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지켜준 밤 골목

by 아카씽

갓 자전거를 배운 찰랑이는 저녁을 먹고 나면 꼭 나가자고 한다. 초저녁 바람이 부는 시원한 시간은 자전거 타기에 제격이다. 못 이기는 척 나가면 해 진 저녁이어도 아파트 단지는 곳곳이 환하다. 안전한 빛줄기 사이로 아이와 달리는 아파트의 넓은 길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다. 그 길을 신나게 달리다 보면 떠올리는 한 기억의 길에 멈춰 선다.




캄캄해진 시간. 학원 계단을 쪼르르 내려간다.

"딸! 타!"

자전거를 탄 문이 기다리고 있다. 중고로 커다란 자전거를 어찌어찌 구했다는 문은 언제부턴가 학원 끝난 딸을 자전거로 데리러 온다. 연식이 되어 보이는 자전거는 녹이 제법 슬어있고 소리도 덜거덕 거리는 게 볼품없이 불안하다. 하지만 문의 등만큼은 세상 듬직하고 믿음직스럽다.


학창 시절 우리 가족은 한참을 빌라 숲에 살았다. 빼곡히 줄지어 있는 건물들 사이로 얕고 경사진 길을 걷고 또 걸어야 우리 집이 나왔다. 이 길은 아주 무서웠다. 어둠을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벌레들부터 시작해 길고양이들의 전쟁터이기도 했고 갈 곳 잃은 청소년들이 피우는 담배연기와 욕이 즐비했다. 해가 져서 늦거나 괜히 무서움이 배가 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골목 초입부터 마음을 가다듬는다. 무서움을 조금이라도 적게 느끼기 위해서는 최대한 길을 빠르게 달려 지나가야 했다. 신발끈 동여매고 가방끈을 꽈악 진채 전력질주를 시작한다. 그렇게 두려움들을 애써 무시한 채 내달렸던 그 길. 그 무서움의 끝에 우리 집이 있었다.


그런데, 그 무섭고도 긴 암흑의 골목은 문의 자전거로 인해 한 순간 전환된다.


큰 자전거인만큼 넉넉한 뒷자리. 든든한 문의 등에 의지해 집으로 향한다. 하루의 안부를 서로 물으며 어느새 어둠의 골목에 들어서는 자전거. 경사의 시작이다. 문은 혼자 타기도 살짝 버거운 그 오르막을 끙차 끙차 페달을 굴려 오른다. 자전거의 추진력은 분명 문의 몫이지만 어쩐지 나 또한 끙차 힘주게 된다. 힘주며 땀이 송글 맺히는 골목. 이내 우리는 알 수 없는 웃음이 터진다. 힘내요 아빠! 라며 미안한 응원을 보내는 골목. 무서울 겨를도 없이 어느새 어둠 끝 우리 집에 도착한다. 무서움을 지켜준 그 밤. 문과 자전거가 생각나는 그런 밤이다.




"엄마, 아빠! 우리 아이스크림 사 먹으러 가자"

"그럴까?"

아파트의 밤은 그 골목과 비교할 수 없이 환하고 또 안전하다. 수많은 밤을 지켜준 문과 자전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이제는 내가 지켜 주어야 할 밤을 생각하며 아이의 손을 잡고 가게로 향한다. 나도 문처럼 잘할 수 있겠지? 내가 지켜줄 앞으로의 시간들을 그리며 힘차게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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