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글씨 대회

도전은 잊었던 초심을 일깨우는 것.

by 아카씽
"엄마, 엄마!
오늘 선생님이 나보고 우리 반에서
글씨 제~~ 일 잘 쓴다고 하셨어!"


동글동글 웃으며 자랑스럽게 오늘을 꺼내 놓는 찰랑이. 아이에게 칭찬의 힘은 어마어마하다. 특히 선생님의 칭찬은 강력한데, 우리 반에서 '제일' 이라고까지 했으니 1학년 아이는 아마도 형용할 수 없는 힘이 샘솟았을 것이다. 그날 이후 찰랑이에게는 '글씨를 잘 쓰는'이라는 형용사가 졸졸 따라붙었다. 잘한다고 하면 더 잘하게 되는 마법에 걸린 그는 글자 쓰는 일에 진심을 다했다.


그런데, 2학년이 되고 그 동기가 조금은 흐리멍덩 해졌는지 한 번씩 글씨를 날려쓰기 시작했다. 글자 쓰는 일이 제법 익숙해진 것이다. 초심을 잃지 말자며 또박또박 써보자 설득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진심에 소홀해졌다.


글씨는 학생에게 기본 중에 기본이고, 학습에 있어서 기초가 되는 것이다. 글씨를 예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알아볼 수 있게 또박또박 써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특히 강조하는 이유는 습관 때문이다. 안 좋은 습관은 너무나 지독해서 한번 들여버리면 고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이걸 증명하는 게 나다. 한때 글씨 쓰기, 노트 정리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나였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면서 나도 모르게 빨리 쓰고, 날려쓰는 안 좋은 습관이 자리 잡은 후 보여주기 부끄러운 글씨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고치려고 또박또박 쓰기를 하는데 끈질기게 따라붙은 나쁜 습관을 떼어버리기 쉽지 않다. 그래서 예쁜 글씨 쓰기 습관을 들이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교보문고에서 글씨 쓰기 대회를 한대"

나름 글씨 쓰기라는 것에 자신감이 있었던 아이라 귀가 쫑긋 했던 모양이다. 듣자마자 이건 기회다 싶었다.

"오 찰랑아, 우리 찰랑이 글씨 잘 쓰는데 한번 나가볼까?"

곧장 군침 도는 미끼를 휘리릭 날렸고,

"웅! 좋아! 나가볼래!"

신나게 덥석 물어 버리는 그였다.


그러면서 나 또한 도전 의식이 생겼다.

"엄마도 한번 나가볼게! 아빠도 물어보고 같이 나가보자! 어때?

"우와 좋아 좋아!"



우리는 (얼떨결에 남편까지) 손글씨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전쟁에 관심이 많은 찰랑이는 좋아하는 전쟁 시를 택했고, 나는 고민할 틈도 없이 애정하는 박완서 작가님의 책을 펼쳤다. 평소 글씨에 자신감 충만한 남편은 얼마 전 읽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한 문구를 택했다. 각자의 취향을 반영한 글씨 쓰기. 진지한 정성을 꾹꾹 눌러쓰는 우리였다.




"와~ 아빠 엄청 잘 쓴다, 우와 엄마 대상 타는 거 아니야?"

"우리 찰랑이 솜씨가 어마어마한데? 이렇게 잘 쓰는 걸!"

간만의 집중으로 몸이 추욱 늘어졌지만 왠지 뿌듯하다. 미리 마셔보는 승리의 기쁨을 꿀꺽꿀꺽 마셔보니 기분이 좋다. 고도의 집중으로 최선을 다해 도전해 보고 즐거움으로 이완되어 보는 이 시간만큼 달콤한 게 있을까. 도전했던 이 값진 시간이 소중한 거지 생각하다가도 입선이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이 슬쩍슬쩍 비집고 나온다. 수상 결과가 어떻든 글씨를 대하는 자세를 되짚어볼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지 하며 들썩이는 마음을 진정시켜 본다.





예선 발표 날이다. 우리 셋은 사이좋게 떨어졌다. 워낙 경쟁자가 많아서 예상은 했지만, 괜히 아쉬웠다.

"찰랑아, 아쉽지? 우리 찰랑이 잘한 거 같은데 엄만 좀 그러네"

"히잉 엄마... 나 진짜 열심히 썼는데...."


왠지 모를 서운함에 말을 잇지 못하던 차에, 찰랑이가 번쩍! 적막을 깼다.

"엄마 다음번에 또 도전하자! 사실 나 글씨를 더 잘 쓸 방법을 터득했거든! 히히"

글씨 잘 쓰는 방법을 터득했다니. 어떤 방법일까?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앙증맞게 비장한 마음이 멋져보였다. 중요한 건 어느새 아이는 글씨에 최선을 다하는 첫 마음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러니 이번 도전 또한 성공이다 싶었다.


뭐든 초심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서투르지만 시작했던 병아리적 마음, 글씨를 처음 배울 때 정성 들여 꾹꾹 눌러쓰는 첫 마음, 결과가 아닌 도전 자체에 의미를 두기로 했던 첫 용기. 초심을 지키는 도전은 언제나 즐겁게 가능하다. 그 첫 마음을 되새기며 또 한 번의 초심을 일깨워줄 도전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앞으로의 모든 도전들에 초심을 지키기로 약속하며.

매거진의 이전글가족 마라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