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리지 마, 너도 똑같이 된다.

똑같이 되고 싶은 삶

by 아카씽

아주 어릴 적부터 빠짐없이 2주마다 현과 목욕탕에 갔다. 우리 둘은 뜨듯한 물에 몸을 지지고 개운하게 씻는 반복의 일과를 사랑했다. 들어가자마자 카운터에 보이는 구운 계란을 사서 소금 찍어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게눈 감추듯 다 먹고 나면 시원한 얼음으로 가득 찬 대용량 커피를 산다. 휘리릭 가벼워 진채 체중계에 몸을 실어 그간의 변화를 확인한 뒤 희뿌연 목욕탕의 문을 연다. 세찬 샤워기의 물줄기 속에 한 주의 피로를 씻어버리고 부글거리는 탕 속으로 들어간다. 뜨거움과 따뜻함 사이의 묘하게 알맞은 온도에 몸을 담근다. 그렇게 이완된 몸으로 탕에서 나와 나란히 앉아 서로의 묵은 시간들을 밀어주고 또 알아봐 준다. 몸과 마음을 정돈하는 모든 시간 속에 우리만의 추억이 깃들어 있다.


"크흐흐 엄마, 엄마 배꼽 볼 때마다 너무 웃겨. 귀여워"

그날도 나는 짓궂게 현을 놀렸다.


축 늘어진 그녀의 뱃살 사이로 숨을락 말락 얼굴을 빼꼼 내민 둥그런 배꼽. 정말 볼 때마다 귀여워서 웃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자랑스런 내 배꼽을 보라. 잔 근육 있는 탄탄하고 잘록한 배에 길쭉하게 자리 잡은 배꼽이다. 어디 내놔도 부럽지 않다. 내 배꼽과 비교하니 현의 배꼽이 더 도드라진다. 한참을 현의 배꼽을 보며 서로 깔깔깔 웃고 또 웃는다.


그러다 현이 웃음끼를 머금은 채 눈을 살짝 흘기며 말한다.

"너~ 놀리지 마, 놀리면 너도 똑같이 된다?!"

"치~ 난 안 그럴 건데~~~ 히히히"

얼른 부정하며 물컹한 현의 배를 툭 치고 도망간다.

여느 평범한 모녀처럼 서로의 몸을 보며 흘러가는 날들이었다.





어느덧 현처럼 난 아이 둘을 낳은 엄마가 되었다. 두 번을 풍선처럼 부풀었던 배는 20대의 탄력을 잃었다. 육지에 내려앉은 힘없는 해파리만큼은 아니지만, 살짝 퍼진 찹쌀떡 정도의 찰기랄까. 추루욱 까지는 아니어도 추룩 늘어졌다. 추룩은 내 자존심이다. 더 슬픈 건 내 자랑스러웠던 배꼽의 변신이다. 분명 마치 놀란 사람 입처럼 발랄한 '오!' 모양이었던 내 배꼽.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이제는 세상 우울하게 힘을 잃은 '우'가 되어버렸다. 놀리지 말라던, 놀리면 똑같이 된다던 현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놀려서 벌 받았나 싶다.



"엄마, 나 엄마 놀려서 진짜 엄마처럼 됐어. 내 배 봐봐"

배를 내밀며 현에게 슬프고도 웃긴 하소연을 한다.

"거봐~ 놀리지 말랬지?"

옅게 웃으며 생각이 많아 보이는 현이다.

"그래도 뭐~ 나보단 낫구만? 운동하고 관리 잘해~ 엄마처럼 살지 말고~"

운동까지는 알겠는데 엄마처럼 살지 말라니. 그렇게까지 말할 일인가. 나를 키워낸 현의 삶이 빠르게 스쳐가서 괜히 울컥했다.


이제 두 자식의 엄마로서 우리는 함께 있다. 웃기고도 귀여운 모녀의 배는 사실 부끄럽기보다 자랑스러운 것이다. 무려 두 생명을 품었던 배이니 말이다. 그 동질감으로 현에게 어깨동무해 본다. 어쩐지 안아주고 싶은 어깨다. 조용히 현의 어깨를 어루만진다. 그러면서 다짐한다. 현에게 30년은 뒤처졌지만 차근차근 정직하게 그녀의 삶을 닮아가겠다고 말이다. 현의 배를 생각하며 이전과 다른 의미로 웃음 짓는다.


나를 키워낸 현이 사랑스럽고 또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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