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위해 기꺼이 잃고서 알게 된 것

나의 인생 책 이야기

by 삶예글방

2025. 9. 30


마포중앙도서관에서 기획한 독서의 달 강연을 신청했다. <책을 위해 기꺼이 잃고서 알게 된 것>

제목부터 너무 끌렸다. 책을 바라보는 4가지 시선 [읽/잇/잊/잃]에 대하여 - 라는 주제를 가지고 네 가지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나는 네 번째 강연인 '잃' 잃은 것을 향한 시선을 다룬 것을 듣고 왔다. 일정도 마침 화요일 저녁 7시반 부터여서 책방 영업을 마친 후에 후다닥 갈 수 있어서 아주 탁월한 기회였다.


강연자는 「아무튼 하루키」 저자인 이지수 작가님. 번역가로 일을 하다가 책도 쓰시게 된 것 같았다. 그녀의 저서를 읽어본 적은 없었지만, 호기심이 많이 가서 기대하며 도서관으로 향했다.


같이 아르바이트 하는 친구분의 사진전을 보고 부리나케 도착한 강연장엔 이미 초반 이야기가 마치고 중반으로 접어드는 순서였다. 늦게 들어가 죄송하고 부끄러웠지만 용기내어 앞쪽으로 가서 앉았다.


책을 위해 잃은 것에 관한 이야기가 이미 지나가고 얻은 것을 향해 나아가는 순서였다. 무엇을 잃었을까? 다행히 나중에 전체 이야기를 정리하며 잃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자리에 앉고 나서 책을 위해 잃고 나서 얻은 것에 관한 이야기가 접어들던 차였다.


그 과정에서 작가님의 인생책 이야기가 나왔다. 한 권은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게츠비」 , 또 하나는 다자이오사무의 「인간실격」. 두 권 중 작가님의 인생책이 있다고 하셨는데, 신기하게도 하루키의 책이 아니어서 신기했다. 「 아무튼 하루키」 를 쓰셨길래 인생책으로 하루키의 책을 소개하실 줄 알았는데 편견이었다. 예상을 벗어난 그녀의 인생책은 「인간실격」 이었다. 얼마 전 인간실격 연극을 보면서 소설을 제대로 읽었던 기억 덕분에 나도 그녀의 감상이 너무나 와닿았다. 아마 10년여전 만화책으로만 접했던 기억만 있었다면 다른 참가자분처럼 "어떻게 그 책이 인생책이에요? 그 사람 너무 쓰레기같은데" 라는 감상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조의 삶에, 그가 지닌 고독과 외로움, 마음 속 깊이 앓았던 갈등이 뼈저리게 닿는 7월*을 보냈던터라 나는 요조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도, 내가 사랑해주지 못했던 먼저 떠난 이도 생각났던 것이다. 여하튼 작가님의 책 소개를 마치고, 마지막 순서가 됐다. 각자에게 인생책- 그리고 그 책을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지 써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7월

인간실격 연극을 보고난 후 「 삶과 죽음, 그 사이 어딘가」 라는 제목으로 후기와 얽힌 이야기를 브런치에 올린 적이 있다. 궁금하신 분들은 녹색 글씨로 밑줄친 제목을 눌러 감상해주시길 바란다.



원래 내가 인생책을 묻는 질문에 떠오르는 책은 늘 다른 책이었다. 그런데 이 날 이 이야기들을 순서대로 흐름에 따라 들으며 떠올려보니 전혀 다른 책이 내게 떠올랐다.


그래, 이 책이 나에게 삶의 큰 분기점을 가져다줬지. 읽으며 나는 큰 혼란과 결단을 모두 얻었지. 이 책에 대해 적어야겠다. 오늘만큼은, 이 주제에서만큼은 이 책이 현재 나에겐 인생책이다.


이 책은 나에게 잃은 것과 얻은 것을 명확히 준 책이었기에 빠른 속도로 이 책에 대한 감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적어보는 시간 동안 얼마나 고마운 시절 책이었는가를 새삼스레 인지했다. 각자 써보는 시간이 지나고 세 명만 손을 들어 자신의 책 이야기를 하고 마무리하기로 했는데, 손을 들어 이야기를 할까 말까 굉장히 고민했다. 가능하면 내 책 소개를 참고 다른 분들의 책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듣는게 나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손을 들어 참여해준 분에게 선물을 준다는 이야기, 그리고 할까 말까 할 땐 하자 하는 마음에 용기내 손을 들었다. 그리고 내 순서가 되었다.



