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항상 제일 좋은 걸 먹게 되는 거야.
2025년 11월 18일 문장밥
오늘의 문장밥은 저희 엄마가 지어주신 저녁밥이 되어버렸네요.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로 채워온 한 주가 지나고, 모처럼의 휴식일에 맘 놓고 쉬는 일을 택했습니다. 한량처럼 오전과 낮시간을 늘어져서 보냈어요. 가장 원했고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해가 지기 전에 집에서 나왔어요. 산허리에 걸쳐 앉은 해를 놓치기 전에요. 나와 걸으며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어떤 문장밥을 차릴까. 하고요.
엄마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박스 안에 있는 과일을 꺼내 먹을 때, 옆에 서서 지켜보는 제게 손으로 신중히, 그리곤 신나는 표정으로 하나씩 고르며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하셨어요.
이렇게 많은 것 중에 고를 땐, 가장 맛있게 생긴 것부터 꺼내 먹으렴. 그럼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먹게 돼.
자라면서 들을 땐 그저 당연한 이야기로 알아듣고 컸어요. 그렇지. 맛있는 걸 먼저 먹어야지. 가장 좋은 걸 먼저 골라야지. 그래서 어려서부터 갑자기 여유 시간이 생길 때, 혹은 예상외의 용돈이 생길 때, 부모님이나 친지분들이 뭐 필요한 거 없는지, 갖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볼 때, 망설임 없이 가장 원하는 것을 바로 이야기하거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선택은 늘 신나고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저에겐 당연하고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집 밖에서 경험하는 선택의 순간엔 '나'의 기준에 충실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학교에서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거나 할 때도, 가장 맛있는 것이나 좋아하는 메뉴를 가장 나중에 먹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하다못해 소풍 갈 때 입을 옷도 각자의 취향이나 체형에 맞춰 고르는 게 아니라 또래 친구들이 인정하는 브랜드에서 같은 옷을 사서 맞춰 입거나, 펜이나 노트 같은 학용품도 인지도 높은 회사의 것으로 고르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입시 과정에서도 자연스럽게 진학이나 취업에 대해 선택을 해야 할 때 갈림길에서 제가 들은 선택법은 보통과 먼 길인가? 싶은 생각을 갖게 되더군요. 정말 하고 싶은 일, 정말 배워보고 싶은 학과가 아니라 현재 성적에서 지원 가능한 서울 안 학교의 경쟁률이 낮은 과. 혹은 부모님이나 학교, 학원에서 인정해 주는 전공이나 학교를 고르는 풍경을 마주하며 저는 그때마다 충격을 받곤 했습니다. 이런 방식은 제가 입시학원 강사를 했던 시절에도 절절히 느꼈어요. 아이들이 바라는 활동, 이 아이들이 잘하는 것,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을 제안했다가 학부모들의 원성을 듣곤 했거든요. 매 입시 상담 때마다 학부모들과 싸우게 되는 순간에 지쳐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정말 보람되고 좋았지만 입시판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강사의 꿈을 접고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서도 느꼈어요. 어렵게 일을 해서 돈을 모아 구입한 물건이나 옷, 가방 등을 사서 모셔두고는 잘 사용하지 않더라고요. 왜 가장 많은 정성을 들여 갖게 된 물건을 자주 쓰지 않는 건지 물었을 때, '너무 아까워서'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40대를 바라보고 있는 요즘은 또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다 보면, 삶에서 이루고 싶은 일에 있어서도 가장 원하는 건 나중으로 미루는 경우를 자주 마주합니다. 어떤 삶을 살고 싶어요? 물어봤을 때, 스스로가 세운 '목표'라 부르는 장벽을 먼저 나열하는 겁니다. 자산을 키울 방법, 그러니까 부동산이나 주식 등의 재테크를 배워서 급여 외 자산을 만들고, 목돈을 모아서 내 집 마련을 하는 그런 목표들요. 그럼 그게 최종 목표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이렇게 답을 합니다.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집도 한 채 갖고, 차도 한 대 사고 해야죠. 또 결혼하게 될 수도 있으니 계속 수입은 필요할 거잖아요. 금융 자산을 확보해서 안정적인 상태가 되면 그 때야 결혼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어느 정도 갖춰 놓고 나서 여행도 하고 즐기고, 쉬고 싶어요. 아,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실은 당신처럼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거예요. 저만의 공간을 하나 갖고 싶어요. 한적한 곳에서 책도 읽고, 생각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요. 자연으로 여행도 가고요. 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시간도 보내는 거죠. 그러려면 지금 열심히 참고 노력해야 해요.
