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기 싫은 연약함을 너무 잘 반추하게 하는 글을 써주셔서요
시원님, 오늘은 글쓰기 합평 모임을 끝내고 이어서 바로 편지를 씁니다. 이렇게 집에서 편안한 몸과 마음으로 여유로운 상황에서 편지를 쓸 수 있어서 너무 기쁜 아침이에요.
비록 어젯밤 3시가 넘어서 자는 바람에 3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 모임을 하고, 편지를 쓰게 되었지만 그래도 마음 컨디션이 최상이랍니다. 역시 마음이 몸을 지배하는 것 같아요. 뻐근한 눈 빼고는 모든 게 가뿐합니다.
아무래도 충분히 쓰는 마음에 대해 주고받은 대화 후여서 더 그런 것 아닐까 싶어요. 시원님과 합평 모임을 하는 동안에는 자연스레 근래의 삶의 이야기들을 소소하게 나누며 어떤 틈을 내어, 어떤 감정을 갖고 쓰게 됐는지 서로 이야기하게 되고, 그 안에서 오늘과 내일, 다음 주는 어떻게 살며 쓸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잖아요. 그렇게 나누는 중에 자연스레 내 일상과 과거, 미래를 그리게 되는 것 같아 신기합니다. 얼떨결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가 26년을 어떻게 살 것인지 일상의 한 단면까지 그려 이야기드리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글을 주고받는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의 시간이 주는 작고 단단한 위안이 있네요. 감사해요!
편지 마무리에 정말 25년을 마무리할 때는 고요한 마음으로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씀 주셨잖아요.
더 이상 달려가고 싶지도, 바삐 움직이고 싶지 않은 요즘이에요.
라고요. 이 문장엔 왠지 기울임 처리를 간절히 하고 싶은데, 브런치 에디터 기능에 기울임 쓰기가 없어 이미지로 캡처해서라도 올려봐야겠어요.
한글은 아이폰 메모앱에서도, 맥 OS의 문서작성 프로그램인 Pages에서도 기울임 꼴 적용이 되지 않네요. 하하, 정말 기분 상하는 포인트예요. 이렇게 많은 한국인이 애플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쓴 지가 오래됐는데, 한글 기울임 꼴 적용이 안된다니요. 갑자기 울화가 치미네요. 브런치 팀에게도 요구하고 싶어요. 기울임체 적용 옵션을 추가해 달라고요.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괜히 거슬리는 날, 뭔지 아시죠?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켜서 한 문장을 적고 마음껏 자간과 기울임 정도를 조절해 보았답니다.
네. 이렇게 편집해서 한번 더 올리고 싶었습니다.
저도 모르고 있던 감정에 언어를 붙여주셔서 감사해요. 시원님의 비공개 시선집을 읽고 편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에요. 저, 정말 그 마음이란 걸 문장으로 힘 있게 드러난 글자들을 보며 깨닫고, 이내 이해받는 기분을 느껴요.
이번 주 시선집, 마음의 계절을 읽으면서 느꼈지만, 그 문장을 살아내며 더 확실하게 체감하게 됐어요. 사람이 얼마나 연약하고 흔들리는 존재인가에 대해 어제 조금 더 강하게 생각하게 되는 일이 있었거든요. 몸도 마구 흔들릴 정도로 안 좋아 병원행을 했기도 했지만, 그 위태로웠던 몸상태보다 마음이 더 많이 오락가락하고 거칠게 반응한 밤을 보냈거든요. 어제는 오후에 우연히 마음을 울리는 문장을 만나서 그 문장을 필사를 했어요. 내가 느끼는 상황, 감정, 들리는 소리나 감각은 그저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집착하거나 매이지 말라는 붓다의 말을 인용하며 저자 나름의 풀이를 시도한 것을 푸코의 철학책에서 읽었어요. 내가 아닌 것들로 번뇌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참 뜻이 좋다고 느꼈고, 깊게 와닿았어요. 그래서 감사하면서 잠시 마음을 돌아보며 다스리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는데요. 인식과 삶으로 살아내는 것은 정말 큰 간극이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달았어요. 불과 네 시간도 되기 전에요.
저녁에 이사를 막 마치고 1차 정리를 진행한 책방 공간에서 나와 나머지 정리를 하고 있던 중, 와다다닥 하며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어요. 깜짝 놀라 들어가 봤더니, 저희 집 고양이 망고가 들어와 탐험하고 있다가 좁은 북타워 형태의 책장 위를 뛰어넘고 뛰어내려 가다 책을 날리며 점프해 내려온 것 같더라고요. 다행히 망고는 다치지 않았고, 머쓱했는지 제 눈치를 조금 보며 유유자적 걸어 나갔고요.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이렇게 책점프 할 일이 많을 것 같은데, 뛸 때 미끄러우면 망고에게도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도 위험하니까 이 책장들은 제 방으로 옮겨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죠. 그렇게 생각하면서 떨어진 책들을 주워 다시 꽂으려는데 보니 제가 아끼는 책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 한국 초판본이 떨어져 망가진 채로 뒤집혀 있었어요.
물론 못 읽을 정도로 망가진 건 아녜요. 물에 젖은 것도 아니니까요. 겉표지가 찢어지며 양장 커버 하단이 찌그러지고 뜯겼더라고요. 망고가 책 위에 토하거나 소변을 보는 등의 실수를 한 것도 아니고요. 물론 제 이불엔 가끔 합니다만. 헤헤 여하튼 그런데도 그 한 귀퉁이 찌그러지면서 찢어진 표지를 만지다 보니 책에게 미안하면서 제가 아픈 것 같고, 마음이 너무 상한 거예요. 머리를 말아 쥐고 아⋯⋯ 하⋯⋯속상해⋯⋯ 를 외쳤죠. 그러던 중 저를 달래주고 진정시켜 주려던 남자친구의 한마디에 기분이 상해서는 화를 버럭 내고, 싸움으로 번져 투닥거리다 가까스로 풀고 잠에 들었어요. 책을 날려버린 망고에게도, 저를 달래려던 남자친구에게도 아니고, 그렇게 과한 반응을 해버린 저 스스로에게 참으로 실망스럽고 괴로운 밤이었습니다.
아는 것과 그렇게 사는 것은 왜 그리도 가까워지기 어려운 것일까요. 살아내는 나와 알게 된 나 사이가 조금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의식 중에 하는 말이 무해하기 위해서 계속 메모를 한다는 정혜윤 작가님처럼, 저도 더 고운 말, 다정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메모에 늘 적어야겠다는 생각, 마음에 새기고 또 근육과 몸에 새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밤이에요.
어쩌다 보니 시원님께 고해성사를 해버린 기분이에요. 그렇지만 이 에피소드는 어디까지나 ‘연약함’에 대해, 특히 ‘마주하기 싫은 연약함’에 대해, 그것 또한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임을 고백해 주는 생생한 시원님의 글에 대한 감상으로 시작되어 길어 올려진 것임을 구차하게 밝혀봅니다. 써주셔서 감사하고,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물음표가 하나 남았어요. 시원님의 사랑의 출처, 어디인가요?
연약함 속에 사랑의 근원을 향해 간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사랑이 되기 위해, 사랑의 출처를 붙잡게 된다는 말이 아주 생경하게 다가옵니다. 어떤 마음일까요.
오늘은 저도, 시원님도 조금은 과제에서 벗어나 하루를 집중해서 보낼 수 있는 날이길 바라며, 답장을 쓰며 벌써부터 답장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P.S 보내드리기로 한 책은, 정말로 종강 주를 마무리하기 직전에 받으실 수 있게 반드시 발송할 겁니다! 파이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