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김치 사건
오랜만에 친정에 들렀다.
맛있고 분주한 저녁 식탁 위에 먹음직스러운 열무김치가 놓여있다.
"오~엄마, 열무김치 했어?"
하나 집어 먹어보니 맛은 있으나 현의 손맛이 아니다.
"누가 준거야?"
딸의 질문에 대답은 온데간데없고, 문과 현 사이 묘한 기류가 오가는 것을 감지한다.
"열무김치 어때? 맛있어?"
한참 뒤 적막을 깨고 현이 운을 뗀다.
"뭐 쏘쏘~ 엄마 김치는 아닌 거 같은데?"
이상한 기류에 눈치 백 단인 딸은 적당히 대답해 상황을 판단해보려 한다.
"아니 글쎄, 열무김치 니 아빠가 가져왔는데 뭐 단골집 가게 주인이 줬나 봐~ 근데 무슨 열무김치가 그렇~~게 맛있다고, 계속 난리 또 난리~ 먹을 때마다 계속 맛있다 맛있다 하는데, 그정도냐구? 참내, 열무김치 안 먹어 본 사람도 아니구 안 그래? 어?"
상황판단 완료되었다.
"어후~ 기분 나쁘더라구~ 내가 열무김치 안 해준 것도 아니구~ 자~~~꾸 남의 집 김치 맛있다구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열 번 백번씩! (그녀는 화가 나면 과장이 심하다.) 얘기하니까 뭔가 싶어~ 안 그러냐구?"
파르르 어쩐지 기분이 많이 언짢아 보이는 현이다.
같은 시각, 옆자리 문은 말없이 돌 같은 밥을 씹고 있다. 어쩔 줄 몰라 눈만 끔뻑이는 표정이 생동감 넘친다. 감탄천재인 그의 감탄이 어쩐지 잘못된 쪽으로 흐를 때면 여지없이 이 같은 사달이 나곤 한다. 그런데 난 그저 이 상황이 웃기기만 하다. 문은 오로지 현밖에 모르는 사람이지만 현은 보통 질투의 화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문과 현은 친한 부부들과 동반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잘 다녀왔냐고 묻자 현은 잘 다녀왔다는 말 뒤로 뭔가 또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리고 또 구깃하게 동여맨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아니, 니 아빠가 글쎄, 엄마랑은 있지도 않구 자~~~꾸 저기 다른 사람들이랑 얘기하러 다니느라 바쁘더라구~ 왜 그러는 거야? 사진 찍을 때도 내 옆에 없고, 다른 쪽에서 찍어. 왜 그러는 거야? 참!"
"엥? 아빠가 그럴 리가 있어?"
의아해서 핸드폰의 사진을 검토해 본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딱 한 사진 빼고, 백장도 넘는 사진 속에 문은 언제나 현의 옆에서 다정히 바짝! 붙어있다. 100시간을 붙어있어도 1분 떨어진걸 못 견디는 그녀다. 화가 나면 과장이 심한 그녀가 질투의 화신이 분명하다는 걸 입증한다.
그러고 보니 현의 '열무김치사건'과 비슷한 나의 '참치전 사건'이 생각난다. 신혼 때 우리 집에 아는 부부들을 초대했을 때의 일이다. 같은 동에 사는 한 부부의 아내분이 감사하게도 참치 전을 부쳐서 가져왔다. 이런저런 음식들을 차리고 참치전도 식탁에 자리했는데, 남편이 참치 전 맛있다는 얘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정확히 4번 했다! 나도 참치전 해주는데! 한 번도 아니고 계속 왜 저래? 괜히 남편이 얄미웠다. 그래서 부부들을 보내고 남편에게 한 소리했다.
"자기는 참치전 그렇게 맛있었어? 한 번도 아니고 계속 말하더라? 치!!"
그러면서 살짝 눈을 흘겼다.
"아니, 해온 게 고마우니까 말한 거지~ 자기가 한 참치전이 훨씬 맛있지~~"
의도를 파악한 남편은 곧바로 수습하며 땀을 닦았다. 음식만 다를 뿐 너무 현과 문의 모습 같다. 나도 별수 없는 현의 딸인 것인가. 그때를 떠올리니 질투도 유전인가 싶어 웃음이 났다.
이번 열무김치 사건은 생각보다 그녀의 마음을 많이 긁은 듯했다. 늘 억울해 보이는 문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 질투가 또 밉지는 않고 좋은 가보다. 문은 툴툴대는 현을 와락 끌어안으며 "내가 미안하네~ 화 푸소~" 속없이 너털웃음 짓는다. 나 역시 (현과 비슷한 질투의 화신으로서) 이해는 조금 가면서도 저 정도까지 할 일인가, 엄마가 너무하지 않나라는 말을 튀어나올 뻔했다. 하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 억지로 말을 삼키고 "으휴~ 아빠 왜 그랬어요, 아빠가 너무했네!"라는 말로 현의 편을 든다.
"우리 자기가 해준 게 제~~ 일 맛있지~"
문은 열무김치를 저 멀리 제쳐두고 현이 먹음직스럽게 무친 시금치나물을 맛깔스럽게 씹는다.
"치! 흥!"
그제야 웃음끼를 머금는 현이다.
'어휴~ 큰일 날뻔했네'
문은 사시나무 떨듯한 눈빛으로 내게 말을 건넨다.
'고생했어요 아빠'
웃으며 문에게 두 눈 찡긋 작은 위로를 보낸다.
독한 질투를 쏟아내는 그녀와 안도의 땀을 닦아내는 그. 오싹한 그 현장에서 맛보는 열무김치만큼 톡 쏘고 아삭한 짜릿함은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