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고 느리게 살기 위한 시도 중이랍니다.
시원님, 우리 자꾸 번갈아가며 앓고 있네요. 오늘 새벽에 연락 주신 것 보고 깜짝 놀랐어요. 살아있기에 아픈 걸까요? 삶을 살아낸다는 게 실은 계속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이 당연한 것일까요? 어쩌면 그렇게 불현듯 찾아오는 마음과 몸의 앓이가 삶 그 자체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아침을 보냈답니다.
잠시 멈춤의 시간을, 알아서 못 만드는 우리에게 몸이 강력하게 신호를 보내는 건 아닐까요?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말을 요 근래는 참 좋아하게 됐어요. 아파서 못하는 게 많아지고, 약속도-일정도 취소하고 누워있다 보면 자연스레 생활이 단순해지잖아요.
오늘 저는 밤 열 시가 다 되어서야 답장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그런 거 아시죠? 중요하게 해야 하는 일 앞두고 갑자기 청소나 집 정리가 하고 싶어지고 하는 그런 최후까지의 미루기 작전을요. 제가 딱 그렇게 이른 저녁까지 책방 준비와 제 방 재정비를 마치고서도 분리수거한다고 한 삼십 분, 저녁 먹는다고 한 시간, 이불 빨래 한다고 또 한 시간, 그렇게 최후까지 밍기적거리며 뜸을 들이다 드디어 쓰기 시작한 것이죠. 어찌나 막상 쓰면서는 이렇게 신이 날 거면서 끝까지 미루게 될까요? 참 알 수가 없습니다. 시원 님도 그 모든 일 제쳐 두고 오로지 잘 쉬고, 느리게 지내는 것에만 집중한 일요일을 보내셨길 바라요. 쓰는 대로 살게 된다더니 정말 느린 십 이월의 끝을 맞이하게 될까요? 조금은 더 단순하고 느리게 지내는 며칠을, 아니 날들을 꿈꿔 봅니다.
오늘의 주요 이벤트는 제가 쓰던 작은 침대를 거실로 내놓고, 동생에게 큰 침대를 받아오는 것이었어요. 파주에서부터 성산동까지 큰 사이즈의 매트리스와 받침으로 쓰던 원목 평상을 같이 동생 차로 실어 왔어요. 동생과 남자친구 도움으로요. 영하 3도에서 체감 영하 10도는 되는 듯한 차가운 날씨에 칼날 같이 매서운 바람에 맞서 짐을 옮기고 들이고 했더니 아직도 머리가 띵-해요. 그럼에도 책상 의자를 뒤로 돌려 보이는 널찍한 침대를 잠시 바라보고 있자니 아주 흐뭇해집니다. 오늘부턴 특히 더 느린 휴식 모드가 가능할 것 같아요. 물론 숙면을 위한 조건에 침대가 모든 걸 좌우하는 건 아니지만요?
이 침대는 참 사연도 많고, 생의 터전이 여럿 옮겨진 친구랍니다. 제가 전에 안산에서 살 때 쓰던 침대를 좁은 집으로 이사 가면서 파주에 새 집을 마련한 동생에게 상황이 맞아 물려주듯 보냈었는데, 제가 이번에 성산동 집으로 다시 받게 된 거죠. 실은 신혼 생활 시작했을 때 샀던 침대예요. 이혼하면서 자연스레 매트리스나 프레임도 정리해서 버리는 게 맞을까? 생각한 적 있었고요.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었죠. 물건엔 죄가 없잖아!라고요. 책상이고, 책꽂이고, 주방 용품이고, 가전이고 감정이 변했다고 물건도 같이 변하는 건 아닐 텐데요. 뭐 백번 양보해서 변하고 상한 기분까지 들더라도 쉬이 버릴 수 있는 게 없었어요. 무엇보다 싹 다 버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특히 그랬어요. 가뜩이나 좁은 집으로 생활을 줄여 가는 판에 멀쩡히 잘 작동하고 기능하는 가구나 전자 제품들을 같이 쓰던 사람과 헤어졌다는 이유로 버리는 건 얼마나 지구에 죄를 짓는 것이냐 싶더라고요. 게다가 기껏 소중히 고르고 골라 집에 초대하고, 누군가의 축하와 사랑의 마음으로 선물 받아 함께 살아온 삶의 도구, 때론 위로와 힘이 되어준 것들을 버리는 게 저에겐 참으로 어렵고, 이상한 일로 느껴졌어요.
