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 」
2025. 10. 15
수요일 오후, 독서 모임이 있는 날이다. 책방 문을 열고 공간을 정리하는데 메시지가 왔다.
"나은님 넘 오랜만이죠? 저 오늘부터 독서모임 다시 나가고싶은데,, 컨디션땜에 상황 보느라 결정이 늦어져서 혹시 지금이라도 신청 가능한가요?"
"그럼요! 환영이죠 ㅎㅎㅎ"
반가운 연락에 훌쩍이던 콧물도, 막힌 코로 멍하던 머리도 맑아졌다. 기쁘게 공간을 정리하며 책 친구가 오기 전까지 유튜브에 올라갈 영상 편집을 했다. 임신 후 초기에 잠시 책모임을 쉬다가 안정기를 맞아 바로 아쳅토 책방으로 오신 책 친구. 두 달 정도만에 다시 찾아주셨다. 오자마자 그간의 안부를 서로 묻고, 자리를 잡은 친구쉬는 동안에 얼마나 이 공간이 그리웠는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집에 있으면 편히 책 마음껏 읽을 줄 알았더니 아니더라구요..
역시 읽는 공간에 가서 읽어야겠다 생각이 들어서 안정기까지 계속 기다렸어요.
이제 읽으러 올 수 있게 되어서 너무 좋아요."
간만에 만나도 여전히 편안하고 반가운 사람. 그리고 공간이 되고 싶은데, 이 공간을 그리워해주고 찾아주는 이들에게 숨 쉴 곳으로 그려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모임 시작 한참 전에 일찌감치 공간을 찾아주신 책 친구에게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 물었다.
"오늘은 어떤 책을 보시겠어요?"
"아 저,, 소설을 읽고 싶은데,, 그런데 너무 무겁지 않은,, 그러니까 한강 작가님 소설 스타일은 오늘 아니구요. 집에서 육아나 가정 경제를 위한 책만 열심히 읽었더니 무용하게 읽을 수 있는 책좀 보고 싶어요."
"아, 그렇단 말씀이시죠? 알았어요. 제가 한 권 추천해봐드릴게요."
그렇게 고민하다 한 권의 책이 번뜩 생각났다.
"이 책 어때요? 이 책이 진짜 가벼우면서도 재밌게 휘리릭 읽히는데, 그런데 또 이게 마냥 가볍지만은 않고, 그러면서 소소한 위트랑 흥미로운 전개가 아주 매력적인 책이거든요."
"좋아요! 표지도 넘 예쁘다. 오늘 이 책 읽을래요."
정세랑 작가의 「 재인, 재욱, 재훈 」 을 추천해 드렸다. 아쳅토에서 이 책을 몇 번이나 추천 했는지,, 추천 없이도 한 책 친구의 발견으로 다른 책 친구도 읽게 되고, 그렇게 추천을 타고 읽힌 책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들이 작고 사소한 일상에서 비범하지만 하찮은 변화를 겪게 되면서 일어나는 흥미진진하고 다정한 이야기. 오늘은 내가 한번 더 추천하게 됐다. 서로 읽게 된 이유는 매번 달랐지만, 그만큼 여러 상황에 추천하고 싶은 '만능책'이랄까.
그렇게 수요일 밤 독서모임, '심야북살롱'의 문이 열렸다. 공유서가에서 그날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책을 읽으며 준비한 질문지에 답을 써보며 홀로 읽는 시간을 보냈다. 나도 이 독서 시간에 또 한 권의 '만능책'이 되어줄 책을 만났다. 그리고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읽어보니 어떠셨어요?" 추천해 드린 책을 빠르게 2/3 분량만큼 읽어버린 책 친구에게 물었다.
"너무 좋았어요. 역시 작가 이름 제대로 보지 않고 읽기 시작했는데도 알겠더라구요. 정세랑 작가님의 책이라는 걸. 제가 어제, 그리고 요새 느꼈던 불안을 마주하게 되기도 했어요."
마음을 담아 권한 책으로 마음 속 불안과 고민을 발견하고, 마주할 힘을 얻은 책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기쁘다. 안도와 기쁜 마음으로 내가 읽은 책 이야기로 넘어갔다.
"나은님은 오늘 어떤 책 읽으셨나요?"
표지를 들어보였다. "저는 오늘 이 책을 읽었어요."
「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 」
가끔 운명과 같은 책을 만날 때가 있다. 내 삶에 큰 고민과 맞닿은 책, 그리고 앞으로 오래오래 함께하게 될 것 같은 책을 만나는 순간이다. 모처럼 그런 순간을 마주했다. 이 책은 지난 인생책 이야기에 소개한 이지수 번역가가 번역한 책 중 가장 끌리고 궁금해서 도서관에 예약해두었던 책이다. 예약도서 알림을 받고 부리나케 달려가 빌려와서 읽기 시작했다. 첫인상이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더 좋아지는 책이다. 내 삶의 상황과 고민에 맞닿아있기 때문에 더욱 깊게 연결되는 듯 했다.
이 날 읽은 부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세 가지 문장들이었다.
강물의 흐름이나 폭풍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내면에도 제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평소에도 통제 불가능한 자연 속에서 생활하다 보니, 저는 인간에게서 제어할 수 없는 부분 또한 일종의 자연이라고 생각해 '내면의 자연'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내 밖에서 통제 불가능한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 속에서, 내 안으로 통제 불가능한 거칠고 폭발하는 감정을 붙잡고 살아보려 할 때, 그 때가 이 작가의 말로는 '내면의 자연'을 마주하는 순간이겠구나 싶었다. 이런 순간에 책을 찾고 글을 쓰는 나에게 깊이 공감해주는 친구가 나타난 기분이었다.
이 세상에는 불가능성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가 존재하고, 그것은 매우 풍부하고도 본질적인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지금 루차 리브로의 서가는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도 좋아'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더 나아가 '할 수 없는 것이야말로 시작이야'라는 메시지가 되어 할 수 없는 것을 즐겁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면 더욱 좋지 않을까요.
아쳅토에 와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우린 우리가 하지 못한 일, 힘들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내가 아쳅토 서가에 꽂아두는 책들의 기준에 어떤 것들이 있을까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곤 했는데, 언어로 표현할 말을 찾았다. '할 수 없는 것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나는 그것에 위로와 힘을 얻곤 했고, 그 이야기들을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저희는 산에 맞서는 것은 포기했지만 이곳에서 풀과 나무, 새, 동물과 함께 살아가며 읽고 배우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강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듯이 자연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C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인간의 도전 정신, 즉 포기한 끝에서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지금 저희는 정복도 항복도 아닌, 자연과 마주하는 방법의 도달점을 찾아가는 과정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어떤 계절과 날씨를 마주하게 되더라도, 정복하려들지도, 항복해 포기해버리지도 않고, 그저 오롯이 마주하며 길을 찾아가야지. 또 한번 생각했다.
책 친구가 자신의 갈증으로 찾아온 모임이었지만, 누구보다 나에게 너무나 필요했던 책 읽기, 대화의 시간이되어 주었다. 내게 없는 것, 내가 할 수 없는 상황이 자꾸만 나 자신을 작아지게 만드는 요즘이었는데 앞으로도 나는 계속 내게, 그리고 이 자그마한 책 공간을 찾아주는 이들에게 없음에서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어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