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홀로 여행을 떠나야겠습니다 | 나은

짧더라도 한 번씩이요

by 삶예글방

시원 님, 겨울 여행 잘 다녀오셨나요~?

연말 회고와 함께 여행이라니 - 저도 가고 싶네요. 「 찌그러져도 동그라미 입니다 」 책 시원 님도 좋아하는 책이었다니. 역시 통하는 데가 있어요 우리! 추신을 읽으며 정말 반가웠어요.


아침에 글방 합평 모임을 위해 6시 40분에 눈을 떠서는 5분 뒤 알람을 맞추고 다시 눈을 감으며 생각했어요. '아 역시 아침 모임은 1년간 해도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인가. 7시 합평 모임은 무리한 것인가?' 하고요. 그런데 막상 모임이 시작되고, 고요한 아침 공기 속에 도란도란 쓰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감상이 깊게 무르익다보니, 하루의 활력이 가득 채워지고 있는 걸 발견하고 깜짝 놀랐어요. 시원 님의 눈과 얼굴을 보는데 한결 피부도 그렇고 맑고 밝아진 것 같아 안심이 되었어요. 끝없이 잠이 왔고, 그 잠에게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는 시원 님이 참 대견하게 느껴졌답니다. 잘 하셨어요.


점심이 시작 되기 전에 쓰려던 편지는 내내 배가 아파서 미뤄졌어요. 소화 작용의 끝, 배변에서 모든 게 멈추어 있었답니다. 저는 태어나서 이렇게 큰 일을 보는 게 힘들었던 적이 처음이에요. 배에서는 신호가 오는데 꽉 막혀서 나오지 않는 기분이 이런거구나 싶었고, 화장실에 40분을 앉아 있어도 진척이 없고 배만 아프고,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정말 아찔하더군요. 대학교 다닐 때 친한 언니가 심한 변비로 고생해서, 한 달에 한 번 응급실에 가서 관장을 하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그저 어쩌면 좋아 진짜 힘들고 답답하겠다 - 생각만 가볍게 했던 것 같은데, 제 일이 되니 단 몇 시간의 일이었는데도 너무 힘이 들었어요. 역시 겪어보아야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걸까요?


참 신기하죠.

그 반나절 배를 앓았다고 인생 모든 장면이 멈춘듯한 기분이었어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눕지도 서지도 앉지도 못하겠는 답답하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고요. 세상에 정말 기본적인 소화과정이 이리도 중요한 것이었구나 새삼 실감했답니다.


물을 500ml 텀블러에 세 번 가득 따라 마시고 온갖 체조 동작을 한 후에야 겨우 해결할 수 있었어요. 어제와 오늘 할 일이 많다고 저녁 한끼만 제대로 먹고 아침과 점심을 가볍게 선식 수준으로 두유에 고구마 한 개와 떡 한두개 정도로 먹었더니 더 문제가 생겼었나봐요. 전쟁(?)을 마치고, 기진맥진해서 누운 채로 편지를 이어 썼습니다. 너무 웃기고 부끄러운데 개운하고 안도감이 휩싸여와요. 하하


삶의 문제도 이렇게 어려움 끝에 밀어내고, 소화해내고 나면 얼마나 해방감을 느끼게 될까요? 물론 오늘 상황처럼 짧은 시간안에 쉬이 해결되는 문제란 좀처럼 없겠지만요. 그럼에도 저는 요새 제 삶에 마주하는 벽과 막막한 절망감을 제가 쓰는 소설 세계 안에서 많이 펼쳐내보이며 희망을 품어보곤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제 마음이 자연스레 인물 한 명 한 명에 닿아 시원 님이 읽을 때 어떤 부분들에서 저를 마주하는 것 같다고 느껴주신 것 같아서 신기하고 기뻤습니다.






요 며칠간은 미루고 또 미루어두었던 지난 달 회고를 하고, 영상 한편으로 소화해내듯 만들었어요. 그렇게 내 밍기적거릴 땐 언제고 막상 기획해서 엄선한 사진과 영상 소재들로 편집을 시작하니 그 어느때보다 집중이 잘 되더라고요. 네 시간 동안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고 내리 작업한 것 같아요. 이 때에도 어찌나 마음이 홀가분하던지, 여러모로 연 초부터 물론 완성한 영상을 책 친구들에게 보내고, 유튜브에 업로드 해두고는 이틀 뒤인 오늘에야 인스타그램에 올렸지만요.


오후 내 멈추어 있던 일들을 하나씩 마치고, 마음 편히 그제야 저녁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나서는 제 때 움직여주지 않으면 또 오늘 오후와 같은 정체현상을 마주할까 두려워 바로 산책에 나섰습니다. 밤 산책을 마치고 편지를 마무리 하고 있어요.


가족끼리 새해가 시작할 때 만나서 백 일 간 한 가지의 행동을 반복해서 습관으로 만들어보자고 작은 해빗트레커 카드를 나누어 가졌는데요. 저는 고민해봤는데요, 아무래도 매일 아침 홀로 여행 하기 - 를 정해보려고 해요. 멀리 갈 수 있는 여유가 허락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고 집을 지켜야 할 날들이 많을 것이기에 - 집 근처를 홀로 매일 짧게라도 한번씩 여행하는 것을 습관으로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저를 위한 미리 처방과 같은 것일수도 있겠습니다.


시원님은 한 가지의 습관을 만들어보고자 한다면 어떤 습관을 만들어보고 싶으신가요?


물음표를 포항으로 띄워 보내며 새해의 첫 편지를 마칩니다.

개운한 마음으로 밤을 맞이한 나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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