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행위는 자기 수련이 되고,

쓰기라는 도구는 내겐 실존의 필수품이 된다.

by 삶예글방

2025년 11월 23일 문장밥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글방 합평 모임을 했습니다. 시원 님과 2주 간의 글쓰기 시간을 회고하며 서로의 글에 못다한 감상을 나누고, 또 쓰고 나서 변화한 것, 쓰고나서 돌아보니 알게 된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죠. 그런데 재밌는 것은 서로가 정한 마감이 아니었다면 어찌 이렇게 촘촘히 쓸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두사람 모두 살인적으로 바쁜 일정의 날들을 지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젯밤엔 또 다른 마감을 따라 트레바리 독서모임의 발제문을 작성하다가 한숨과 함께 이 문장이 튀어나왔습니다.


내가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마감을 살고 있구나



그렇게 매일 아침의 문장밥 차리기, 또 매 주 책 함께 읽는 월요일, 저의 소설을 연재하는 화요일과 시원님의 시선집을 발행하는 목요일, 비밀 독서회가 진행되는 토요일, 두 사람의 편지를 주고 받는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월에 8일 휴무일 빼고는 매일 출근해 하루 열 두 시간씩 근무 중인 음식점 아르바이트까지..


이렇게 촘촘히 쓰는 일이 아니었다면 나는 삶을 얼마나 덩어리의 시간으로 떠나가버렸다고 한탄하게 되었을까. 내 삶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모르고 빠르게 흘러버리는, 바쁘게 지나버리는 일상에 아쉬워만 했겠지. 그런 생각도 들었던 겁니다.


오늘 차리는 문장밥은 그런 제 맘을 헤아려주는 단비같은 문장입니다.






쓰는 순간, 나는 이 순간의 공기와 이 창문들과 이 정오의 햇빛들과 이 공간과 이 노트북과 내 방의 모든 사물을 다르게 경험한다. 다시 말해 쓰기 전의 순간과 쓰는 행위 중에 있는 나는 사물들과 다른 관계를 구성한다. 그것은 종종 나를 고양시킨다. 저 햇빛과 차가운 겨울 하늘, 창밖 아이들의 소리, 자동차의 경적을 다르게 감각하게 된다.


이 순간 내가 더 좋은 사람으로 느껴지거나 마음이 순화되는 경험을 한다. 이 순간은 나를 다른 실천의 장으로 몰아세운다. 위치가 변하면 존재가 달라진다. 말하자면 쓰는 동안은 새로운 존재의 창조 순간이며 이 세상과 처음처럼 만나는 순간이다. 그때 나는 다른 가능성의 자기를 경험한다. 쓰기 전의 나, 쓰고 있는 동안의 나, 쓰고 난 이후의 나는 각기 다른 존재다. 이 느낌을 여러분은 알고 있다. 그래서 쓰는 행위는 자기 수련이 되고, 쓰기라는 도구는 내겐 실존의 필수품이 된다. 또한 살면서 겪게 되는 *간난신고艱難辛苦에 우리를 잘 대응하게 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나를 강하게 해주고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이렇게 몸에 품고 다닐 수 있는 자기수련의 도구를 *파라스케우에Paraskeué라고 했다. (⋯⋯) 위기의 순간, 바로 내 안에서 꺼내어 쓸 수 있는 물질 같은 것이다.


천경「 미셸 푸코의 실존의 미학, 내 삶의 예술가 되기」





바쁠수록, 삶이 고될수록, 글 앞으로 갑니다. 아니 돌아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런 삶이 순간 순간의 저를 잡고 지금에 있게 해줍니다.






✴︎간난신고艱難辛苦

(어려울 간, 어려울 난, 매울 신, 쓸 고)몹시 고되고 어렵고 맵고 쓰다는 뜻으로 몹시 힘든 고생을 이르는 말.


✴︎파라스케우에Paraskeué

'파라스케우에'는 주로 미셸 푸코의 철학에서 나오는 개념으로, 자기 수양과 실존을 위한 준비, 준비된 상태, 또는 장비를 의미한다. 이는 개인이 외부세계의 동요나 유혹에 저항하고, 목표에 도달하며,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형태의 실천과 설비를 포함한다. 헬레니즘,로마 시대의 철학자들이었던 세네카, 에피쿠로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영혼을 가꾸기 위해 파라스케우에를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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