저는 입술까지 새어 나오려는 말을 겨우 참아냅니다.
그전에 죽으면요?
시간이 당신을 기다려 주나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왜 나중으로 미루는 거죠?
최근 책방 운영을 이어가기 위해 케이크 매장, 피자집, 일반 음식점까지 - 다양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함께 하게 되면서, 새로운 원칙을 배우게 됩니다. '선입선출'. 먼저 들어왔던 제품을 먼저 내보낸다. 먹는 걸 다루는 곳에서 특히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보통은 공산품의 경우 입고가 가장 오래된 것을, 야채나 과일 같은 생 재료의 경우 상하기 직전의 것을 먼저 꺼내 사용하곤 하더라고요. 일을 할 때 수익과 비용을 생각해서는 소비기한이나 회전을 생각해야 하니 그럴 수 있겠다 싶긴 했어요. 하지만 삶에서의 선택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고요. 내 생의 기한을 알 수 없으니까요. 내 생의 기한뿐 아니라 활력의 기한도, 내 마음의 기한도 알 수 없으니까요.
가장 소중한 것, 가장 원하는 것을 바로 고르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작 내가 할 일을 결정할 때에도, 원하는 사람을 만나려고 할 때도, 완전하지 않으면 결정 자체를 미뤄버린다거나 안전을 위한 선택만 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매 순간은 어렵겠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에는 가장 원하는 것을 먼저 선택하는 결단의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삶에 얼마나 많은 한계와 무게가 있는지 모르는 건 아닙니다. 실은 제멋대로 내키는 대로만 살고 있는 것 같은 저에게도 많은 예상치 못한 상실과 사건이 자주 들이닥쳤으니까요. (책방지기 사생활실록을 보시면 조금 맛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삶에 자주 쓰고 매운맛이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기 때문에, 우리에겐 삶의 확실한 단맛을 당장 맛보는 하루하루가 필요합니다. 최소한 그 선택의 결과가 아주 하찮고 작은 것일지라도, 남이 보기엔 에게? 겨우 그거야? 싶은 초라한 모양새일지라도, 내가 직접 고민하여 선택한, 내 마음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을 나의 선택으로 고르고 누리는 그 경험이 우리 삶을 계속 살고 싶어지게 할 테니까요.
많은 부분에서 동시에 할 수 없을 테니, 아주 작은 부분에서 만큼이라도 오롯이 '가장 원하는 것'을 '즉시' 하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요? 하루 한 끼의 식사도 괜찮고, 가장 먼저 내가 말을 걸 사람을 고르는 것도 괜찮고, 잠들기 전 내가 눈으로 볼 것을 결정하는 것도 좋습니다. 나아가 한 주의 마무리를 책임져 줄 나만의 휴식 공간을 결정하거나 행위를 결정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가장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문장 하나를 골라 차리고 있는 저도 2주가 지나고 나니 이 문장밥을 준비해 차리는 과정이 참 소중합니다. 수많은 글자들 사이, 문장과 문단, 페이지들 사이에서 가장 맛있는 문장 한 줄. 그렇게 고르는 행위가 내 안에, 그리고 이 문장을 읽어주는 독자에게 가장 좋은 것만 차곡히 쌓이는 가랑비가 될 테니까요.
오늘도 제가 차린 문장밥 맛있게 드셔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