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더라도 좋아요 | 나은

오래 누르고 견딘 시간이 있으니까요

by 삶예글방

시원님,


이번 주 시선집에서도, 편지에서도 읽으면서 마음이 아리고 쓰리다가, 다 읽고 나서는 어딘가 아찔한 기분이 들었어요. 괜찮으신가요?


어떤 위험 신호처럼 느껴졌거든요. 정말 많이 지치고 힘들어 보였어요. 글로는 불평이나 투정을 하는 것이 아닌데도, 저는 앞서가서 다 좀 잠시 내버려 두고 쉬어보자고 말을 붙이고 싶었답니다.


그만큼 많이 누르고 참으며 달려온 시간의 무게가 느껴져서였겠죠?

지금은 마음이 어떠신가요? 편지를 보낸 수요일 이후로 4일이 흘렀는데, 몸과 마음이 어떠실지 궁금하고 걱정이 됩니다. 걱정과 염려는 저의 예민함이기를 바라 봅니다. 나흘이란 시간은 짧다면 짧지만, 마음과 몸의 방향을 전환하기에 충분한 시간일 수 있기를 또 바래 보고요. 여전히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더라도 좋을 것 같아요. 오래 누르고 견딘 시간이 있으니까요. 그만한 시간은 주기로 해요, 우리.


오롯이 나의 삶을 내가 정한 속도대로 살아가는 일은 어찌나 어려운지요. 많은 집중과 거절, 중심으로 자꾸만 돌아오는 훈련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워 갑니다.


어제 한 달을 회고해 보며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다가, 잠시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에 접속했어요. 몇 분 정도 여러 계정에 들어가 피드를 넘기며 감상하다 보니 흥미로 시작했던 스와이핑이 스리슬쩍 불안감으로 변하기 시작하더군요. 이번 한 달은 특히 더욱 느리게 지내자고 다짐했었고, 아쳅토 책방도 한 달 쉬어가는 시간으로 잡긴 했지만, 부지런히 기록을 남기며 성실하게 공간을 운영하는 채널들을 보고 있자니 조금씩 조급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아쳅토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채널을 한 달 가까이 게시글 한 두 개만 올리고 정말 채널 자체를 닫아둔 수준으로 보냈거든요. '이렇게 조용히 무소식으로 채널을 두어도 괜찮은가?'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새 쌓인 많은 소재들이 이렇게 계속 밀려도 괜찮은가? 생각하면서 또 스스로 조바심과 한탄을 늘어놓고 있더라고요. 정말 신기하죠. 주말에 이어 월, 화, 수요일을 평온하게 일상에 집중하면서 잘 지내고,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는 기간을 보내며 사랑하는 이와 행복한 시간도 갖고 충만한 시간을 누렸는데 - 잠시 SNS를 켜고 피드를 넘기는 새 비교와 판단의 눈으로 저를 평가하고 있는 거예요. 어떤 면에서 보면 객관화의 시간이었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가 정한 속도를 외면하고 타인의 기준의 눈을 잠시 입고 자책하는 역할을 입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었죠.


그 순간 '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불현듯 눈썹 위로 스치듯 들어왔어요. 왜 지금 그런 생각을 하게 됐지? 그 생각이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지? 나는 왜 이 감정을 느꼈지? 스스로 계속 물어봤어요. 그리고 눈을 감고 긴 호흡을 한번 가졌습니다. 후회와 한탄, 비교와 자책으로는 무엇도 나아지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어떤 창을 통해서 나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얼마나 자기 이해의 시선이 날카로울 수도 부드러울 수도 있는지 여실히 느끼는 순간이었답니다.


「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 위해서도, 톨레는 그런 이야기를 자꾸만 책에서 하잖아요. '지금, 여기'에 존재하라고요. 나의 지금, 이 장소에 있는 나를 인지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것이요. 내가 나라고 믿는 것에서 벗어나는 일이 참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그렇지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한번 더 느낍니다.


생각해 보니 이번 편지가 올 해의 마지막 편지가 되겠어요.

한 해도 정말로, 많이, 수고 많으셨어요, 시원 님.


함께 쓸 수 있어서, 쓰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P.S 편지의 마지막은, 제가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온 김창완 선생님의 책, 「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 표지의 글을 찍어 올립니다.



찌그러져도-동그라미-입니다2.JPG 김창완 「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 표지가 너무 좋아서 찍어두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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