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닮고 싶지 않았던 얼굴이 있었다.
내가 지금 부서로 온 건 2019년 12월이었다.
영업본부에서 11년 근무 후, 본사 발령을 받았다. 이전 부서에서도 매일같이 연락하던 곳이라, 솔직히 말하면 '적응은 금방 하겠지' 싶었다.
하지만 이 부서는 회사 안에서도 잔업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게다가 한 번 들어오면 쉽게 나가기 힘들다는 말이 늘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지원했다. 같은 일을 오래 붙잡고 있는 나 자신이 조금씩 굳어가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잘해도 본전인 자리, 결국 빠져나오지 못하는 역. 그 고리를 끊고 싶었다.
다행히 내 마음을 알고 계셨던 부서장님은 흔쾌히 나를 보내주셨다.
FA 선수 하나 보낸 셈이니, 술 사야지.
그 말 덕분에 전임 부서장님과 현 부서장님, 그리고 나, 셋이 술자리에 앉았다. 묘한 자리였다. 괜히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거액의 몸값을 받고 팀을 옮긴 야구 선수도 이런 마음일까 싶었다.
이 부서의 업무는 이전 부서의 연장선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그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알았다. 전국 현장에서 쏟아지는 전화와 메신저. 하루 평균 백 통이 넘는 연락을 받으며 동시에 내 업무도 해내야 했다. 그제야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본사 사람들은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현장에서 혀를 차며 말하던 내 모습. 사람은 직접 해봐야 안다는 말을, 그때서야 실감했다.
조금 적응할 즈음, 실손 의료비 제도가 전면 개편됐다. 현장은 이미 포화 상태였고, 낮에는 응대만 하다 하루가 끝났다. 내 일은 늘 퇴근 이후에 시작됐다. 솔직히 말해 하루하루가 너무 버거웠다.
하지만 그때, 현장에서는 이런 말들이 들려왔다.
과장님, 진짜 감사합니다.
날개 없는 천사예요.
이전엔 본사에 물어보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숨 좀 쉬겠어요.
사내 익명 게시판에 내 이름이 올라갔고, 댓글이 백 개 가까이 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현장과 통화 중이었는데 갑자기 휴대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OOO입니다.
누구시라고요?
OO손해보험 OOO입니다.
?????
아!! 사장님!!
통화 중이라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는데, 게시판을 보고 사장님께서 직접 전화를 주셨다. 뒤 이어 본사 친절도를 다룬 CEO 보고 자료에도 내 이름이 실렸다. 자료를 만들던 분이, 자료에 이렇게 실명이 들어간 건 처음이라며 신기해했다.
그 뒤로 현장에서는 나를 '매니저들의 아이돌'이라 불렀다. 전국에서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게 됐다. 잘생겨서 붙은 별명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건 아니었다.
나는 특별한 일을 한 게 아니었다. 다만 예전에 현장에서 일하던 내가 가장 답답해했던 본사의 얼굴을, 닮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다. 전화를 미루지 않고, 질문을 귀찮아하지 않고, 모른다는 말을 쉽게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 덕분에 문의는 더 늘었고, 나 역시 힘든 순간도 많았다. 부서 동료들로부터 "천사짓 좀 그만하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래도 현장에서 건네던 따뜻한 말 한마디 한마디는 큰 힘이 됐다.
지금은 업무가 바뀌어 현장의 전화도, 그 별명도 멀어졌다. 그래서 가끔은 서운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울리던 전화가 사라진 자리엔 묘한 정적이 남았다.
동시에 그 시절이 얼마나 고단했는지도 함께 떠오른다. 몸은 힘들었고, 마음도 언제나 긴장 상태였다. 그래도 그 시간만큼은 분명히 내가 '필요한 사람'으로 쓰이고 있었다는 감각이 있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아이돌이 된 이유는 단순했다. 잘 보이려고 애쓴 적은 없었다. 다만 사람을 대하는 방식만큼은 쉽게 놓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성과보다 태도로 기억되고 싶었던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