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위로 또한 영원히 이어진다
2025년 11월 14일 문장밥
독감이 유행이라는데 괜찮아요?
어제 함께 책을 읽는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 안부 연락을 받았습니다.
나은 님 소식이야 글로 읽고 있어서 알지만, 독감이 유행이라 걱정되어 물어요. 잘 지내고 있나요?
독감이 유행인가요? 저는 괜찮아요~
이 분 칩거생활 중이신가~ 괜찮으시다니 다행이네요!
그리고는 오늘 아침엔 눈을 떠보니 엄마에게 메시지가 와있었습니다.
우리 딸, 잘 지내고 있지 !!
요 며칠 계속 안부를 물어주는 이들이 생깁니다. 매일같이 글을 올리고 있어도 '진짜' 괜찮은지 물어봐주는 것이 신기하고 반갑고 합니다. 이렇게 세상 돌아가는 것 모르고 몸으로는 일터와 집만 오가며 일하거나 책 읽고 다이어리를 쓰고, 온라인 세상 속에선 브런치와 밀리의 서재, 넷플릭스만 켜두고 지내던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세상의 소식과 뉴스에 눈과 귀를 닫고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의 제 세상도 이미 충분히 소란해서 그런가, 외부의 소리까지 귀 기울이지 못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동업자 수린의 독감 소식을 들었네요. 일요일 퇴근 후 와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바로 가겠거니 답했습니다. 아픈 몸으로 뱃속의 아기까지 함께 앓고 있느라 얼마나 힘들지 걱정이 되었어요. 그 와중에 동업 종료를 앞두고 어젯밤엔 퇴근 후 집에 와서 함께 걸려 있던 결제 내역들을 제 것으로 옮겨오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제 정말 독립이구나. 한번 더 느낍니다. 야속하고도 매서운 겨울이 오려나 봅니다.
춥고 고된 일상으로 몸과 맘이 시린 중에도, 따스한 온기가 들어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어제는 일하는 틈틈이 손님이 없을 때, 콕콕 쑤시는 허리를 붙잡고 카운터 뒤에 둔 플라스틱 간이의자에 앉아 전자책을 꺼내 들었어요. 정혜윤 작가님의 신작 「 책을 덮고 삶을 열다 」를 읽었죠. 시지프스의 신화 속 시지프가 받은 형벌에 관한 시를 인용하셨더라고요. 오늘은 그 문장을 가져왔습니다.
옛날 옛날에, 그렇게 오랜 옛날은 아니지만 일본 규슈 가고시마현 남쪽 야쿠시마섬에 야마오 산세이라는 농부 시인이 살고 있었다. 매일 농사를 짓던, 즉 끝나지 않는 노동을 하던 그는 그리스신화 시시포스에 대해 깊게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시시포스」라는 시를 썼다.
시시포스라는 사람은
신으로부터 영원히 죽을 수 없는 형벌을 받고
힘에 겨운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지고 올라가면
그 바위는 소리를 내며 바닥까지 굴러떨어진다
다시 그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짊어지고 올라가면 바위는 다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굴러떨어진다
영원히 죽지 못하고 영원히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
시시포스에 주어진 형벌이었다고 들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아는 시시포스 신화 이야기다. 시는 이렇게 이어진다.
이 형벌을
형벌이 아니게 하는 길이 몇 가지는 있다
그 하나는 시시포스가 힘에 부치는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다 짊어지고 올라갔을 그때의 기쁨이고
또 하나는 커다란 돌이 다시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바라볼 때의 휴식이고
다시
또 한차례 그 바위를 짊어지고 오르기 위해
천천히 산을 내려갈 때
주변 풍경이 주는 짧지만 깊은 위로다
형벌이란 하나의 단면이다
형벌이란 한 단면의 풍경이다
형벌은 영원히 계속되고 기쁨과 위로 또한 영원히 이어진다
<책을 덮고 삶을 열다>, 정혜윤
글을 읽는데 일하는 중인데 주책맞게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았어요. 우리가 지내는 요즘의 날들이 자꾸만 반복되는 돌 굴리기의 형벌 같아서, 버겁고 무겁기도 하고, 아무래도 지친다는 생각에 힘들고 있었거든요.