당시엔 결국 너무 좁은 방으로 이사해야 하다 보니, 그 큰 침대를 이고 지고 살 수 없어 동생네 마침 필요하다기에 보내고, 저는 손님방에서 쓰던 싱글 사이즈 소파베드를 두고 생활하고 있었어요. 손님방 이야기하다 보니 기억났네요. 시원님도 경험해보셨던 침대예요. 제가 에어비앤비로 북스테이를 운영할 때 초대 드려서 묵고 가셨던 그 방의 침대요! 벌써 일 년이 되었네요.
이런 상황일 땐-그러니까 이혼이나 사별 등의 상실을 겪고 남겨진 사람이 함께 쓰던 물건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도 어디에서 알려주는 곳도 없잖아요. 그래서 더 이상 제가 쓰지 않아도 되는 물건들은 당근으로 사람들에게 나누거나 아주 작은 가격에 팔고, 여전히 기능으로 문제없이 역할을 다해줄 수 있는 것들은 데리고 오거나 입양 보내곤(?) 했답니다. 오늘 제가 다시 받아온 침대도 그중 하나고요. 아, 식물 친구들은 아주 큰 이들만 부모님 집에 입양 보내고, 모두 그 좁은 집으로 데리고 같이 이사를 했고요. 지금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실은 다시 가져오는 것도 고민이 많았어요. 동생네가 이젠 패밀리 베드를 마련한다고 해서 그 침대를 처분해야 한다고 했거든요. 가져갈 것인지 묻더군요. 고민 좀 해보겠다 답했어요. 물론 망원동에 혼자 집을 좁혀갔을 때보단, 지금 성산동에 살고 있는 집이 훨씬 넓고 제 방도 그 방보단 넓지만, 그래도 공간이 많이 여유롭진 않았거든요. 그래서 여러 사람이 수고를 해야 하고, 가지고 와도 방이 많이 좁아지는데, 좀 더 잘 자보겠다고 그런 수고를 감내하는 게 맞을까?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렇게 고민하던 중, 저의 고민을 동생의 아내, 그러니까 이제는 저의 전 동업자가 된 수린에게 털어놓았어요.
“고민 돼. 침대를 가져올지 말지.”
“왜요?”
“지금 상황에 너무 사치인가 싶어서.”
“사치라.. 왜 사치일까요.. 잠은 중요하죠.. 그 소파 겸 침대 언니의 숙면에 크게 도움이⋯⋯.”
그렇게 듣고 나니, 최근 저의 건강에 빨간 불이 들어왔던 것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일자목을 진단받고, 후두 신경통도 얻어오고, 수면 부족으로 각종 문제가 자꾸 생기는 상황을 돌아보니 숙면에 조금은 욕심 내어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죠. 체면이고 수고로움이고 조금은 감내하고, 욕심 내자. 그리고 조금만 더 편안하게 잘 쉬도록 하자.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고 가져왔답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어쩌면 사연은 침대가 많이 갖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침대 곁에 있던 제게 많았던 것 같네요. 하하
오늘은 시원 님의 이번 주 시선집 문장처럼, 마음이 이끄는 대로, 몸 상태가 이끄는 대로 욕심 내어 본 저의 이야기를 들려 드렸네요. 고요해질 참을 안주는 일상인 것 같아 웃기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단순해져 가는 것 같아요. 시원 님의 산티아고 여행기를 읽고 들을 때, 삶에서 무언가를 내려놓고 방황하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구나 생각하게 되어요. 그런 시간이 어떤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한 번씩 마치 잊고 지내던 스승님처럼 스스로에게 찾아오는 것 같거든요. 그런 기억으로 또 한 해 한 해를 살아가고 계신 것 같아서 공감도 되고, 그런 도전을 어리다고 할 수 있는 나이에 하신 것도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요.
선자마을 이야기를 읽고, 서로가 서로를 빼앗고 있는 것뿐 아니라 자신을 갉아먹는 건지도 모른다는 말씀이 계속 마음에 남아요. 시원 님, 우리 앞으로도 그렇게 당연하게 자신을 착취하고 갉아먹게 만드는 상황에 저항하고, 나로서 온전히 존재하고,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 관계하는 시간을 계속해서 쓰면서 지켜나가 보아요.
넉넉한 마음, 덕분에 가득 품고 편안한 잠을 향해 갑니다.
감사해요, 시원 님!
고운 마음 기다리며 나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