은 것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뭔가 모를 불만이 차올라 남편과 감정이 고조되어 있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한 노인의 고백이 내 마음을 정화시켰다. 

미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소파에 누워 있는 남편에게도 정다운 눈길을 주었다. 인생은 짧고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길지 않다. 미안하면  ‘미안했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한마디를 들으려고 집착하지 말고 서로 미안한 일을 적게 만들며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나은 삶이 아닌가 하는 기특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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