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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씽 Apr 19. 2023

엄마표 김밥이 맛있는 이유

김밥 맛의 핵심


"우리 김밥 먹을까?"

"응! 좋아!"

나의 김밥 제안은 한 번도 거절당한 적 없다. 먹을 것이 애매한 날에는 김밥을 싸는데 김밥의 매력이라면 그 어떤 재료든 넣고 말면 된다는 것. 부담도 없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 자주 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 집 냉장고에는 김밥의 기본 재료들이 항상 구비되어 있다. 자주 김밥을 싸다 보니 맛있게 만드는 노하우가 좀 생긴 것 같다.


 김밥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밥이다. 한식의 모든 기초는 밥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제아무리 깊은 맛을 내는 설렁탕과 내공 있는 김치가 있는 맛집이더라도 밥이 맛없으면 내 기준엔 맛집이 아니다. 김밥도 마찬가지다. 속재료가 아무리 맛있어도 밥에 기초가 안 되어 있으면 맛있는 김밥이 되기 어렵다. 밥은 갓 지어 한 김 식힌 후 참기름, 깨, 소금으로 적절히 간을 잘해야 한다. 여기서 참기름! 우리 시어머니는 매번 참기름과 들기름을 짜서 보내 주시는데 기름이 어쩜 색도 곱고 예쁜 것이 맛도 참 진하게 고소하다. 아이들 아침이 애매할 때는 계란에 간장 그리고 요 참기름 한두 방울이면 적어도 우리 아이들에게 최고의 요리가사 된다. 이 참기름과 깨 그리고 소금으로 밥을 맛있게 밑간해야 한다. 밥만 먹어도 오~라는 탄성이 나올 수 있는 맛이어야 한다. 이렇게 밥의 맛만 정돈해도 맛있는 김밥에 절반 이상은 다가간 셈이다.


 밥 다음으로 또 하나의 비법이라면 바로 시금치 계란지단이다. 입맛이 예민한 찰랑이는 시금치와도 영 친해지지 못한다. 그렇지만 김밥엔 꼭 시금치가 들어가야 한다. 맛으로나 영양으로나 색감, 모양으로나 시금치는 필수불가견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시금치를 데치고 잘게 다져 계란에 함께 부쳐내는 것. 조금 손이 더 가긴 해도 부담 없이 아이가 만족하며 먹는다. "오? 엄마 시금치 맛이 하나도 안 나~" 야무지게 냠냠 오물거리는 작은 입과 만족하는 눈망울이 이렇게 사랑스러우니 번거로움이란 생각은 저 멀리로 보내버린다.


 김밥을 맛있게 하는 것 또 하나! 그건 넉넉한 재료다. 어릴 적 소풍 가는 날 새벽부터 엄마가 김밥을 말고 있으면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어느새 엄마 앞에 앉아 있게 됐다. 덜 뜬 눈으로 재료 이것저것 하나씩 맛보는 묘한 재미. 하나씩 먹어도 맛있는데 김밥을 싸면 얼마나 더 맛있을까? 기대하는 마음. 참 맛있는 추억이다. 김밥을 말면 그때 생각에 잔잔하게 웃음이 번지고, 어느새 내 앞엔 그때의 나처럼 두 녀석이 침을 꼴깍 삼키며 손 뻗을 준비를 하고 있다. 하나씩 빼먹어보는 재미, 맛있겠다는 기대감으로 부푼 그 얼굴이 참 귀엽다. 나의 엄마도 이런 마음으로 그토록 재료를 넉넉히 준비했나 보다 싶다.


 하지만 재료가 넉넉하다고 너무 방심하면 안 된다. 끊임없이 뻗어대는 고사리 같은 손은(그것도 둘씩이나!) 적절한 단속이 필요하다. 특히 햄! 가장 위태로운 이 녀석을 잘 지켜내야 한다. 넉넉히는 준비했지만 김밥 맛에 큰 역할을 하는 햄을 두 개씩 넣기 때문이다. 그러고 생각해 보니 내 김밥의 핵심은 햄인 것 같다. 나는 햄을 보통 두 개씩 넣는다. 왠지 햄을 두 개 넣었다는 것만으로 뭔가 마음이 넉넉하고 만족스럽다. 그리고 확신이 든다. 이건 맛이 없을 수가 없지!! 그렇게 확신의 순간이 확 밀려온 순간. 찰랑이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찰랑아~ 엄마 김밥이 맛있는 이유가 뭔지 알아?

그건 바로 햄이 두 개이기 때문이야!" 라며 킥킥 웃었더니,


"아니! 난 엄마 김밥 맛있는 이유 알아!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들어있어서지~"

느낌표 가득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금은 쑥스러운지 배시시 웃는다.


그러더니 사랑스러움에 마침표를 찍듯 첨언하며 돌아선다.

"난 엄마가 햄 하나만 넣어줘도 맛있던데?"


 재미있는 농담식으로 가볍게 던진 말을 이리도 의미있게 받아주다니 머리가 멍 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매번 해준 것들을 '정성과 사랑'이라고 표현해 주는 아이가 참 고마웠다. 나름의 고백이었던 건지 쑥스러울 때 나오는 배시시 웃음을 짓는 얼굴이 사랑스러운 여운으로 남는다. 사실 내 노하우를 그럴싸하게 정리해보려 했지만 딱히 그렇다 할 건 없다. 가족들의 취향을 고려한 엄마표 만의 익숙한 맛. 그 정성과 사랑이 맛있는 김밥 맛의 핵심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엄마표 김밥은 맛있다.


 그렇게 아이의 말에 감동한 뒤 또 말도 안 되게 김밥을 많이 만들었다. 비록 과한 사랑으로 양조절을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남편과 아이들은 맛있게 끝까지 다 먹어주는 사랑을 실천한다. 날이 좋을 때면 김밥을 싸고 나가 우리만의 소풍을 즐기는데 꽃도 피고 따뜻한 바람이 부는 걸 보니 한동안 김밥 싸기에 부지런해질 때가 온 거 같다. 미세먼지 때문에 조금은 기다려야 할 것 같지만 한 마음으로 우리만의 소풍을 기대하는 마음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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