우선 작가님의 강연 너무 잘 들었습니다. 재미있고 흥미롭게 듣고 인상깊게 잘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저의 인생책은 사실 다른 책이 있는데요, 제가 작가님의 인생책, 특히 인간실격이라는 책이야기를 들을 때 저도 몇개월 전 해당 작품으로 만든 연극을 관람하면서 책도 다시 읽게 되어 전혀 다른 감상을 얻었던터라, 특히 공감이 많이 되었거든요. 그렇게 책을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들으며 생각해보다보니, 한 권의 책이 떠올랐어요. 제게 이 주제에 맞는 인생책은 타라 웨스트오버의「배움의 발견」이라는 책 입니다.

이 책은 폐쇄적으로 갇혀 살며 자라온 한 사람이 교육을 통해 해방되는 과정을 그린 자서전 입니다. 고립된 마을에서 종교와 가족 문화로 엄격하게 통제하는 부모님과 형제들 아래서 공교육도 받지 못한 채 종교와 가부장적 환경에서 억압되어 자란 저자의 유년시절의 기록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다 책을 통한 배움과 교육을 받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눈을 갖게되고 주체적으로 삶을 살게 된 이야기를 회고록의 형태로 담았습니다. 분명 개인의 실제 이야기인데, 읽다보면 삶의 순간에 만난 갈등과 사건, 그녀가 지내온 시간이 너무 강렬하고 거대한 폭풍과 파도처럼 다가와 회고록이 아닌 소설같이 빠져들어 읽게 되는 게 이 책의 매력입니다. 단순히 흥미와 흡입력 외에도 제가 이 소설을 인생책으로 꼽게 된 이유는 이 책이 저에게 잃게 한 것과 얻게 한 것이 삶에 큰 분기점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인데요, 하나씩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먼저 제가 이 책을 통해 잃은 것은요. 첫째로 저를 오랜 시간 통제하고 옭아메던 올무와 구속을 견딜 인내를 잃었습니다. 두 번째로 신앙을 잃었어요. 저는 원래 기독교 신자였거든요. 그 책을 읽고 나서 점차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잃고난 후 얻은 것은요, 첫 번째로 나의 삶의 본질, 그러니까 내 삶의 이데아를 찾는 여정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기록하는 삶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구요, 이 책을 읽을 당시 저는 크게 아파 수술을 한 뒤 누워지내고 있었는데, 누워있던 중 위로를 얻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론 건강하지 않은 관계를 끊어낼 용기를 얻었습니다.


작가님이 그 날 이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책을 사랑하는 분들이라 그런지, 책 소개부터 남다르네요.' 라는 말씀과 함께제대로 찾아서 꼭 읽어봐야겠다며 연거푸 기대를 남겨주셨다. 이 기회에 적어보고 발표하게 되면서 내 안에서 이 책과의 사연이 더 소중하게 와닿았다. 핑곗김에 배움의 발견, 다시 찾아보기로 다짐했다. 강연이 끝나고나서도 바로 집에가지 못하고 이지수 작가님의 번역서나 직접 쓴 책을 찾아 읽어보기도 하고 빌려서 오기도 했다. 그녀의 대표작처럼 소개된 「아무튼, 하루키」는 밀리의 서재에 있길래 다운받아 보기 시작했다. 다른 책들은 강연을 위해 모아두어서 그런지 대출불가로 떠 있었다. 내가 빌려온 책은 번역서인 무레 요코의「이걸로 살아요」. 견고한 취향이 드러내는 삶에 대한 자세와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생활 취향 에세이. 가볍게 읽어야지 하고 빌려왔는데 은근 한 챕터마다 소소한 즐거움이 꽤나 좋다. 자연스럽고 맛깔나는 번역도 한 몫 할테다. 그리고 밀리의 서재로 읽고 있는 「아무튼, 하루키」는 작가님이 어떻게 하루키라는 작가의 책을 열렬히 읽게 되었는지, 독자로서의 여정으로 시작해 번역가라는 업을 삼게 되기까지의 삶의 궤도를 하루키의 책 한권을 챕터삼아 자연스레 흐르듯 읽을 수 있어 매우 매력적인 여정을 함께 하고 있는 기분으로 읽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적으로 친밀해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다. 매우 많은 책을 성실히 오랜 시간 옮겨온 것이 참으로 멋지다고 생각하면서, 나도 나의 일을 차곡차곡 성실하게 견고한 취향이 생기도록 해나가야지 - 하고 다짐하게 됐다.



2025. 10. 9


이렇게 한 지점의 시선으로 내 독서를 돌아보지 않았다면 짚어내지 못했을 이야기. 그야말로 독서의 달이구나. 우연한 기회로 여느때처럼 도서관엘 찾았다가 모처럼 내 시간에 맞는 일정의 강의를 발견하고 만나게 된 작가님과 책 이야기. 고마운 연휴 전 선물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글쓰기를 한참 집중해서 하기 위한 일정 중간에 운명 같은 만남의 시간을 이어가게 되었는데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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