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민원과 진상 고객, 그 뒤에 남은 것

사람의 얼굴이 가장 또렷해지는 순간

by 아카


일하다 보면 사람의 얼굴을 가장 또렷하게 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


바로 민원이 접수되었을 때다. 업무의 난이도보다, 그 민원을 제기한 사람의 말이 항상 오래 남는다.


본사 업무팀에서 일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민원을 접한다. 그중에서도 금감원 민원은 절차와 무게가 다르다. 금감원은 금융회사를 감독하는 기관이자, 고객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곳이다. 그래서 금감원 민원이 접수되면 사실관계 이전에 먼저 설명하고, 정리해야 할 일들이 생긴다. 회사의 평가와도 연결되기에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회사의 책임이 명확한 경우라면 문제는 단순하다. 신속하게 인정하고 바로잡으면 되니까. 하지만 모든 민원이 그렇게 분명한 건 아니다. 보험업은 약관과 법령 등 여러 조항들의 해석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문장을 두고도 보는 각도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때론 고객 보호라는 방향이, 현실과 조금 어긋나 보일 때도 있다. 그럴 때 실무자들은 제도의 취지와 고객의 감정 사이에서 균형을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제도보다 더 어려운 건 사람이다.


한 번은 이런 민원을 맡은 적이 있다. 이미 서류도, 업무 처리도, 판단도 모두 끝난 사안이었다. 그런데 고객은 이후에도 계속 전화를 걸어왔다. 돌려받을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약관을 설명하고, 지급 기준을 재차 안내해도 대화는 늘 똑같았다.


그럼 내가 손해 본 인생은,
누가 책임지나요?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건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고객에게 그 사실을 그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그날 나는 약관이 아니라, 한 사람의 억울함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민원들이 정말 많다.


화재 사고로 수억 원의 보험금을 수령한 뒤에도 보험료 반환을 요구하는 사람, 이미 판매가 종료된 담보를 지금 추가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사람, 상속 포기한 뒤에도 사망인의 계약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까지.

보험은 살면서 가장 불안한 순간을 대비하는 금융 상품이다. 그래서 사고가 발생하면, 불안은 종종 분노나 다른 감정으로 바뀐다. 어떤 민원은 문제 해결보다 감정 해소가 목적인 경우도 있다. 보험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불만이 함께 쏟아져 나오는 순간들.


이런 상황을 맞이할 때마다. 난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없는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은 다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된다. 누군가를 쉽게 믿지도, 쉽게 의심하지도 않게 되었다. 대신 말을 할 때 온도를 조절하려 애쓴다. 최대한 차분하게, 최대한 단정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모든 과정은 기록으로 남긴다. 기록은 나를 지키는 동시에, 상대를 다시 한번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해 준다.

이른바 '진상 민원' 때문에 일이나 감정이 힘든 건 둘째다. 가장 힘든 부분은,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의 인생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제도를 이용해 분노를 쏟아내고, 누군가는 그 분노를 묵묵히 받아내며 일한다.


보험회사에서 일하며 나는 상품보다 먼저 사람을 보게 되었다. 계약 너머에 있는 개개인의 사정, 근거 법령과 약관 사이에 끼어 있는 감정, 그리고 각자 다른 인생의 무게를.


그래서 요즘은 이런 질문을 자주 하게 된다.


진짜 고객 보호란,
과연 누구를 보호하는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