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40년 우유 인생

by 아카씽

"딸! 우유 가져갈 거지?"

"아휴~ 아빠! 두말하면 잔소리죠!"


친정에 가면 늘 우유 보따리를 가져온다. 문의 차 트렁크에는 커다란 아이스 박스가 늘 시원하게 가동되고 있다. 아이스 박스를 열면 우유가 한가득이다. 문은 시원한 우유를 커다란 봉지에 옮겨 담는다. 그만해도 된다는 딸의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우유 담기를 멈춘다. 두둑한 우유 보따리를 들고 여유 있게 딸네 차 트렁크에 싣는 모습이 뿌듯하다. 딸네 식구가 맛있게 우유를 마시는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번진다.


우유는 문의 40년 밥줄이다. 그는 날마다 갖가지 우유의 좋은 효능을 외우고 또 말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독한 더위와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그의 손엔 늘 우유가 들려있다. 그는 우유 영업으로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


문은 내가 어린 시절 작은 우유 대리점을 차렸다. 그는 어릴 적부터 가난함이 단련시켜 준 부지런함으로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열심히라는 말이 무색하게 어려워진 생계에 대리점을 접고 우유 영업을 시작했다. 성실이 몸에 배었고 말 기술에 탁월했던 그는 영업을 꽤 잘했다. 이것이 천직이라 생각하며 매일을 걷고 또 뛰었다. 샛길로 새지 않는 그의 바지런함 덕분에 우리 가족은 건강히 먹고 마셨다.


가끔 아파트 안에 우유 영업을 하는 분들을 본다. 그러면 어김없이 문이 생각난다. 고개 돌리고 사양하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잃지 않고 인사하는 영업인. 그곳에서 문의 얼굴을 본다. 괜히 마음이 울컥하다. 아마도 그는 40년 세월 동안 상냥한 모습보다는 거절과 싸늘함을 더 많이 마주 했겠지. 그럼에도 억지로라도 웃어야 했겠지.


"요샌 몸도 힘들지만, 젊은 엄마들 대하는 게 제일 힘들어. 워낙에 인터넷에 정보도 많고... 낯선 사람 말 잘 안 듣지"

마흔을 앞둔 딸에게 문득, 문이 말했다.


덥고 추운 계절의 변화에 몸의 힘듦은 얘기했어도 마음의 힘듦을 얘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던 그였다. 정년이 있는 회사원과는 달리, 체력과 건강만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라 감사하다고 늘 자부심을 가지는 그였기에 그 말은 더 쓰디쓰게 들렸다. 내가 부모가 되어서일까? 오랫동안 짊어진 가장이라는 무게를 감히 체감해 보니 왠지 마음이 더 아렸다.





집에 돌아와 문이 바리바리 싸준 우유보따리를 풀어 냉장고를 가득 채운다. 뿌듯한 문의 얼굴이 그려진다. 나를, 가족을 일궈낸 그의 우유 인생이 존경스럽다. 나도 문의 인생 반 만이라도 따라갈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온 가족을 우유로 끌어안는 그의 사랑에 감사하며 문의 얼굴을 그린다.



"할아버지 우유 줄까?"

아이들에게 우유를 건넨다.

"웅! 할아버지 우유가 제일 맛있어!"

사랑을 맛으로 표현하는 아이들이 고맙고 기특하다. 40년 우유 인생을 자식 그리고 자식의 자식으로 돌려받는 문이다. 그런 그는 아마도 자기의 인생이 최고라고 할 것이다. 그의 최고의 인생에 감사를 표하며 우유로 축배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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