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12월 17일 수요일 문장밥
우연히 필사노트를 보다가, 아주 오래전 밑줄 긋고 적어둔 페이지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 문장이 묘하게 와닿는 부분이 있어 고민하다가 하루가 끝나기 전, 늦은 야식 같은 문장밥을 차려 봅니다.
오늘 가져온 것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속 문장 입니다.
다시 읽은 문장이 흥미로워 다시 사피엔스 책을 펼치는 밤을 보냈어요. 제가 오늘 다시 읽은 챕터는 <2부 농업혁명, part 5 역사상 최대의 사기>입니다. 읽다 보니 첨단 정보 사회를 사는 인간들이나 기원전 8천 5백여년 전에 농사를 막 짓기 시작해 살았던 사람들이나 좀 더 나은 삶을 살아보겠다고 삶의 개선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개발해 혁명을 이뤘지만, 그것이 결코 삶을 더 살기 쉽게 만들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기원전 8500년 여리고의 평범한 사람은 기원전 9500년이나 기원전 13000년의 사람에 비해 더욱 힘들게 살았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세대는 전 세대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살았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서 여기저기 작은 개선이 일어났을 뿐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일련의 '개선'이 합쳐져서 농부들의 어깨에 더 무거운 짐으로 얹혔다. 각각의 개선은 삶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p.133
왜 우리는 더 많이 노력하면서 더 힘든 삶을 만들어왔을까요. 지금은 점점 더 그렇지 않은가 싶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 중 상당수는 돈을 많이 벌어 35세에 은퇴해서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유수 회사에 들어가 힘들게 일한다. 하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면 거액의 주택 융자, 학교에 다니는 자녀, 적어도 두 대의 차가 있어야 하는 교외의 집, 정말 좋은 와인과 멋진 해외 휴가가 없다면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들이 뭘 어떻게 할까? 뿌리채소나 캐는 삶으로 돌아갈까? 이들은 노력을 배가해서 노예 같은 노동을 계속 한다.
p.135
그리고는 너무나 넓고 깊이 역사를 넘나들며 관찰하여 얻은 날카롭고 예리한 시선으로, 읽는이로 하여금 머릿속이 섬짓해지게 만드는 저자의 문장이 이어집니다. 오늘 제가 이 책을 책방 이삿짐을 서둘러 푸르며 유발하라리의 책을 찾게 만든 문장이죠.
역사에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그러면서 우리 시대에 수없이 많이 발명된 '필수품'으로 여겨지는 발명품들을 이야기 합니다. 세탁기, 진공청소기, 식기세척기, 전화, 휴대전화, 컴퓨터, 이메일 ⋯⋯ 이 책엔 쓰여지지 않았지만 그 외에도 계속해서 발명된 많은 기술품들이 있죠. 그런 것들이 우리의 기존의 수고와 시간을 절약해줄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우리가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지 저자는 묻습니다.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내가 필수라고 믿고 있는 사치는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단순히 물건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닐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게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의존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돌아보고 한번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