이 형벌을
형벌이 아니게 하는 길이 몇 가지는 있다
그 하나는 시시포스가 힘에 부치는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다 짊어지고 올라갔을 그때의 기쁨이고
또 하나는 커다란 돌이 다시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바라볼 때의 휴식이고
다시
또 한차례 그 바위를 짊어지고 오르기 위해
천천히 산을 내려갈 때
주변 풍경이 주는 짧지만 깊은 위로다
형벌이란 하나의 단면이다
형벌이란 한 단면의 풍경이다
형벌은 영원히 계속되고 기쁨과 위로 또한 영원히 이어진다
고통뿐인 형벌로 보이는 시지프의 영원히 반복되는 숙제 같은 삶에도 형벌이 형벌이 아니게 하는 몇 가지 길이 있다고 시인은 발견합니다. 이 시선이 저의 올 겨울을 살게 할 것 같은 기대가 됩니다.
기껏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낑낑대며 오를 때의 고통. 그 올려 둔 순간, 잠깐의 성취감과 짜릿함을 느끼죠. 기쁨도 잠시, 돌은 곧바로 다시 굴러 떨어집니다. 그 순간을 허망하고 무력하겠지만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잠시 숨을 돌리는 휴식으로 바라본다니요. 작은 충격이었죠. 감탄했습니다. 게다가 바위를 다시 올리기 위해 굴러떨어진 길을 따라 산을 내려가는 그 순간을 포착한 것. 그 장면은 시지프의 신화를 읽거나 들었을 때,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던 것입니다.
천천히 산을 내려갈 때.
네. 그 주변을 바라보며 발견하는 풍경이 주는 짧지만 깊은 위로라는 문장이, 읽는 순간 그 풍경이 되어주는 사람과 이야기, 순간들이 떠올라 울컥했던 것이었습니다.
형벌이 하나의 단면을 의미한다는 것, 그리고 한 단면의 풍경이라는 것. 그렇죠. 그 단일하게 반복되는 두 행위만 묘사하고 생각하면 그저 괴로움뿐이겠지만, 그 단면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며, 직접 스스로 이고 지고 오르내려 보다 보면,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정혜윤 작가에게는 그것이 책이라고 합니다. 깊이 공감했습니다.
형벌은 영원히 계속되겠죠? 우리의 삶 또한 형벌 같은 사건과 상황이 매 순간 반복되겠고요. 그럼에도 우리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건, 기쁨과 위로 또한 영원히 이어진다는 사실 이겠지요.
오늘의 문장밥 연재를 끝내도, 바로 이어서 다음날이 될겁니다. 또 바로 써야 할 다른 글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구요. 12월에 맞춰 준비해야 할 이사 준비도 이틀에 한번꼴로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며 미뤄지곤 하면서 아주 더디게 계속 엉키고 꼬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요, 다시 쓰려고 가까스로 마음 잡고 노트북 앞에 앉은 제 옆에 나른하게 햇살을 쬐며 비비적거리다 눈만 마주쳐도 그르렁거려 주고는 안심하고 잠드는 회색 고양이 망고가 있고,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이의 안부를 물어오는 친구가 있고, 배곯지 않고 깊이 잘 수 있게 매일 밤의 안식을 챙겨주는 고마운 사람이 있어 찰나의 위안과 행복을 아주 깊고 진하게 들이마시며 다시 힘을 냅니다. 농부 시인의 시선이 정말 지혜롭고 통찰력 있다는 생각과 함께 감사함이 몰려옵니다. 이렇게 문장을 삶으로 이해하며 긍정하는 순간이 또 있을까? 하고요.
모쪼록 겨울을 잘 지내보자며 오늘의 문장을 수린에게 건네었는데, 답변으로 또 아름다운 문장을 받았습니다.
언니, 사람에게 한계란 없대요.
그 과정을 내 소중한 사람들과 이겨내는 거라고요
너덜너덜해진 삶을 소중한 사람들과 꿰매면서 나아가는 거래요.
너덜너덜해지는 삶을 함께 꿰매고 보듬으며 나아가는 삶. 그렇게 각자의 한계를 조금씩 넘어가는 형벌의 반복, 찰나의 휴식과 깊고 짧은 위로. 오늘의 문장이 그런 식사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