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관계로 먹고산다.

이것이 바로 '독립해서 먹고살기'의 첫 번째 강령이자 전제이다.

by 삶예글방

2025. 11. 3. 문장밥


아주 오랜만에 오전 늦게까지 깊은 잠을 잤습니다. 무언가 놓친듯한 기분에 깜짝 놀라 침대에서 발사되듯이 윗몸일으키기하며 눈을 떴지만, 다행히 크게 놓친 건 없다고 생각하며 안심하고 다시 엎드려 책을 폈습니다. 그런데 잊은 게 있었어요. 아침 문장밥 발송을 잊은 겁니다. 하하


실은 중요한 것을 놓친 게 맞았지만, 그래도 오늘 아침의 깊고 단 잠을 생각하면 작심삼일째에 지각을 해버린 것을 스스로 그러려니 넘겨보기로 합니다.


모처럼 오랜만에, 그러니까 한 6개월 정도 만에 주말 이틀 내내, 하루 열두 시간씩 서서 일하며 보냈습니다. 꼬막집에 취직(?)했거든요. 비건 피잣집에서 일하다 꼬막집으로의 이직. 책방은 겨울 방학 예정.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당장 두 달 정도를 바지런히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 일을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고마운 일터였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곧장 달려가 출근일을 정하고 왔더랬죠. 첫 주말을 보낸 이틀차,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고, 머리도 무거워졌죠. 그러던 중 메시지 하나를 받았습니다.



"나은 님,

혹시 방학 동안만이라도,,,

다른 공간에서 독서모임 호스트 해보실 생각 있으실까요?"



굳고 부은 발목을 슬슬 굴리며 새로운 주문이 들어오진 않는지 눈과 귀를 포스기에 가져다 두고 있던 차였습니다. 슬쩍 알람을 열어보고 메시지를 확인할 동안, 고맙게도 주문이 들어오지 않아 두 번 확인고 답변도 해둘 수 있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을 얻습니다. 숨통이 트입니다. 나의 모호해진 정체성에 따스하게 심지에 불이 들어오는 느낌이랄까요. 이래저래 덮이고 가려지지만 나는 읽고 쓰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그런 삶을 지속하기 위해 지금 나를 열심히 먹여 살리고 있다고..


조용히 자리를 지키며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어온 시간이, 책과 나를 이어주고, 또 내가 읽은 책이 책 친구를 만나고, 책 친구와 내가 만납니다. 그런 사이에 우리 사이엔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좋은 일과 소식을, 살고 싶어지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먹여주기도 하는 겁니다.


새로 시작한 일의 가장 좋은 점은, 가게 위치가 경의선 숲길에 닿아있다는 겁니다. 잠시 휴게시간이 될 때, 무작정 숲길로 뛰쳐나갑니다. 그리곤 짧게라도 달리죠. 그리고는 들어가기 전, 짬을 내어 열을 식히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어제 읽은 책은 정지우 작가의 「 글쓰기로 독립하는 법 」이었습니다.


부제가 "쓰는 사람에게는 믿는 구석 하나가 더 있다" 라구요.. 모처럼 신간을 읽어보기 전에 구입해 버렸습니다. 평소 정지우 작가가 SNS에 쓰는 글을 꾸준히 읽으며 공감해 왔던지라 그의 실용서적에 신기했고, 또 궁금했습니다. 간절하기도 했구요. 글쓰기로 독립한다니⋯⋯


어제 읽은 부분 중, 가장 와닿은 문장은 이 문장이었습니다.


"우리는 관계로 먹고산다."



극단적인 듯 하지만, 그 말이 진짜였으면 좋겠다 - 생각이 드는 문장이었죠. 아쳅토의 책방 계정 한글 이름도, 유튜브 채널의 코너 이름도 '연결하는 책방'이거든요. 책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책방. 실은 아쳅토의 이름 뜻도 '환영하다, 받아들이다'라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서로 다른 고유한 존재를 사랑으로 이어지며 함께하는 삶을 그리며 정했죠. 그런데 변호사라는 든든한(?) 사회적 명성이 보장됐다고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전문직에 인지도 높은 작가인 사람이 관계로 먹고산다니. 심지어 그것이 삶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홀로 고독하게 글을 써서 오롯이 누가 없이도 잘 살아갈 것 같이 보였는데 말이죠. 그래서 더 신기했습니다.



내가 알게 된 글로 먹고사는 삶이란 오히려 '사람으로서 관계 맺기'라는 말에 더 어울린다.

(⋯⋯)

누군가 내 글을 감명 깊게 읽었기에 그는 나를 끌어당긴다. 내 책을 사고, 내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나라는 사람을 궁금해하고, 나를 불러 주고, 나를 만나고 싶어 하고, 나에게 어떤 역할을 맡기려 한다. 그렇게 나와 연결되어 관계를 맺은 덕에 내가 먹고살게 된다.

(⋯⋯)

실제로 우리 삶은 이런 관계 속에 있다. 삶의 의미도, 가치도, 기쁨도 그런 관계 속에서 피어난다. 먹고사는 일 또한 삶의 일부이기에 관계 속에 있다. 우리는 관계로 먹고산다. 이것이 바로 '독립해서 먹고살기'의 첫 번째 강령이자 전제이다.

정지우 「 글쓰기로 독립하는 법 」 p.28~29



홀로 고군분투하는 시간이 나로 하여금 쓰게 만들고, 씨름하며 고독하게 책 앞을 지킨 시간이 읽게 하지요. 그런데 그 이전에 쓰고 싶게 만든 연결이, 읽고 싶어진 이야기가, 궁금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을 한번 더 깨닫습니다. 그리고 내가 느낀 이 감사한 발견을 알리고픈 마음이 또 다음 사람을 향합니다. 동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만남이어서 우리는 이것이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걸 쉽게 놓치곤 하는 것 같습니다.


즉시 이어지기 쉬운 시대죠. 당장에 오지 않는 응답에, 조용한 반응에 외로워지기 쉬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금은 긴 시선으로 전과 후를 그려봅시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관계 덕에 살고 있는지를 떠올려 보다 보면, 지금 쓰는 일, 읽는 일이 또 나에게 어떤 관계를 만들어줄지, 나와 당신을 어떻게 이어주는 매개가 되어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설레어지는 월요일 오후의 길고 늦은 문장밥 이야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