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인정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2025년 11월 22일 문장밥
삶은 어쩌면 각자 자기 선 위를 걷는 일이다. 어느 순간, 선과 선이 교차한다. 함께 머물며 햇볕을 나누고 비도 흘려준다. 그러다 다시 각자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걷는다. 선과 선의 만남이 점 하나 일수도, 길게 포개진 선일 수도 있다. 그건 각자의 입장이 낳은 각자의 선택이다. 누구도 누구의 선에 편입되지는 않는다. 나는 그와 함께한 시간이 내 인생의 일부이므로, 어떤 결정도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위대한 착각이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명제는 맞지만, 조연의 등장과 퇴장은 주인공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나 역시 그의 인생 라인에서는 조연이다. 그걸 인정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하정 『이상한 나라의 괜찮은 말들』
한 달간 이 책을 친구들과 랜선으로 함께 읽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비로소 내일이 마지막 날입니다. 괜스레 서운합니다. 이 책을 매주 한 번씩 들여다보며, 친구들의 감상을 읽으며 잠시, 그리고 어떤 시간 동안 마음 따뜻하고 행복했거든요.
책방을 운영하며 함께 책을 읽으러 와주는 책 친구들을 만나면, 그 만남이 마치 오늘의 문장 속에서 이야기한 선과 선의 만남 같습니다. 순간의 조우가 점과 같이 만났다가 같이 읽은 밤이 늘어날수록, 문장이 쌓여갈수록, 길게 포개진 선이 되는 날들도 만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슬며시 마음도 기대도 깊어지는 저를 봅니다. 그러다 함께하지 못하는 밤이 길어지면 또 은근히 서운함을 느끼기도, 그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다 새로운 친구가 오면 서로의 선이 마주하며 새로운 점을 만들기 시작하는 순간을 또 만나는 거죠. 신기한 기분과 설렘이 찾아와 버립니다. 그리움과 반가움으로 뒤죽박죽 해진 맘을 잡고 또 한 주의 책방지기의 삶과 읽는 밤을 이어갑니다.
오늘의 문장은 그런 저의 엉킨 마음에 아주 따스하면서도 명쾌한 정리를 해줍니다.
선과 선이 잠시 만나 점을 찍어내기도 하고 길게 포개어진 선을 그어가기도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여전히 각자의 선 위에 놓인 채 스스로의 입장과 상황에 따른 결정으로 마주하거나 멀어지는 것뿐이라는 것을요.
언제든 가벼이 포개어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 봅니다. 잠시 점을 찍고 갈 수 있는 공간. 바로 떠나기엔 머릿속이나 몸이 무거울 땐 그저 잠시 퍼질러 앉아 늘어져 쉬었다 가는 곳이 되면 좋겠다고요.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이, 그런 사람이 있는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머릿속이 따스한 온기로 차오르고 편안해집니다. 가벼워진 마음을 갖고 새 공간을 준비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