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복을 가져다줄 수도..?
“아이고, 기사 아저씨.
○○○번 방금 내렸는데
거기다 핸드폰을 두고 내린 것 같아요.
어떻게 연락할 방법이 없을까?”
어머니뻘 되는 승객이 발을 동동 구르며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묻는다.
“회사가 달라서 제가 그 버스 기사한테 연락하기가 어렵고요. 일단 타시고 터미널 가서 그 버스를 기다리시거나 그쪽 회사에 문의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출발시간이 얼마 남지 않기도 했고, 회사가 달라서 연락할 방법도 없다 보니 일단 대답은 했지만, 마음이 쓰인다. 이런 마음을 아는 건지 차내에 타고 있던 학생이 어머니께 도움을 드린다.
“할머니, 일단 할머니 전화에 이거로 통화를 해보시고요. 안되면 기사님이 알려주신 회사로 전화를 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려요, 그려. 나 이거 고마워서 으짜쓰까.”
정류장이 없는 도로를 달리며 눈은 앞을 향하지만, 귀와 신경은 온통 뒤에 가 있다. 먼저 할머니 휴대전화는 버스에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받는 사람이 없다. 해당 회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확인은 해보겠지만 내일 한 번 더 연락을 달라고 한다. 안타까움을 나누는 승객들이 하나둘 도움을 더한다.
“할머니 지금 그 버스 ○○○○정류장 지나고 있고 터미널 쪽으로 가니까 이 버스가 앞질러서 도착할 것 같아요.”
“거기에 중요한 거 들은 건 없어요?”
할머니가 답한다.
“아이고, 거기 카드랑 신분증이랑 다 있는디 이걸 우짠댜. 내가 버스에서 노선이랑 시간도 확인허고 주머니에 넣은 것 같은디. 아님 내리다 도로에 떨어졌을랑가.”
발만 동동 구르는 사이 어느새 터미널 정류장에 도착했다.
“어머니, 저기 앞에 보이는 정류장에 그 버스 들어오니까 거기서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아이고, 기사님 고마워요.”
잘 내리시는가 싶더니 '아 환승! 환승!' 하시면서 하차문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신다. 그도 그럴 것이 도착하는 버스에 없으면 그 버스를 내렸을 정류장에 돌아가서 확인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환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으로 치르고 본격적인 운행을 하다가 옛 생각이 났다.
같은 노선을 운행하는 기사들은 같이 아침이나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고충이나 주의사항을 공유하기도 하고 그저 사는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렇게 친분을 쌓다 보니 서로 코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게 된다. 이 얘기는 그 덕에 좋은 결과를 낳았던 이야기다.
한 승객이 오송역에서 내리고 휴대전화를 버스에 두고 내린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승객은 바로 회사로 전화해서 몇 시쯤 도착한 B2 버스에 휴대전화를 놓고 내렸으니 찾아봐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사무실 담당자가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미 그 버스는 오송역에서 다시 출발한 상태. 해당 기사에게 전화로 찾아봐 줄 수 있는지를 물으며 다시 돌아오는 시간을 묻는다. 종점에 도착해서 찾아보고 있으면 운행 마치고 사무실에 차 키와 함께 반납하면 그만인데 왜 묻는지 했더니 승객의 사정이 있었다. 승객은 서울에 사는데 출장차 세종에 왔었고 휴대전화를 꼭 사용해야 하는데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던 것이다. 버스 기사는 신호대기에 걸린 틈을 이용해 들었던 자리에서 휴대전화를 찾는다. 다행이다. 그 자리에 휴대전화가 있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승객에게 전달할까 싶은데 마침 반대편에 오송역으로 올라가는 친한 동료기사가 생각난다. 바로 전화를 건다.
“형님, 휴대전화 이거 승객이 급하다는디 좀 가져다주실라유?”
“아따 뭐가 그리 급하당가. 이이. 지금 어딘디?”
“한 두 정거장 가면 형님이랑 만나니께 거서 드릴께유.”
서로 정류장에 정차를 한순간 휴대전화가 전달된다. 승객은 사무실에서 연락받고 오송역 하차장에서 기다렸다가 휴대전화를 건네받는다. 거의 뭐 007 특급작전이 따로 없다.
비슷한 경험은 나도 몇 번 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반석역에 도착해서 차를 돌려 분실물을 확인하는데 휴대전화가 떨어져 있다. 비상연락처라도 있나 열어봤더니 역시나 잠금상태인데 배터리가 얼마 없다. 급하면 전화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근무할 때 쓰는 충전기에 꽂아둔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배터리가 다 되어서 전화기가 꺼졌을 때 얼마나 마음을 졸여야겠는가.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고 충전하는데 품이 드는 것도 아니니 일단 꽂아둔 셈이다. 그리고 전화가 안 온다 해도 어차피 운행을 마치고 사무실에 맡기면 그만인데 문제는 급하게 휴대전화를 돌려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전화가 와도 운행 중에는 받을 수 없으니 전화를 거는 사람의 타이밍이 참 중요하다. 그렇게 운행을 한 번 더하고 다시 반석역에 도착했을 때 마침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저 휴대전화 주인인데요.”
“아, 네. 저는 버스 기사입니다. 아까 버스에 두고 내리셨어요. 제가 운행 마치고 사무실과 함께 있는 분실물센터에 맡겨둘 테니 내일 이후로 찾아가시면 됩니다.”
(근데 뜸을 들이는 것이 지금이라도 받고 싶어 하는 눈치다.)
“급하신 거면 나와 계실 정류장 말씀해 주시면 언제쯤 도착하는지 알려드릴게요.”
“아,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정류장에서 기다릴 수 있는데 지금 어디신가요?”
“반석역에서 20분쯤 출발하니까 거기 도착하는 시간은 아마 21시 10분 전후가 될 것 같습니다. 혹시 모르니 5분 전에 미리 나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속으로 운행 마치고 해야 할 일이 하나 줄어서 쾌재를 불렀다. 신나는 기분으로 달리고 달려 약속한 정류장에 다다를 때였다. 미리 나와 있는 승객을 보고는 눈빛으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앞문이 열리고 휴대전화를 건네니 음료수 하나를 나에게 다시 건넨다.
“고맙습니다.”
“아유, 뭘 이런 걸 다. 잘 마실게요. 감사합니다.”
음료수가 고마운 것보다 내 일을 하나 줄여준 것이 고마운 게 솔직한 심정이다.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일은 적게 하고 월급은 많이 받을수록 좋다. 나만 그런 걸까.
버스나 지하철에 무언가를 두고 내렸을 때 보통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방금 말했던 경우처럼 바로 기사랑 연락이 된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보통은 분실물센터에 연락해 두고 습득이 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기다리는 그 마음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기사도 찾아주려 애를 쓴다. 짜증을 내고 큰소리치는 기사도 있지만 이렇게 승객을 위한 마음을 가진 기사도 많다는 걸 알리고 싶다.
그나저나 할머니는 휴대전화를 잘 찾으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