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부르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고양이를 입양하기 전, 나는 오랫동안 이름을 고민했다.
새로운 집에서 오래도록 호화롭고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명품 브랜드 이름을 붙여볼까도 했다.
또, 회색빛 털을 가진 모습이 밤과 잘 어울려서 ‘루나(Luna)’라는 이름을 떠올리기도 했다.
달빛처럼 은은하고, 밤을 닮은 이름. 하지만 내 품에 안기게 될 아이는 수컷 러시안블루였다.
루나는 어쩐지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다.
이름을 고르는 건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선언 같았고, 나와 고양이의 첫 약속 같았다.
그래서 쉽게 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한 작품이 떠올랐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고양이의 보은〉. 그곳에 등장하는 고양이 왕자가 있었다.
나는 곧장 검색을 해보았다. 러시안블루 왕자의 이름은 ‘룬’
그 순간, 마음속에서 종이 울린 듯 했다.
“그래, 바로 이거다.”
룬.
만화 속 고양이 왕자처럼, 이 아이도 새로운 가정에서 왕자처럼
존중받고, 잘 먹고,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원래 이 아이의 이름은 ‘두리안’이었다.
그러나 내게 입양되는 순간부터,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룬’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서막이었다.
게다가 이 아이는 조금 특별했다.
다른 러시안블루와 달리 성묘인데도 눈동자가 여전히 푸른빛을 띠고 있었고
회색 털 사이에는 은근히 아이보리 빛깔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런 차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다르면 어떠한가. 내 곁에 있는 순간부터, 내 새끼면 다 예쁜 법이지.
나는 그렇게 룬을 불렀다.
부르는 순간, 우리의 이야기가 비로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